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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옷은 빛처럼 하얘진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예수님께서는 영광의 순간에 머무르지 않으시고, 산에서 내려오시는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사순 시기,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며 걷고 있을까요? 거룩한 변모 이후에 이어진 예수님의 발걸음을 따라, 사순의 길 위에서 ‘십자가’와 ‘부활의 영광’ 사이를 조용히 묵상해 봅시다. |
우리는 좋은 결과를 얻고자 합니다. 좋은 결과를 원하다 보면 그 결과 자체에 집중하게 되는 순간들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자칫 우리는 과정보다 결과만을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생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결과에는 그에 따르는 과정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좋은 과정과 함께할 때 결과는 더욱 빛납니다.
우리는 사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사순 시기는 전례적으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부활을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사순 시기가 이어지는 긴 시간 동안 우리는 절제와 보속을 통해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걷고 묵상해야 합니다. 이 길을 걷고 있는 우리는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특히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서 고난을 겪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것을 예고하신 직후에 일어난 일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거룩한 변모’ 사건을 단순히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영광을 보여 주신 기적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묵상하며 사순 시기를 보내는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수난을 예고하는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변모’는 혼란에 빠진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영광을 미리 맛보게 해 주신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죽음이 끝이 아니라, 그 너머에 부활의 영광이 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 거룩한 변모를 목격한 제자들의 반응은 참으로 인간적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그 영광에 머물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치며 초막 셋을 짓겠다고 말합니다. 이는 영광스러운 결과만을 바라보며 그 순간에 머물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어쩌면 너무나 인간적이고 솔직한 반응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의 마음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말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으시고, 산에서 내려오십니다. 산에서 내려 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그분께서 영광에 머무르지 않고 당신에게 다가올 수난의 길 또한 기꺼이 받아들이시는 분이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영광’이라는 결과에만 머물지 말고, 그 영광을 향해 걸어가야 하는 수난까지 함께 받아들이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순 시기를 보내는 지금,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 길은 십자가의 길이며 수난의 길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좋은 결과만 바라며 어렵고 힘든 길을 외면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우리는 오늘 복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가 있고 난 뒤, 하늘에서는 이러한 하느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 17,5)
우리가 들어야 할 것은 세상의 소란한 소리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눈앞의 십자가 너머에 있는 부활의 영광입니다.
우리가 걷고 있는 이 사순의 여정이 비록 힘들고 지칠지라도, 우리 마음속에는 하느님 나라의 영광이 자리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의 삶에서 마주하는 작은 십자가들을 지고 묵묵히 걸어갈 때, 그 끝에는 반드시 주님께서 예비하신 영광스러운 부활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사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지금, 우리는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이 고단하고 힘들지라도, 그 너머에 있는 부활의 영광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고단함이 있기에 우리에게 다가올 부활의 영광은 더욱 빛날 수 있음을 기억하며, 우리 삶의 자리에 놓인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사순 시기를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