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드 뤼박의 역설들

📚서평

앙리 드 뤼박의 역설들

Kim stella

2025. 06. 11
읽음 43

 찬미예수님!
 안녕하세요. 가톨릭출판사 캐스리더스 5, 6월의 도서는 프랑스 예수회 신학자 앙리 드 뤼박(Henri de Lubac, 1896-1991)의 『역설들』입니다. 드 뤼박은 20세기 가톨릭 신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깊은 영향을 주며 현대 가톨릭 신학의 흐름을 형성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실제로 가톨릭 신학을 공부하다 보면, 구약 과목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의 이름을 한 번쯤은 만나게 됩니다. 은총론 수업때에 가톨릭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책과 함께 방학동안 읽어볼 책으로 추천해주신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역설들』, 『새로운 역설들』, 『다른 역설들』 세 권을 한데 모은 합본이며, 그의 다른 글들도 부록으로 함께 실려 있습니다. 드 뤼박은 특히 그리스도교가 왜 본질적으로 ’역설적인 종교‘인지를 세 가지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첫째,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신성과 인성이 하나의 인격으로 공존한다는 신비를 강조합니다. 하느님의 초월성과 인간에 대한 연대가 만나는 이 지점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에서도 드러나며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통해 인간 존엄성과 세상과의 대화를 강조합니다.
 둘째, 드 뤼박은 인간을 유한한 자연적 존재이자 동시에 초자연적 소명을 지닌 존재로 봅니다. 인간 내면 깊숙이 자리한 하느님을 향한 갈망은 단순한 본능이 아니라, 하느님께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은총의 동력입니다. 이 관점은 인간 존엄성과 세속 속 협력 가능성에 대한 공의회 문헌들의 신학적 바탕이 됩니다.
 셋째, 그는 교회를 신성과 인간성이 공존하는 ‘그리스도의 신비체’로 이해하며, 이를 ‘정반대의 통합’이라 부릅니다. 교회는 거룩한 사명을 지닌 동시에 죄 많은 인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긴장은 교회헌장 『Lumen Gentium』에도 잘 반영되어, 교회를 하느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정의하며, 세상 안에서의 쇄신을 촉구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른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수년 전 어느 날, “갈매못 성지가 바다를 향해 열려 있어 정말 아름답다”는 어느 할머니 자매님의 말씀에 이끌려 단체로 순례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그 성전은 말 그대로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다섯 성인이 순교하고, 수백 구의 무명 순교자 시신이 바다에 떠올랐던 자리였습니다. 성지 신부님은 “이곳은 관광버스를 타고 와서 경치 구경이나 하다 갈 곳이 아닙니다”라며 격정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이 어떻게 그렇게 잔혹한 죽음의 무대가 될 수 있는지를 두고 깊은 충격과 혼란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역설들』을 읽으며, 그 아름다운 바다와 참혹한 순교의 기억이 결코 모순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다의 눈부신 겉모습과 순교자들의 피로 물든 피의 기억이 그리스도의 신앙 신비 안에서 하나로 통합된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유한하면서도 하느님을 향한 초월적 갈망을 지닌 존재이고, 순교자들은 바로 그 갈망을 생명으로 증거한 이들입니다. 눈부신 바다는 그들의 죽음을 덮는 장식이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와 순교자의 신앙이 조화를 이루는 상징처럼 느껴졌습니다. 교회의 역설은 이 바다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합니다. 죄 많은 인간들이 모인 교회는 완전할 수 없지만, 순교자들의 증언은 그 교회가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얼마나 거룩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피로 물든 바다는 교회의 나약함과 거룩함이 동시에 드러나는 자리였고, 그것은 곧 하느님 나라를 증거하는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순교지에 순례를 가는 이유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담담하게 아포리즘 형식으로 구성된 앙리 드 뤼박의『역설들』은 고통과 아름다움, 유한성과 초월, 나약함과 거룩함—그 모든 것이 역설 안에서 하나 되는 신비임을 깊이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3

0

공유하기

0개의 댓글

로그인 후 이용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