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거룩하게 변모하십니다. 예수님의 변모는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이 하얗게 번쩍인 사건만을 기념하는 게 아닙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 중심으로 변화되었음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의로움도, 모세를 통한 가르침도, 예언서를 바라보는 방식도 모든 것이 다 그리스도 중심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또 예수님의 변모는 세례와도 깊은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복음서에는 하늘에서 소리가 울려 퍼진 사건이 두 가지가 있는데,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을 때와 거룩하게 변모하셨을 때입니다. 세례 때는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2)라는 소리가, 거룩하게 변모하셨을 때는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루카 9,35)라는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의 세례는 변모의 의미를 담고 있지요.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갈라 3,27)라며, 세례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입게 되는 존재의 변화임을 가르쳐 줍니다. 그 세례를 통한 변화는 믿음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제1독서는 믿음으로 우리가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전해 줍니다.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창세 15,6)
우리는 원칙을 잘 지키고, 계명을 잘 이행하는 것이 의로움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례를 통해 변화된 의로움은 인간의 노력으로 쟁취할 수 있는 의로움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며 은총입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됨으로써 우리에게 의로움을 가져다줍니다. 나 자신의 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한 의로움입니다.
주님과의 관계도 새롭게 변화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을 때 하늘에서 울려 퍼진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2)라는 말과 같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관계가 변화합니다. 법적인 관계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이지요. 법적인 관계였을 때는 심판과 처벌이 중점이지만, 사랑의 관계에서는 자비를 통한 용서가 핵심이 됩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에게 법적인 율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의 가르침, 자비와 용서의 가르침이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변모하실 때 하늘에서 선포된 말씀이 이를 증명합니다.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루카 9,35)
이제 우리는 다른 어떤 것보다 그분의 말,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지적하듯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필리 4,18)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세상 것만을 생각합니다. 몇몇 이들은 자신들의 의로움을 드러내고 싶어서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수혈도 하지 않는 행위만 실천하며 율법에 충실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지키는 것처럼 자신들을 위장합니다. 또한 성경을 마치 비밀이 담긴 책처럼 왜곡하여 자신들만 그 비밀을 아는 사람들처럼 다른 이를 선동합니다. 이는 모두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아니라 자신들의 가르침,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은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는’(2,7) 겸손의 삶과,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2,8)의 삶을 살아가신 분이심을 알려 줍니다. 이를 모범으로 삼아 세례를 통해 변화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겸손과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겸손과 순종의 삶은 살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약속된 것을 얻으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히브 10,36)라는 말씀처럼, 주님께 도움의 기도를 바치며 인내의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이때 성령께서도 우리를 도와주시고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