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사실 제목보다는 부제에 눈이 갔다. 교회의 본질과 구성원의 역할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읽어 본 책은 예상대로의 내용이었지만, 깊이 있게 성찰해 볼 만한 부분도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에 이스라엘만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메시지가 그들에게 거부당하고, 예수님도 배척당하셨기 때문에 십자가와 부활, 성령 강림을 통해서 새롭고 확장된 모습의 공동체,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이 함께하는 교회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p.41)
시간이 지나고 세상도 변했다. 세상이 변하더라도 교회가 선포하는 진리의 본질이 변하지는 않지만,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화와 가치관에 따라 접근방식이 달라질 필요는 있다. (아조르나멘토 aggiornamento, 현재화)
게다가 교회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의 본질적인 불완전성 때문에 역사적으로 많은 죄와 오류를 범해왔고 그것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이 책은 이러한 결점을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시한다. 만약 치부에 대해 회피와 위선으로 일관했다면 더 내부에서 곪아갔을 것이고 바뀌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을 계속 이어나간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교회가 결코 그리스도처럼 완전무결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교회의 약함과 죄스러움을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정화와 쇄신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p.91-92)
"'거룩하시고 순수하시고 순결하신'(히브 7,26) 그리스도께서 죄를 모르셨지만(2코린 5,21 참조) 오로지 백성들의 죄를 없애러 오셨으므로(히브 2,17 참조), 자기 품에 죄인들을 안고 있어 거룩하면서도 언제나 정화되어야 하는 교회는 끊임없이 참회와 쇄신을 추구한다." (<교회 헌장>, 8항)
이 책의 1부에서 주님이 세우신 교회에 대해 설명하였다면, 2부에서 우리가 일궈 가는 교회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 인상적인 개념은 대조 사회였다. 사회가 생산성과 이윤을 최고의 척도로 삼을수록 능력없는 사람, 병든 사람, 나이 든 사람을 외면하며 밖으로 밀어내 버린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이들도 하느님의 자녀로 받아들이시고 품어 주셨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세상에서 외면당하고 내쳐지는 이들을 보듬어 주는 따뜻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p.168 참조)
신유박해가 일어난 다음 해인 1802년에 순교한 복자 황일광 시몬―필자가 성지순례 다니던 시절 어딘가에서 설명을 봤던 분―은 천민 계급인 백정으로 태어나 천대와 멸시 속에 살았지만,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교우들과 함께 지내면서 비로소 사람 대접을 받게 된다. 그리고 신자 공동체를 '지상의 천국'으로 받아들였고, 하느님을 위해 목숨까지 바쳤다.
하느님과 이웃을 향하게 하기보다는 거스르게 하는 혼탁하고 거센 강물이 세상 속에 흐르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거슬러 살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회심과 은총의 도움이 있어야 하고, 은총은 미사 안에 성령을 통해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베풀어 주신다. 세상과는 대조되는 삶을 살도록 부르시는 동시에 은총으로 도와주신다. (p.170)
앞선 1부에서 교회는 자기 품에 죄인들을 안고 있어 거룩하면서도 언제나 정화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2부에서 이야기한 대조 사회의 개념도 항구적일 수 없으므로 언제나 정화되고 쇄신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서평을 쓰는 본인은 현실 세계의 교회의 속성에 대해 몸으로 체험했으므로 익히 잘 알고 있다. 주파수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일치했을 때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공동체가 되고, 거기서 어긋났을 때는 세속 사회보다도 못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주파수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흔들리므로 지속적인 쇄신을 요구한다.
그러나 교회는 주님이 직접 세우셨으므로 하느님께로 가는 길은 이 방법 뿐으로 보여진다. 3세기 카르타고의 주교였던 치프리아노 성인은 저서 《가톨릭 교회의 일치》 6장에서 "교회를 어머니로 모시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 없습니다." 라고 단언했다고 한다.(p.231) 필자가 교회 공동체를 멀리하면서도 가까이하고, 속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면서도 속해 있으며 밸런스게임을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한번쯤 읽어 두면 괜찮을 것 같은 책이며, 교회 안에서 자신이 속한 위치와 역할에 대해 정립해보고자 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어보았을 때 도움이 될 것 같다.
"평신도들의 임무는 자기 소명에 따라 현세의 일을 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관리하며 하느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것이다." (<교회 헌장>, 31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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