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주 기도로 만나는 은총의 순간 | 환희의 신비

성경 이야기

묵주 기도로 만나는 은총의 순간 | 환희의 신비

세상 안에 육화된 하느님의 사랑을 묵상하다

2025. 10.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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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주 기도는 복음의 깊은 강줄기를 따라 걷는 순례의 여정이다. 이 여정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적으로 이루어진 하느님의 구원을 점점 깊이 묵상하게 된다. 그렇기에 요한 바오로 2세 성인 교황은 묵주 기도를 일컬어 그리스도의 얼굴을 마리아와 함께 바라보는 기도라고 말하며, 그것이 하느님 백성의 내적 성숙과 영적 성장을 위한 여정임을 강조하셨다(사도적 서한 Rosarium Virginis Mariae, 3항 참조).

 

이 가운데 특히 환희의 신비는, 마리아의 시선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이 세상 안에 육화되어 오는 결정적 순간을 묵상하도록 돕는다. 이 다섯 개의 신비를 통해 우리는 과거 사건의 기억을 넘어, 하느님의 구원이 지금 여기’,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체험하게 된다.



 

환희의 신비 1| 사랑하고 사랑받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이 첫 번째 신비에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한 인간, 나자렛의 앳된 여인에게 다가오신 순간을 묵상한다. 천사의 인사는 마리아를 향한 것이면서 동시에 모든 인류를 향한 초대이다.

 

하느님께서는 저세상 너머에서 수정 구슬로 우리를 관찰하시는 분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의 삶 속에 함께 계시며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한 사랑받기를 원하는 분이시다. 우리가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라고 응답할 때, 하느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자라난다. 인간적인 계산을 내려놓고, 예측 불가능한 현실을 기꺼이 수용하는 순간, 사랑에 뿌리내린 기쁨은 마치 물 댄 동산의 나무처럼 고요히, 그러나 끊임없이 성장한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마리아의 이 단순하면서도 전적인 수락은 모든 제자들의 첫 발걸음이 된다.

 


 

환희의 신비 2| 나눔과 연대

 

그 무렵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루카 1,39)

 

성령으로 잉태된 마리아는 기쁜 소식, 즉 복음의 전파자로서 길을 떠난다. 그녀는 지체하지 않았다. 사랑은 머뭇거리지 않는다. 마리아는 누군가의 필요를 감지하고, 그 부름 앞에 서둘러길을 나선다.

 

그녀가 엘리사벳에게 간 것은 단순히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루카 1,36)라는 천사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이 든 친족의 고통을 짐작하고 함께하기 위한 깊은 연대였다. 마리아는 그저 인사만 나누고 돌아서지 않았다. 그녀는 무려 석 달간그곳에 머물렀고, 불안과 기쁨을 나누었다.

 

이 신비는 우리에게 묻는다. 다른 이의 필요에 나를 내어 주기 위해 서둘러달려갈 수 있는가? 우리는 종종 많은 말을 한다. 그러나 진정한 복음은 화려한 말이 아닌, 가까이에 머무는 마음의 온기에서 이루어진다.

 

마리아처럼 다른 이의 필요와 그의 리듬에 나를 기꺼이 맞추고, 그 곁에 조용히 머무를 수 있을 때, 우리는 성령 안에서 누리는 순수한 기쁨의 전달자가 된다.

 


 

환희의 신비 3| 가장 낮은 곳의 기쁨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루카 2,7)

 

세상을 창조하신 분께서, 세상이 내어 준 가장 작은 공간에 오셨다. 그분께서는 권력의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서, 화려한 궁정이 아닌 어두운 마구간에서, 환호하는 무리 속에서가 아닌 조용한 밤에 태어나셨다. 구유 위에 누이신 아기는, 하느님의 영광이 인간의 연약함 안에 기꺼이 머무심을 보여 준다.

 

성탄의 기쁨은 이처럼 겉으로는 초라하지만, 그 속에는 거룩한 빛이 가득하다. 하느님의 사랑은 가장 낮은 자리로 스스로 내려오셨고, 그 자리가 바로 인간 구원의 시작점이 되었다. 우리는 그분의 모습에서, 사랑이 어떻게 자기를 비움으로 드높은 거룩함을 드러내는지 배운다. 이 신비는 질그릇과 같은 자신의 나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주님의 은총을 담는 그릇으로 여기고 기뻐할 것을 가르친다.

 

우리가 가난할 때, 그 자리에 하느님의 빛이 깃든다. 그리고 그 빛은 세상을 향한 사랑의 증표가 되고 이것이 바로 거룩한 기쁨의 원천이 된다.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말처럼, 기쁨은 거대한 사건이 아닌, 한 번의 눈길, 한마디의 말 안에 담긴 사랑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1코린 1,27)

 


 

환희의 신비 4| 인내의 열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그들은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루카 2,22)

 

이 성전 봉헌의 장면에 등장하는 예언자 안나는 약 여든네 살의 과부로,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금식과 기도로 하느님을 밤낮으로 섬기던 이”(루카 2,37 참조)로 소개된다. 그녀의 삶은 기다림 속에서도 하느님의 현존을 포기하지 않았던 신실함의 상징이다. 오랜 세월의 외로움 속에서도, 그녀는 성전을 떠나지 않았고, 구원을 향해 온 마음을 다해 깨어 있었다. 이 신비는 우리에게 보여 준다. 환희는 즉각적으로 오는 감정의 고양이 아닌, 시간 속에서 더디게 여물어 가는 인내의 열매라는 것을.

 

오늘도 우리 곁에는 안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 매일 미사에 참례하며 하루를 봉헌하는 이들, 호스피스 병동에서 거룩한 임종을 돕는 봉사자들, 자녀를 위해 밤낮으로 기도하는 어머니들……. 그리고 저마다의 자리에서 주님께 희망을 두며 매일을 신앙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바쳐지는 그들의 끊임없는 기도는, 마치 성막을 감싼 구름과 불기둥처럼 하느님의 구원이 지금 여기에 머문다는 것을 증언한다.

 

그 모든 여정 중에 이스라엘의 온 집안이 보는 앞에서, 낮에는 주님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탈출 40,38)

 


 

환희의 신비 5| 마음에 간직하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9)

 

열두 살 예수의 이 말은 복음서에서 기록된 그분의 첫 번째 공적 말씀이다. 짧지만, 그 속에는 그분의 정체성과 사명이 온전히 담겨 있다. 그런데 이 말을 가장 먼저 들은 이는 다름 아닌, 그분을 낳고 기르며 사랑으로 삶을 함께해 온 부모들이었다. 타지에서 아들을 잃어버리고 사흘간 애타게 찾아 헤맨 끝에 마주한 대답이 저를 왜 찾으셨습니까?”라니……. 보통의 부모라면 으레 서운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다.

 

이것은 누군가를 향한 기대와 애정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을 때느끼게 되는 우리의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우리는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도 이와 서운함과 원망을 느낄 때가 있지 않은가? 기도를 바쳤는데 내가 바라는 응답은 없는 듯하고, 나의 헌신과 봉사는 마치 14억 가톨릭 교회의 바닷속에 부유하는 모래 하나쯤의 무게로 외면당하는 듯 느껴질 때, 왠지 하느님께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예수님의 말씀이 지닌 핵심은 그분의 삶이 이제 더 이상 단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머물지 않고, 아버지의 뜻 안에 뿌리내려야 한다는 깊은 자각에 있다. 그의 부모는 이제 아들이 하느님의 일 안에 머물기 위해, 자신들과의 정서적 연결도 초월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사랑은 때때로 우리의 기대를 거스르고, 그렇기에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는 기쁨을 우리에게 전해 준다. 마리아 역시 모든 것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간직하였다.”(루카 2,51) 이 짧은 구절 안에는, 말 없는 수용과 흔들림 없는 신뢰, 그리고 오래 숙성되어 피어나는 기쁨이 담겨 있다.

 


 

기쁨의 은총을 청하며

 

마음에 간직한다라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나 이해를 보류(epoché)하는 기다림의 태도다. 그것은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의 표현으로서, 마음속에 불만을 담아 두는 앙심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실, 마리아가 예수님의 삶과 말씀을 언제나 온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논리로 해석하기보다는 침묵으로 응답했고, 모든 것을 가슴 깊이 간직했다.

 

묵주 기도는 바로 이러한 느림기다림을 품은 기도. 천천히, 마치 호흡하듯 성모송을 되뇌는 동안, 우리는 신비의 장면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게 되고, 하느님의 기쁨 안에서 조금씩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익히게 될 것이다.

 


 
*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Profile
한국순교복자 수녀회 소속으로 현재 로마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이수하고 있습니다. 성경 속 살아계신 하느님의 음성이 인간 언어의 희미한 잡음을 넘어 선명하게 울리도록, 마치 오래된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듯 조심스러운 손길과 눈길로 성경을 읽고, 되새기며, 이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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