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복잡해지고 빨라지고 있다. 경제 신문을 보면 AI로 인하여 주가가 떨어지는 일, 외로움에 치쳐 자살 사건들이 상승하는 통계들이 나와 있다. 인간은 진 사회성 동물로 서로 관계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개인화가 당연히 되는 세상에서 공동체의 정신들이 희미해지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공동체를 중시하며 우리가 왜 "교회 안에 머물러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손의 송 주교님이 <주님의 교회, 우리의 교회> 책을 집필하였다.
- 교회 신부가 독신으로 사는 이유 및 신자의 의무
성당을 다니는 신자로서 미사 참석할 때마다 신부님을 본다. 30년 이상 된 신자로서 성직자인 신부님은 독신으로 살아야 하는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받아들이지만, 처음 영세를 받을 때는 이해를 하지 못하였다. 바오로 사제가 교회를 세울 때 성직자는 독신이라는 것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개신교의 목사님들은 결혼을 하고 자녀까지 있는 경우들이 많았다. 이런 역사들은 언제 만들어진 것일까?
중세의 공의회들
313년에 그리스도교를 공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30년에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긴다. 그 이후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동방 교회와 로마 중심의 서방교회는 지역적으로 많이 아니라 언어, 민족, 관습에서도 차이가 나서 크고 작은 갈등을 지속적으로 겪는다. 그러다가 결국 1054년에 서로 갈라지게 된다. 이른바 "동방 대 이교"다.
그 이후 약 500년 동안 서방 교회에서는 총 10번의 공의회가 개 되었다. (중략) 이 공의회는 모두 로마 교황이 소집되었고, 서유럽에서 개최되었기에 대부분 서방 교회의 주교들이 참석하였다. "초기 공의회들에서는 대다수가 동방에서, 상당히 많은 수가 북아프리카에서 그리고 극소수가 서방에서 왔으나 중세 공의회들에서는 참석자들의 대부분이 서방 교회 출신이었다. 또한 상황과 참석자들이 달라지면서 공의회의 관심사에서도 현저한 변화가 생겼다. "초기 공의회들에서는 교의적 진술이 가장 중요한 특색이었고 규율을 다루는 교령들은 부착적이었던 반면, 중세 공의회에서는 그 중요성이 바뀌었다.
이 시기 공의회의 결정 사항 가운데 현재 교회 규정의 기원이 된 것들이 여럿 있다. 이를테면 매년 고해성사와 부활 시기 영성체 의무 규정, 성직자의 독신의 의무규정이다.
페이지 75쪽
성직자의 독신 의무 규정은 초기 교회가 설립될 때부터 규정이었지만 공의회들을 통해 견고하게 만들어졌다. 교회는 변화가 느리다고 생각하다고 느낀 적이 많았다. 돌이켜 생각을 해보면 2000년을 이어온 교회에서 빠른 속도로 변화를 한다는 것을 수많은 절차들이 있기 때문에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교회는 예전에 비리 변화들을 빠른 속도로 수용하고 있다. 개인들도 교회의 변화에 맞춰 의무들을 지켜야 한다.
현행 교회법 제920조와 제989조에 따르면 모든 신자는 적어도 일 년에 한번 고해성사를 보고 영성체를 해야 한다. 고해 성사를 봐야 한다는 것은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발전하는 삶을 지향하는 것이다. 사람이 반성을 하지 않는다면 성장을 하지 못한다.
2. 가정은 평신도들의 고유 영역
복잡해지고 빠른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거짓과 악이 숨어 도사리는 세상 한가운데서 확신을 갖고 복음을 증언하기 위해서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하느님이라는 절대적인 신을 믿어야 하지만, 우리는 유혹에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현재 우리 교회와 신자들의 신앙은 결코 강하다고 할 수 없다. 신앙이 약하고 뿌리가 깊지 못하다. 왜 그럴까? 신앙은 강화하고 튼튼하게 다질 기회가 매우 적기 때문이다. 성인 신자들의 경우 체계적으로 신앙 교육을 받을 기회는 예비 신자 교육 6개월이 전부다. 그마저도 충분하게 이해하지 못한 때 세례를 받고, 주일 미사에 와서 강론을 듣는 정도로 그친다. 신앙에 입문했지만 신앙의 부리가 깊지 못하기에 개인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거나, 다른 신자들이나 성직자의 약함과 허물에 실망하여 신앙을 저버리는 이들이 많다. 또한 성경과 교리 지식이 너무 부족해서 이단 종파에 빠져드는 신자들도 적지 않다. 이렇게 된 데에는 신앙의 기초가 든든하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로 자리하고 있다.
신앙의 기초 체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 훈련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교회 곧 오체이고, 교회의 뿌리는 가정이다.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신앙 교육을 충실하게 시킬 때 성숙한 신앙인들이 많이 배출될 것이고, 그들을 통해서 교회가 더욱 거룩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정을 '가정 교회'라고 표현하면서"부모는 말과 모범으로 자기 자녀들을 위하여 최초의 신앙 선포다"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교회 헌장. 11항>
페이지 205쪽
천주교 신자로서 가장 안타까운 말을 들을 때가 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단체 생활을 하는데 어떤 분이 모태 세례와 성인 세례로 급으로 나누어서 불편하다고 한다. 자신이 모태 신앙이어서 잘난 척을 하기 위해서 꼴 보기 싫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 아프면서, 혹시 나도 그렇게 급을 나누는 것이 아닐까?는 반성을 하게 된다. 모름지기 모태 신앙이라면 그 모든 것들을 다 품어줄 수 있는 배포가 있어야 하지만, 복잡한 세상을 살다 보면 마음과 행동이 따로 움직이는 것을 발견한다.
책에서도 언급을 하였지만 신앙을 첫 번째 단추는 가정이다. 성가정 안에서 제대로 된 기능을 한다면 자녀들은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정직하게 살게 된 것이다. 필자는 아직 미혼이어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확실은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만약 누가 어떤 종교를 선택할 것이고 자녀에게는 어떤 종교를 줄 것이냐?라는 질문에 대해 하느님이 나를 선택한 천주교를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대답할 것이다.
자녀들도 성장하고 자유 의지가 있겠지만 부모들이 양심적으로 살고 기도를 하는 삶을 산다면 믿고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형성된 올바른 신앙은 평생을 가지고 산다. 그러니 믿음을 저버린 말고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행동을 해야 할 것이다.
질문) 천주교 신자로서 신앙인을 걸어야 하는 우리들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나누어봅시다
https://blog.naver.com/marco1983/2243649308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