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포장지를 뚫고 흐르는 사랑

성경 이야기

율법의 포장지를 뚫고 흐르는 사랑

연중 제28주일 |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2025. 10. 11
읽음 66

6

3

 

✟ 우리는 종종 눈에 보이는 규정과 형식에 얽매여, 그 안에 담긴 사랑을 놓치곤 하지요. 오늘 복음 속 사마리아인은 율법보다 더 깊은 사랑을 알아보며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이한석 신부님과 함께 사랑은 포장지 속에 갇힌 게 아니라, 그 포장지를 뚫고 흘러넘치는 선물임을 함께 묵상해 봅시다.

 

복음을 이해하려면 간단한 성서 지식이 필요합니다. 먼저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러 돌아온 사마리아인의 출신지가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솔로몬 왕 이후에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섭니다. 각자의 왕조를 가지게 되었고, 같은 하느님을 모셨지만 종교적으로 조금씩 멀어집니다. 물론 지금의 우리나라처럼 왕래를 전혀 하지 않는 휴전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둘의 골은 점점 깊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남쪽의 유다 사람들에게 사마리아라는 지역은 이방인의 땅과 같이 하느님을 모르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그들에게 사마리아인들은 이방인들의 영향으로 전통적인 야훼 하느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사마리아인을 외국인이라고까지 표현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께서 나환자 열 명을 고쳐 주시는 과정도 성서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나환자들은 멀리서 예수님께 자신들을 고쳐 달라고 청합니다. 그들은 가까이 오지 않았습니다. 오랜 병환 때문에 예의가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사실 율법에 따르면 피부병에 걸린 이들은 공동체로부터 떠나서, 다 나을 때까지 공동체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피부병이 다 나아도 사제에게 공식적인 인정을 받는 율법이 규정을 따르지 않으면 공동체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멀리서 자신들의 병을 고쳐 달라는 나환자들의 외침과 사제에게 자신들의 몸을 보이기 위해 간 그들의 선택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들은 율법에 따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을 당연히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준으로 볼 때, 예수님께 가까이 온 사마리아인은 이상합니다. 이방인과 같은 사마리아인이 정해진 율법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어리석은 행동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를 비난하지 않으시고 그의 믿음에 감탄하십니다. 그러시면서 그들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왔다고 칭찬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지키지 않은 것에 감탄하신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그가 품은 사랑을 알아보신 것입니다. 또한 이방인처럼 여겨지던 사마리아인이 모든 율법이 자리한 사랑을 알아본 것에 감탄하셨습니다. 사랑과 그 사랑을 감싼 포장지와 같은 율법을 구분한 그의 마음을 받아주십니다.

 

우리도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교회가 이끄는 규정들을 따라갑니다. 그것 자체로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 믿음의 목적은 규정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교회의 규정은 사랑을 감싼 포장지입니다. 포장지에 천착하여 그 내용물인 사랑에 소홀하다면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울리는 징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물론 좋은 포장지가 필요합니다. 내용물이 귀하다면, 그만큼 귀하게 다뤄야 합니다. 그러나 매번 지킨 주일과 성사, 본당 활동이 내가 품은 사랑을 보증하지는 못합니다. 좋은 포장지에 담긴 귀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그것을 감싼 포장지마저도 넘어섭니다.

 


 

🌸 오늘의 묵상 포인트

 

진정한 사랑을 발견한 적 있나요?

사랑을 실천하는 작은 일이 진실된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로마 교황청립 성서 대학에서 성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루카 6,20)라는 말씀을 사제 생활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사랑으로 실현하고자 꿈꾸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이 함께 본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