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스승’ 니코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온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성경 이야기

“‘이스라엘의 스승’ 니코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온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그분을 만난 뒤로 - 니코데모 이야기(1)

사실 요한복음, 더 나아가 공관복음에서도 니코데모처럼 독특하고도 매력적인 인물은 매우 찾기 어려울 것이다.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 의원임에도(요한 3,1), 예수님께 스스로 찾아와 그분의 가르침을 기꺼이 들은 이였기 때문이다. 물론 예수님을 찾아온 종교 관계자들은 이전에도 많았다(1,19). 하지만 이들은 높으신 분들이 아니라, ‘그분들이 보낸 부하들이었다(1,24). 높으신 분들은 자신들이 직접 예수님을 찾아오는 것 자체로 부담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체면을 구기진 않을까, 염려했던 것 같다. 허울뿐인 교심을 놓지 못한 것이다.

 

최고 의회의 의원이었던 니코데모는 모든 사람이 잠든 밤에 조용히 예수님을 찾아왔다(3,2). 하지만 남들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다른 동료들과는 달리 제 발로 직접 예수님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 모습은 비판받기보다 인간적인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모든 사람에게 찬사를 받는 최고 의회의 의원, 니코데모 앞에 많은 표징을 일으키는 가난한 랍비가 나타났다. 그 많은 표징은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신다는 확증이었다(3,2). 밝은 대낮에, 사람들 앞에서 그분을 만나 가르침받는 것이 가능할까? 동료들이 모두 언짢게 생각하는 그분을 말이다. 소문은 금방 퍼질 것이다. 동료들에게 눈총을 받을 것이고, 그 외에도 여러 난처한 상황이 생길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몸담은 종교 공동체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행동이 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컸을 것이다. 이 때문에 니코데모는 밤에 혼자 그분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듣고 그분에 대해 알아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율법에 관한 지식에 있어 그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 엘리트였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알 수 있다.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요한 3,10)

 

실제로 그는 요한복음에서 주님으로부터 스승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유일한 유다인이다. 그러한 사람이 자신을 내려놓고, 재산도, 권력도, 사회적 직위도 없는 이 소박한 분을 제 발로 직접 찾아온 것이다. 이 모습은 자신의 권위에만 찌들어 교만의 악취를 풍기는 다른 권력자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 준다.

 

지금부터 이러한 니코데모가 요한복음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요한복음에서 드러나는 그의 모습은 어쩌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예수님과 맺는 관계에 관해 여러 가지 생각할 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의회에서 승리하는 사람, 백성들 사이에서 승리하는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니코데모는 요한복음에서 총 세 번 등장한다(3,1-21; 7,50-52; 19,38-42). 첫 번째 장면에서 니코데모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 그분께 가르침을 듣고 여러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3,4.9). 니코데모가 예수님을 처음으로 마주했던 때인데, 놀랍게도 이때는 그 둘이 직접 만나 대화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이다. 두 번째 등장은 예수님을 잡아 오라고 보낸 경비병들이 빈손으로 돌아오자, 많은 바리사이가 그들을 꾸짖는 장면에 나온다. 니코데모는 여기서 사람을 심판하기 전에 당사자의 말을 직접 들어 보아야 한다며 예수님께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드리려는 모습을 보인다. 마지막 장면은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과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분의 시신을 모셔다 장례를 치르는 가운데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니코데모는 예수님 공생활의 처음과 중간, 끝에 등장하는 셈이다.

 

우리가 요한 복음서 3장에서 처음 니코데모를 만났을 때는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예수님께 왔는지 드러나지 않는다.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예수님을 조사하라고 동료들이 보낸 것일까?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어서 찾아온 것일까? 복음서는 니코데모의 마음을 일절 언급하지 않고, 이 공간을 우리가 추측으로 채우도록 남겨 놓는다. 사실 공관복음서에서 등장인물의 속마음이 쉬이 드러나는 경우를 자주 발견한다.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속으로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고 생각하였다.”(마태 9,3)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마르 5,27-28)

베드로는 주님께서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너는 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루카 22,61-62)

 

이러한 현상은 요한 복음서에도 예외가 아니기에, 등장인물의 속마음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자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다.”(요한 2,17)

예수님께서는 라자로가 죽었다고 하셨는데, 제자들은 그냥 잠을 잔다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생각하였다.”(요한 9,17)

 

그러니 마음만 먹었으면 요한 복음서 저자도 니코데모의 속마음을 드러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니코데모의 속마음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 우리는 마치 표지판 없이 목적지를 찾아가는 순례자처럼, 이 베일에 싸인 인물을 알기 위해, 스스로 살펴보아야 한다.

 

당시 바리사이들은 사제직을 갖고 있던 사두가이들과는 달리 대부분 평신도로서, 모세의 율법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이에 대한 권위를 행사하던 사람들이었다. 비록 당시 정치적 권력을 쥐고 있지는 않았지만, 군중을 움직일 큰 힘이 있었기에 그들의 사회적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러한 분파에서 최고 의회 의원이라면, 니코데모가 윤택한 엘리트적 삶을 살아왔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토록 아쉬울 것 없어 보이는 니코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온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Profile
인천교구 사제. 현재 로마에서 성경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담긴 메시지를 연구하는 것이 제 주된 일이지만, 그것을 넘어 교회 안에는 세속에서 찾을 수 없는 사랑과 배려가 존재한다는 것을 가능한, 많은 이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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