[필진Q&A] 전인걸 신부님이 알려드립니다🙆‍♂️ 2편

필진에게 물어보세요

[필진Q&A] 전인걸 신부님이 알려드립니다🙆‍♂️ 2편

운영진

2026. 08. 26
읽음 44

† 찬미 예수님!

웹진 필진에게 직접 묻고 답을 듣는
〈필진에게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두 번째 답변을 소개합니다. 😊

이번 질문은 신앙생활을 하며 한 번쯤 궁금해했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기도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알고 싶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느꼈다고 하는데
나는 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지 고민하기도 합니다.

전인걸 신부님께서는 이번 답변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방식부터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는 구체적인 기준,
그리고 대답이 들리지 않을 때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의 태도까지 차근차근 짚어 주셨습니다.

그럼, 전인걸 신부님의 답변을 함께 만나 보겠습니다. 😊

 

 

Q2. 저는 주위에 개신교 친구들이 조금 있다 보니 그 친구들은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서

주시는 대답과 그 뜻을 듣고는 움직인다는 말을 종종 하는데요.

솔직히 저는 기도를 드려도 하느님께서 주시는 대답은 커녕~뜻도 잘 모르겠더라구요.

저의 믿음이 약해서인지 아니면 개신교 신자들에 비해 토대가 되는 기본 지식이 부족해서인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개신교 친구들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하는데요~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부르심이나 대답 등을 들을 수가 있는지 진짜 궁금합니다~

- 명예기자님

 

✔️ 전인걸 신부님의 답변
 

주위의 개신교 친구들이 “기도하다가 하느님의 뜻을 알게 되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가톨릭 신자는 조금 낯설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개신교 전통에서는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느님과 직접 맺는 개인적인 신앙 체험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반면 가톨릭교회는 개인의 체험도 중요하게 여기지만,
그것이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 공동체의 신앙과 조화를 이루는지 함께 식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을 곧바로 공적이고 보편적인 차원의 신앙으로 끌어올리다 보면,
교회의 가르침과 공동체가 함께 고백하는 신앙보다 자신의 체험을 확인하고 강화하는 사적 신심에 치우칠 위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나는 기도 중에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개인의 체험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곧바로 “하느님께서 반드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단정하는 데에는 신중한 태도를 취합니다.


가톨릭 신앙에서도 하느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다만 그 방식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조용하고 평범할 때가 많습니다.
성경의 인물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길을 떠난 것이 아니었고,
성모 마리아 역시 앞으로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두 이해한 상태에서 “예”라고 응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를 따르는 순간부터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했던 것은 아닙니다.
신앙은 언제나 모든 답을 알고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알 수 없는 가운데에서도 하느님을 신뢰하며 한 걸음씩 걸어가는 것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왜 저렇게 하느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지?”라고 다른 사람의 신앙 경험과 자신의 신앙을 비교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하느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말한다고 해서 반드시 실제로 어떤 음성을 들었다고 확신할 수도 없습니다.
어떤 경우 기도 중에 떠오른 확신이나 마음 깊은 곳에서 생겨난 결심,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얻게 된 평화와 깨달음을 두고 ‘하느님의 대답을 들었다’고 표현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실제로 하느님의 뜻은 어떻게 식별할 수 있을까요? 먼저 성경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지 살펴 보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이라고 하면서 사랑과 정의, 용서와 자비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선택을 한다면 그것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또 하나는 그 선택이 어떤 열매를 맺는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 생각이 나를 더욱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지, 다른 사람을 존중하게 하는지, 책임을 회피하지 않게 하는지,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 깊은 곳에 평화와 자유를 가져오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나친 두려움과 집착, 우월감과 분노를 계속 만들어 낸다면 더 신중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다면 혼자서 모든 것을 판단하려 하지 않는 것도 필요합니다.
신뢰할 수 있는 사제나 수도자, 신앙의 선배와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훌륭한 식별의 방법입니다.
가톨릭교회가 영적 지도와 공동체의 식별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시간을 견디는 인내심도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게 해주는 중요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은 이해할 수 없었던 일도 몇 년이 지나 뒤돌아보면 “그때 그 일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당시에는 고통스럽고 이해할 수 없었던 일이 시간이 흐른 뒤 더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모든 고통과 실패가 하느님께서 일부러 만들어 놓으신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은 모든 불행을 억지로 “하느님의 뜻”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사건 안에서도 하느님께서 나를 버리지 않으시며, 그 상황 속에서도 선을 이끌어 내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에 가깝습니다.

제 주변에도 중요한 일이 생길 때마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어요”라고 확신하기보다,
“
지금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모릅니다. 지금은 힘들지만 분명히 그분이 뜻하신 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라고 조용히 삶을 살아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이야말로 매우 깊고 성숙한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언제나 또렷하게 듣지는 못합니다.
어쩌면 신앙은 하느님의 대답을 명확하게 듣는 능력이라기보다, 대답이 들리지 않는 순간에도 하느님을 믿고 걸어가는 힘​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기도하면서 아무런 대답이 들리지 않는다고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히려 “주님, 제가 원하는 일을 들어주십시오”라는 기도에서 나아가, “주님, 제가 원하는 답이 아니라 당신의 뜻을 알아볼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라고
기도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것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알아듣기 위한 더 좋은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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