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 서울 WYD 수호성인② 낯선 이들에게도 사랑을 전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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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서울 WYD 수호성인② 낯선 이들에게도 사랑을 전한 사람들

카브리니, 바키타, 카를로 아쿠티스 이야기

2026. 06.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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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야기의 핵심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수호성인! 낯선 땅과 디지털 시대 속에서도 사랑을 전했던 세 성인의 이야기입니다. 프란체스카 사베리아 카브리니, 요세피나 바키타, 카를로 아쿠티스가 상처 속에서도 사랑과 희망을 선택했던 삶을 확인해 보세요!

 


 

지난 성소 주일, 교황청 평신도가정생명부와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조직위원회는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수호성인으로 다섯 명의 성인을 선정했습니다.

 

바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1920~2005), 김대건 안드레아(1821~1846), 프란체스카 사베리아 카브리니(1850~1917), 요세피나 바키타(1869~1947), 카를로 아쿠티스(1991~2006)입니다.

 

왜 지금, 이 다섯 명의 성인이 수호성인으로 선정되었을까요? 지금 우리가 이 성인들을 다시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정리해 봤어요! 오늘은 프란체스카 사베리아 카브리니, 요세피나 바키타, 카를로 아쿠티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김대건 안드레아의 이야기도 살펴보기

 


  

 

낯선 땅으로 향한 수도자, 성 프란체스카 사베리아 카브리니

 

Q. 카브리니 성인은 어떤 삶을 살았나요?

 

성인은 어린 시절부터 수도자가 되기를 바랐지만,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여러 번 거절당했습니다. 많은 사람이라면 포기했겠지만, 카브리니는 오히려 고아들을 보살피며 헌신했고, 결국 직접 예수 성심 선교 수녀회를 세웠습니다.

원래는 중국 선교를 꿈꿨지만, 레오 13세 교황의 권고로 미국 뉴욕에 있는 이탈리아 이민자를 찾아가게 됩니다. 당시 이민자들은 가난과 차별 속에서 외롭게 살아가고 있었고, 카브리니는 그들 곁으로 가장 먼저 걸어간 사람이었습니다.

 

Q. 성인의 선교 열정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카브리니 성인은 연약한 몸으로 대서양을 30번이나 건넜습니다. 지금처럼 이동이 쉬운 시대도 아니었죠. 긴 항해와 낯선 환경은 늘 위험과 불안을 동반했습니다.

그런데도 멈추지 않고 미국과 남미, 유럽 곳곳에 학교와 병원, 고아원, 수녀원을 세우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갔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녀의 선교가 거창한 말보다 돌봄에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굶주린 사람에게는 식사를, 외로운 아이에게는 집을 마련해 주는 일이었죠.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단순한 선교사가 아니라, 낯선 이들의 어머니처럼 기억합니다.

 

Q. 오늘날 카브리니 성인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새로운 나라와 낯선 환경 속에서 살아갑니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외로움을 겪기도 하죠. 카브리니 성인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먼저 바라본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민자들의 수호성인으로 불립니다. 그녀의 삶은 특별한 영웅담이라기보다, “낯선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라는 아주 현실적인 질문을 남깁니다. 이는 지금도 여전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 상징물: 증기선

 

증기선은 카브리니 성인의 삶을 상징합니다. 성인이 작은 몸으로 거친 파도를 지나며 낯선 도시로 향했던 여정에는 하느님에 대한 깊은 신뢰와 사람들을 향한 사랑이 담겨 있었습니다. 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누군가의 외로움 곁으로 가기 위해 멈추지 않았던 성인의 모습을 닮아 있습니다.

  


 

 

깊은 상처를 희망과 용서로 바꾸어 낸 사람, 요세피나 바키타

 

Q. 바키타 성인은 왜 희망의 증인이라고 불리나요?

 

수단에서 태어난 성인은 어린 나이에 납치되어 노예로 팔려 다녀야 했고, 이름마저 빼앗긴 채 살아야 했습니다. ‘바키타라는 이름도 본래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붙여 준 이름이었죠.

하지만 삶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탈리아로 건너간 뒤,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이 존엄한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배우게 되었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요세피나라는 이름을 얻은 순간은 단순히 이름이 바뀐 일이 아니라 잃어버렸던 삶을 되찾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Q. 사람들이 성인의 삶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모습은 무엇인가요?

 

오랜 학대와 폭력을 겪었지만, 성인은 평생 다른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하며 살아갔습니다. 1893년 카노사 애덕의 딸 수녀회에 입회한 뒤, 수도원에서는 문지기와 요리사처럼 눈에 띄지 않는 일을 맡았지만 늘 밝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했다고 전해집니다.

바키타 성인에게 자유는 단지 쇠사슬이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사랑과 용서를 잃지 않는 마음이었습니다.

 

Q. 오늘날에도 성인의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전히 세계 곳곳에는 인신매매와 폭력, 차별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키타 성인의 축일인 28일은 세계 인신매매 반대 기도의 날입니다.

성인의 삶은 인간의 존엄은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동시에 가장 깊은 상처를 겪은 사람도 다시 희망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성인을 아프리카의 꽃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 상징물: 끊어진 쇠사슬

 

끊어진 쇠사슬은 바키타 성인의 삶을 잘 보여 줍니다. 이는 단지 노예 생활에서의 해방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성인은 미움과 고통에 붙잡히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새로운 삶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그 쇠사슬은 억압의 끝인 동시에, 다시 희망으로 걸어가기 시작한 믿음의 표지가 되었습니다.

 


 

 

기술을 통해 사랑과 희망을 전한 하느님의 인플루언서’, 카를로 아쿠티스

 

Q. 요즘 카를로 아쿠티스가 특별히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는 게임과 컴퓨터를 좋아했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평범한 청소년이었지만 삶의 중심에는 늘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는 성체는 하늘나라로 가는 나의 고속도로라고 말하며, 어린 나이부터 매일 미사와 성체 조배에 참여했습니다.

특히 디지털 기술을 신앙과 연결했다는 점이 돋보입니다. 그는 뛰어난 컴퓨터 실력을 활용해 전 세계 성체 기적 자료를 정리한 웹사이트를 만들었고, 인터넷을 통해 신앙을 쉽고 친근하게 전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인터넷의 수호성인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Q. 그의 삶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많은 사람이 카를로의 밝고 따뜻한 태도를 기억합니다. 그는 특별한 영웅처럼 보이기보다, 주변 사람들을 세심하게 챙기던 학생에 가까웠습니다. 노숙인과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을 꾸준히 했고,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무척 존경했습니다.

2006년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을 때에도, 하느님을 원망하는 대신 자신의 고통을 교회와 교황을 위해 봉헌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두려움보다 사랑을 선택하려 했던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Q. 오늘날 청년들에게 카를로 아쿠티스는 어떤 의미일까요?

 

성인은 디지털 시대에도 거룩함은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 줬습니다. 그는 인터넷과 기술을 단순한 소비의 도구로만 사용하지 않았고, 사람들을 연결하고 좋은 메시지를 전하는 길로 활용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가 그의 삶을 보며 신앙이 꼭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온라인 세계 안에서도 살아 움직일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하죠. 성인은 거창한 말보다 자신의 일상으로 그것을 보여 줬습니다.

 

💡 상징물: 컴퓨터

 

컴퓨터는 카를로 아쿠티스의 삶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상징입니다. 그는 디지털 기술을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하느님과 성체에 대한 사랑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컴퓨터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세상과 희망을 이어 주는 작은 창문처럼 남아 있습니다.

 

 


 

📢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에 방문해 보세요!

 


 

사진 ©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조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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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깊이를 더하고, 삶의 영감을 주는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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