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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 공현 대축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에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 날이지만, 동시에 신앙이 머무름이 아니라 ‘움직임’임을 묻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 글은 동방 박사들의 여정과 이사야 예언자의 외침을 따라, 알고도 움직이지 않는 신앙과 자기중심적 신앙의 위험을 성찰하며,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아 나서야 하는 이유를 묵상합니다.
“일어나 비추어라”라는 말씀 앞에서, 우리는 다시 질문받습니다. 지금 내 삶과 내 마음 안에 예수님은 어디 계신가를. |
오늘 ‘주님 공현 대축일’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에 그 모습을 나타내셨음을 기뻐하는 날입니다. 동방 박사들의 여정은 우리 신앙인들이 ‘머물러 주저앉은 삶이 아닌, 변화와 떠남의 영성’을 가져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이탈리아의 마르티니 추기경은 모세를 ‘파스카 인간’으로 규정하며, 이는 ‘건너가는 인간’을 뜻한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삶, 체험, 실존 속에서 하나에서 다른 곳으로 용감하게 옮아가는 사람입니다. 철학자 니체 또한 “뱀이 허물을 벗지 못하면 죽고 만다. 사람도 과거의 허물을 벗고 변화되지 못하면 파멸하고 만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신앙인이 현재의 기도, 신앙생활, 위치에 만족하며 변화와 진보를 두려워합니다. 더 큰 별빛이 비추어도 일어서지 않고, 주님의 목소리가 울려도 듣지 않아 신앙은 퇴보하고 폐쇄적인 편협함으로 전락합니다. 자기 가족, 자기 단체, 자기 본당에 발목이 잡혀 더 큰 것을 돌아볼 여지가 없어집니다. 이에 이사야 예언자는 준엄하게 선포합니다.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이사 60,1)
이 말씀과 함께 복음의 장면을 봅니다. 동방 박사들은 “유다인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고 물으며 험난한 여정을 감수하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메시아를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묻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여러분 마음 안에 예수님은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이 질문을 던지며 끊임없이 예수님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자세히 보면, 동방 박사들과는 대조적인 두 부류의 모습이 있습니다.
첫째로 수석 사제와 율법 학자들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잘 알아 베들레헴이라는 정확한 답을 알고 있었지만, 찾으러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형식적인 앎에 머물러 신앙의 가치를 삶에서 외면하는 우리 안의 ‘무관심’을 대변합니다.
둘째로 헤로데 왕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자기 권력의 경쟁자로 여겨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기심과 인간적 야망, 세상의 가치만을 따르려 한다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귀찮은 존재, 그분의 가르침은 없애야 할 장애가 될 것입니다. 이는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이기심’을 대변합니다.
이처럼 오늘 복음은 ‘움직이고 찾는’ 동방 박사와 ‘제자리에 눌러앉아’ 완고함을 고집한 헤로데, 유대인 지도자들의 역동적인 대조를 보여 줍니다. 사실 우리가 맞이한 새해의 현실은 인간적으로 밝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힘겨운 관계와 세상의 악행이 우리를 지겹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안에 오신 예수님이라는 빛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그 빛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동방 박사들처럼 고통과 지루함도 무릅쓰고 기나긴 여정을 묵묵히 걸어 마침내 구원의 빛을 찾아낸 모범을 따라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의 입을 빌려 재차 말씀하십니다.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이사 60,2)
그리고 우리에게 권고합니다.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이사 60,1)
우리는 깊이 있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내 마음 안의 예수님의 빛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올 한 해, 어떤 건너가는 삶을 통해 그 빛을 더욱 밝게 비출 것인지. 과연 지금의 내 삶에, 내 마음 안에, 예수님께서는 어디 있습니까?
🙏 오늘의 묵상 포인트
지난 한 해, 내 신앙의 모습은 동방 박사와 율법 학자 중 누구와 닮았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