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우리 사회에서 종교 공동체를 뜻하는 것을 넘어, 때로는 한 사람의 신앙 유무를 가리키는 말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너 교회 다녀?”라는 질문이 곧 종교가 있는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묻는 말처럼 통용되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가장 넓게는 같은 종교를 지닌 사람들이 모인 집단으로 이해되며, 한국 사회에서는 개신교 공동체나 예배 장소를 가리키는 말로 흔히 사용된다.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세례받은 사람들이 함께 모인 신앙 공동체를 의미하면서도 때로는 교황이나 주교, 사제품을 받은 성직자들을 중심으로 한 제도적 집단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교회를 안 다니지, 믿음이 없냐?”, “난 교회가 싫어서 믿음을 갖지 않는다”, “교회는 인간들의 집단일 뿐 신과 무관하다”는 서로 다른 인식이 공존한다.
<주님의 교회, 우리의 교회>는 가톨릭 신앙을 가진 신자라면 그동안 자주 접하고 들어 너무나 익숙해져 있지만, 정작 그 개념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던 ‘교회’의 의미를 성경과 교회사의 맥락에서 짚어나간다. ‘교회를 이루고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어주는 ‘우리가 놓치고 있던 기본 믿음’에 대한 책이라는 점에서, 신앙을 갖는 것과 교회 공동체를 일궈간다는 것의 관계를 이해하도록 이끈다.
책은 “주님이 세우시고 우리가 일궈 가는 교회”라는 부제에 맞추어 ‘주님이 세우신 교회’와 ‘우리가 일궈 가는 교회’의 두 부분으로 나뉜다. ‘주님이 세우신 교회’에서는 구약과 신약 성경을 바탕으로 교회가 ‘주님이 세우신 것’이라는 관점을 짚고, 사도회의와 공의회를 거치며 교회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설명한다.
오늘날의 가톨릭 교회를 예수님의 부활 이후 성령의 능력으로 탄생한 것으로 보는 신약적인 관점에서 교회는 예수님께서 여러 차례 말씀하셨던 ‘하느님 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하느님의 선택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거스르고 멸망했던 이스라엘은 멸망과 재건의 반복된 역사 속에서도 배타적인 공동체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병고나 악령으로부터 사람들을 풀어주시며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카 11,20)라고 말씀하신다. 하느님 백성을 다시 모아 재건하려는 예수님께 하느님 백성은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사회에서 소외된 모든 이들을 포함하는 개념이었다. ‘하느님의 완전하심을 닮으려는 노력’인 회개를 통해 모든 사람이 조건 없는 용서를 받고 변화되어 하느님의 백성이 되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하느님의 자비를 받아 변화된 사람들 안에서 이미 하느님 나라가 세상 속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 성령 강림은 교회의 시작이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셨던 것처럼 서로 사랑하도록 사람들을 내적으로 움직이는 성령은 모든 사람을 거룩함으로 부르며, 그 거룩함의 핵심에는 사랑이 있다. 교회는 이러한 성령으로 태어나 성령의 활력을 받아 ‘그리스도의 몸’으로 성장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러한 교회의 거룩함과 동시에 그 안에 존재하는 죄스러움도 인정한다. 교회는 거룩하신 그리스도와 결합되어 그분의 성화 활동으로 거룩해지면서도, 죄스러운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기에 끊임없는 참회와 쇄신을 추구한다. 즉 교회는 ‘하느님을 오롯이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며 거룩하게 성화되어 가는 지상 순례의 여정에 있는 것이다. ‘주님이 세우신 교회’는 이처럼 하느님의 완전하심을 닮고자 노력하는 하느님 백성으로 모든 이를 부르고자 하셨던 예수님의 사랑에 교회의 기반이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공의회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교회가 스스로를 어떻게 이해해 왔는지에 대한 설명은 자연스럽게 ‘우리가 일궈 가는 교회’로 이어진다.
‘우리가 일궈 가는 교회’에서는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누룩이 되어 세상과는 어떻게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를 미사 예식의 각 의미에 비추어 설명한다. 또한 평신도직과 사제직을 통해 교회 안에서 각자가 맡은 직분과 카리스마의 의미를 살펴본다. 저자는 스승의 임무를 위임받았던 사도들이 먼저 스승과 함께 지냈어야 했음을 상기시키며 “그분을 가장 확실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이 교회”(p.231)라고 설명한다. 교회는 ‘코드’가 같은 이들이 ‘끼리끼리’ 모인 모임이 아니라, 서로 다르더라도 예수님을 중심으로 같은 복음을 듣고 같은 신앙을 고백하며 자신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청하고 하나가 되어가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를 배우고 닮아가는 학교’이며,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형제애를 세상 속에서 살아내는 씨앗이 된다.
저자는 ‘불충분한 도구로도 당신의 일을 하실 줄 아는’ 그리스도를 고백하며, 교회가 거룩하지도, 가난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고 해서 떠날 것이 아니라 그 허물 안에서도 구원 사업을 계속 수행하시는 주님과 일치하기 위해 교회 안에서 꾸준히 기도하고 형제적 친교를 이루기 위해 노력할 것을 역설한다.
이 책은 교회의 의미를 충실하게 짚어낸다. 그러나 책이 짚어내는 그 의미를 따라가다 보면 교회가 단지 세례라는 의식을 통해 형성된 물리적인 집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교회는 하느님 나라를 대신해 생긴 궁여지책의 집단도, 신과는 동떨어진 세속적이고 인간적이기만 한 물리적인 집단도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여 사랑과 용서, 형제애를 배우며 거룩하게 성화되어 가는 삶의 자리다.
결국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를 우리가 세상 속에서 일궈간다는 것은 교회의 외형을 확장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살아내며 하느님 나라를 드러내는 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단순히 ‘다니는 곳’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변화되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살아내는 법을 배우는 성화의 자리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