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기에르 주교는 왜 조선을 선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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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기에르 주교는 왜 조선을 선택했을까?

‘하느님의 종’ 브뤼기에르 주교의 생애와 덕행

2026. 0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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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는 초대 조선 천주교회 대목구장이셨던 브뤼기에르(Barthélémy Bruguière, 1792~1835) 주교님에 대한 시복(諡福) 청원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 번쯤 들어보셨을 그분의 삶과 덕행을 간략히 소개하며, 주교님의 명성이 신자분들 사이에서 널리 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생애

 

브뤼기에르 주교는 1792212일 프랑스 남부 나르본 지방의 작은 농촌 마을 레이삭 도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자작농 가정의 열한 번째 아들로, 가족과 마을 공동체 모두 신심이 깊은 환경에서 성장하였습니다. 1815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대신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며 안정된 교구 사제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안정된 삶에 머무르지 않고, 머나먼 선교지의 영혼들을 향한 열망을 품었습니다.  자기 절제와 극기의 삶을 실천하며 선교사로서 준비를 이어갔고, 마침내 소속 교구장의 허락을 받아 1825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한 뒤 아시아 선교사로 파견됩니다.

 


 

조선 천주교회에 대한 열정

 

브뤼기에르 신부는 시암(오늘날 방콕)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시기부터 조선 천주교회에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는 조선 신자들이 성직자 파견을 청원한 서한을 접하고 깊은 감동을 받았으며,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 온 공동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확신은 단순한 열정에 머물지 않고, 직접 조선 선교를 맡겠다는 결단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1829519일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에 서한을 보내 조선 선교지와 신자들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자신이 그 일을 맡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밝혔습니다. 이후에도 그는 교황청 포교성성(오늘날 인류복음화부)에 여러 차례 뜻을 전하면서 조선 선교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설득하고자 했습니다. 당시 조선 선교를 둘러싼 분위기는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지만, 브뤼기에르 신부는 제기되는 반대 논리에 조목조목 반박하며 조선으로 선교하러 가겠다는 자기 뜻을 이어 나갔습니다.

 


 

초대 대목구장 임명

 

마침내 교황청은 조선 선교지를 대목구로 설정하고, 그 초대 대목구장으로 브뤼기에르 주교를 임명했습니다. 그는 이 소식을 접하자, 곧 조선을 향한 여정을 시작했고, 마카오를 거쳐 중국 대륙을 종단하는 혹독한 여정에 나섰습니다.

 

1832년 페낭을 출발한 이후 그는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중국을 남에서 북으로 거쳐 조선을 향해 나아갔고, 그 과정에서 극심한 육체적 고통과 고립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폭염과 혹한, 장거리 이동으로 인한 피로와 궁핍 속에서 그는 수종 병과 심한 두통, 구토 증세에 시달렸으며, 병세는 점차 악화되었습니다. 그리고 18351020일 마가자 인근 교우촌에서 선종했습니다.

 


 

브뤼기에르 주교가 보여 준 향주삼덕(向主三德)

 

브뤼기에르 주교의 삶은 믿음·희망·사랑이라는 하느님을 향해 이루어지는 세 가지 덕행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믿음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과 사명이 하느님의 부르심과 섭리 안에 있다는 확신에 기초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조선 선교의 성공 여부나 인간적 계산에 의존하지 않고, 모든 과정을 하느님의 뜻에 맡겼습니다. 조선 입국이 반복적으로 좌절되고 끝내 입국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자신의 처지를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해석하며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유지했습니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희망은 단순한 낙관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 의지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조선 선교가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불가능해 보이는 것조차 하느님께는 가능하다라는 확신 속에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그의 믿음희망을 실질적으로 떠받치고 있던 것은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사랑은 자신의 안락과 생명을 기꺼이 내어놓는 선택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그는 사제 없이 오랜 세월 신앙을 지켜 온 조선 신자들을 목자 없는 가련한 이들로 인식하며 깊은 연민과 책임감을 느꼈고, 바로 그 사랑 때문에 조선 선교를 자원하였습니다. 순교의 가능성까지 받아들이며 험난한 여정을 계속한 그의 모습은 하느님을 향한 사랑을 이웃 사랑으로 실천한 전형적인 목자의 모습입니다.

 


 

브뤼기에르 주교가 보여 준 사추덕(四樞德)

 

가톨릭 교회는 흔히 사추덕이라 불리는 지혜, 정의, 용기, 절제의 덕을 강조합니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삶 속에서도 이 사추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그의 지혜는 복잡한 국제 선교 환경 속에서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조선 교회를 위해 실현 가능한 길을 모색한 데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는 조선 선교가 단순한 열정만으로는 지속될 수 없음을 인식하고, 파리외방전교회와 교황청 포교성성, 그리고 중국 내 선교 관할권 문제를 끈질기게 조율하였습니다.

 

그의 정의는 하느님과 이웃에게 마땅히 돌려드려야 할 것을 끝까지 실천하려는 태도에서 드러납니다. 그는 자신의 사명과 처지를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맡기며, 언제든 부르심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동시에 조선 신자들이 처한 불의한 상황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선교회 간의 이해관계나 관할권 다툼이 조선 교회의 구원에 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여, 자신의 언행에 실수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그로 인한 피해가 조선 교우들에게 돌아가지 않도록 청원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하느님과 이웃 모두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는 그의 태도를 잘 보여 줍니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용기는 그가 조선 선교를 자원한 것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체포와 순교의 가능성을 명확히 인식한 상태에서 조선 선교를 자원했습니다. 또한 중국을 횡단하는 여정 동안 겪은 질병과 고통, 고립과 방해 속에서도 자신의 운명을 하느님의 손에 맡기고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절제는 그의 일상과 선교 여정 전반을 지배한 삶의 태도였습니다. 그는 의식주 전반에서 검소함을 유지했고, 금전 문제에서도 투명성과 책임을 지켰습니다. 선교 준비 시기부터 고신극기를 실천했으며, 여행 중에도 극심한 환경 속에서 탐식과 안일함을 경계하며 기도와 극기로 자신을 다스렸습니다.

 


 

시복 시성 운동, 우리를 위한 신앙의 여정

 

사실 시복 시성 운동은 이미 하늘나라에서 하느님과 함께 기쁨을 누리고 계시는 분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이어 나가는 우리들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분들이 보여 주신 신앙의 모범을 본받고, 그 신앙의 힘으로 현세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브뤼기에르 주교님께서 보여 주신 삶의 모범은 오늘날 우리 신앙인에게도 큰 귀감이 됩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목자 없이 홀로 신앙생활을 어떻게든 이어 가려 노력하던 조선 교회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그의 삶을 설명해 주는 핵심 단어라 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헤매다가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삶을 마쳤던 것처럼, 브뤼기에르 주교님도 조선 땅에 들어오기 위해 애쓰시다가 목적지인 그 땅을 눈앞에 두고 하느님 품에 잠드셨습니다.

 

모세의 삶은 목표했던 바를 성취하지 못했기에 인간적인 기준으로 보면 실패라고 할 수 있지만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를 건너온 여정은 구약에서 큰 의미를 지닙니다. 마찬가지로 브뤼기에르 주교님도 비록 조선 땅에 들어오시지는 못한 채 선종하셨지만, 그가 조선 천주교회에 대해 지녔던 그 마음과 선교 열정은 그의 뒤를 잇는 다른 선교사들을 통해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의 초석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삶과 덕행이 가톨릭 신자 여러분들 사이에 널리 퍼지기를 희망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신앙 여정 역시 때로는 무미건조하고 때로는 어려움을 겪더라도,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모범과 전구로 하느님을 더 사랑하고 하느님과 더 일치하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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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 검찰관을 역임했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교수 겸 서울대교구 법원 재판관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시복을 위하여 많은 분이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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