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용서받는 치트키, 대사에 대한 이야기

신학 칼럼

죄를 용서받는 치트키, 대사에 대한 이야기

‘은총의 여정’ 대사(indulgence)에 대한 숨은 진실?!

2025. 09. 08
읽음 27

6

3

 

교회의 쇄신과 성화를 위한 첫걸음 용서

 

2000년 대희년 사순 제1주일, 요한 바오로 2세 성인 교황님께서는 이날을 용서의 날(The Day of Pardon)로 지정하며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참회의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이 미사에서 교황님께서는 십자가를 부여잡으며 하느님과 인류 앞에 용서를 청하셨습니다.

 

교회 분열, 중세 종교 재판, 십자군 원정, 유대인과 타 종교인들에 대한 박해, 여성에 대한 억압과 원주민들에 대한 폭력,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에 대한 파문, 2차 대전 중 나치에 대한 묵인 등까지. 이는 가톨릭 2천 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교회의 여러 가지 실수와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뼈아픈 과거들을 기억하는 것이 교회가 미래를 향해 더 쇄신하고 거룩해지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

 


 

교회의 아픈 역사와 함께하는 대사

 

이러한 교회의 안타까운 사건들 속에는 은총의 선물인 대사(indulgence)에 대한 가슴 아픈 진실들이 숨어 있습니다.

 

첫 번째, 11세기부터 시작된 십자군 원정 때의 일입니다. 1095, 우르바노 2세 교황님께서는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제1차 십자군 원정을 선포합니다. 교황님께서는 십자군 원정은 단순한 군사 행동이 아니고 성스러운 순례이자 속죄 행위라고 강조하며 십자군에 참가하는 이들에게 죄에 대한 모든 벌을 사면해 주는 전대사(plenary indulgence)를 약속합니다.

 

그 결과 당시 유럽의 기사나 평민들은 십자군에 참여하는 것이 신앙적 의무이자 구원의 길로 여겼습니다. 세속에서 지은 죄의 벌을 용서받고 죽어서 천국에 바로 갈 수 있다는 교회의 약속이 예루살렘 탈환 전쟁을 이끈 것입니다.

 

두 번째, 14세기 아비뇽 유수 때의 일입니다. 교황청이 프랑스의 왕 필립 4세의 압력으로 로마를 떠나 프랑스 아비뇽으로 이전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를 아비뇽 유수라고 합니다. 교황청이 프랑스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면서 교황의 권위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70년 뒤 그레고리오 11세 교황님께서 가까스로 로마에 귀환하였으나 그다음 해 선종하셨습니다. 그리고 중심을 잃은 교회는 두 교황으로 갈라지는 더 불행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로마에서 선출된 교황과 아비뇽에서 선출된 교황, 두 교황으로 갈라진 이 사건을 서방 교회 대분열(Western Schism)’이라고 부릅니다.

 

두 교황은 자신이 진정한 교황임을 입증하기 위해 대사 수여를 경쟁적으로 남발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대사는 단순한 구원 약속을 넘어, 신앙적 충성심 확보와 교회 재정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세 번째, 16세기 종교 개혁 때의 일입니다. 15세기 중엽부터 현금을 통해 대사를 획득할 수 있게 되면서, 대사가 교회의 주요 수입원으로 오인되기 시작합니다.

 

15세기부터 16세기까지 교황청은 성 베드로 대성당 건립을 위한 기금을 조달하기 위해 대사를 금전과 교환하는 형태로 남용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독일에서 요한 테첼(Johann Tetzel)돈이 헌금통에 떨어지는 소리가 나기도 전에 연옥 영혼은 연옥에서 해방된다.”는 선동적인 설교로 대사 판매를 진행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는 마르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1517) 발표로 이어졌으며, 종교 개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대사를 남발하고 그 효과를 과장한 결과, 대사가 면벌(免罰)이 아닌 면죄(免罪) 수단으로 오인된 것입니다. 이 때문에 대사에 대한 잘못된 표현으로 면죄부*라는 용어가 오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면죄부라는 용어는 가톨릭 교회가 금전적 대가를 받고 죄를 사해 주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에서 죄의 용서는 오직 고해성사를 통해 이루어지며, ‘면죄부대사(大赦)’의 잘못된 번역입니다. 올바른 표현은 대사부(大赦符)’입니다. 이러한 오해가 퍼진 이유도 바로 이 잘못된 용어 사용 때문입니다.

 


 

대사의 발전

 

대사는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전대사와 구별되는 부분 대사(partial indulgence)는 죄에 대한 보속(penance)의 일부를 면제해 주는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그 기원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공개 보속 관행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시 신자들은 죄를 지으면 공동체 앞에서 참회하며, 오랜 금식과 기도, 고행 등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성인의 전구(intercession of saints)”와 관련하여 죄의 보속이 단축될 수 있다는 개념이 등장했습니다.

 

9~10세기에 등장한 보속서(Penitential Books)”는 특정 죄에 대한 보속 기간을 정리한 것으로, 이후 대사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즉 날수(day)나 햇수(year)로 보속의 기간이 정해져 마치 ‘300일 부분 대사를 받으면 죄로 인해 발생한 보속 300일을 면제해 주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신자들이 대사를 양적인 보상으로 오해하면서, 신앙의 본질이 왜곡되는 문제도 나타났습니다.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한 개혁

 

바오로 6세 성인 교황님께서는 그릇된 관행들을 개혁하고자 1967년 〈대사 교리(Indulgentiarum Doctrina)〉를 공식 발표하며 대사에 대한 교회의 교리를 재정립하였습니다.

 

교황님께서는 교회가 제공하는 대사가 순수한 신앙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금전과 연계될 수 없다고 명확히 규정합니다. 또한 부분 대사에서 과거의 날수나 햇수 기준을 폐지합니다. 양적인 개념이 아닌 질적인 개념으로의 전환으로 예전 날수와 햇수 제한은 폐지하고 대사가 부가된 선행을 하는 그리스도교 신자의 행동 자체만을 고려하는 규정으로 변경되었습니다.3)

 

이 교리의 기초 위에서, 교황청 내사원은 1968년 《대사 편람(Enchiridion indulgentiarum)》을 편찬하여, 대사 수여의 조건과 실천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습니다.

 

4조 부분 대사가 결부된 행위를 적어도 참회하는 마음으로 완수한 그리스도 신자에게는 교회의 도움으로 잠시적 벌의 사면이 부여되며, 그는 이미 자신의 행위로 그와 같은 사면을 받는 것이다.”(〈대사에 관한 규범Normae de Indulgentiis,4)

 

그리스도 신자가 자기 직무를 이행하며 생활의 노고를 참아 내는 동안 하느님을 향하여 마치 봉헌하듯 마음을 들어 올리는 바로 그러한 행동들에만 대사가 부여된다.”3)

 

교회는 부분 대사가 단순히 숫자상의 보상이 아님을 명확히 합니다. 대사는 하느님의 자비로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은총의 여정이며, 연옥의 시간은 인간이 측정할 수 없는 차원이기에 금전이나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신비로운 선물입니다.

 

다시 말해, 대사는 고해성사와 결합된 회개의 길에서, 하느님의 자비와 교회의 중재를 통해 주어지는 은총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대사를 통해 단순히 벌을 면하는 것을 넘어서, 회개의 열매를 맺는 삶, 신앙의 실천, 자비의 행위, 그리고 하느님께 나아가려는 마음의 표현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는 교회가 계속해서 기억과 화해의 길을 걸으며 쇄신을 추구하듯, 우리 그리스도인도 일상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증언하는 삶으로 응답하도록 초대하는 부르심이기도 합니다.

 


 

각주

1)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 “기억과 화해: 교회와 과거의 과오들(Memoria e Riconciliazione La Chiesa e Le Colpe Del Passato)”, www.vatican.va

2) 〈대사 교리〉 제4조 참조.

3) 〈네 가지 일반 대사 수여(Quattuor Concessiones Generaliores)〉 서문

 


 

✨ 작가의 다른 글이 더 궁금하다면? 아티클 보러 가기 👇

프란치스코 교황과 희년, 그리고 전대사

프란치스코 교황과 희년, 그리고 순례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복을 향한 15가지 나침반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Profile
수원교구 사제. 로마 라테란 대학교에서 교회법을 전공했으며, 진정한 교회법의 정신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재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며 지금 이 순간, 신학생들이 진정 양들의 목소리를 잘 알아듣는 양 냄새 나는 사제가 되기를 간절히 꿈꾸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이 함께 본 콘텐츠

시리즈1개의 아티클

교회법, 그것이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