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일은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봉헌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율법에 “태를 맨 먼저 열고 나온 첫아들은 모두 나에게 봉헌하여라.”(탈출 13,2)라는 규정에 따라 성모님과 요셉 성인은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서 하느님께 봉헌하셨습니다.
전례 개혁 이전과 이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헌장이 반포되고 난 뒤에 이루어진 전례 개혁에 따라 오늘을 ‘주님 봉헌 축일’이라 부르고 있지만 그 이전에는 ‘성모 취결례 첨례(聖母 取潔禮 瞻禮)’라 불렀습니다. ‘첨례’는 오늘날의 축일을 일컫는 말이고, ‘취결례’는 성모님께서 정결례를 거행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사내아이를 낳은 여자는 출산 중에 피를 흘렸을 것이고, 이를 부정하다고 판단하여 40일간 집 밖을 나오지 못하는 율법 규정이 있었습니다(레위 12,2-4 참조). 40일이 지나면 아기 엄마는 성전에서 정결례를 거행하고, 아기는 하느님께 봉헌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따져 보면, 2월 2일의 축일을 바라보는 시각이 공의회의 전례 개혁 이전과 이후로 서로 갈리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개혁 이전에는 성모님을 중심으로 성모님께서 정결례를 거행한 것을 기념한 것이라면 개혁 이후에는 예수님께서 성전에 봉헌되는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전례의 역사 안에서 2월 2일의 축일을 지내는 의미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2월 2일은 과연 누구의 축일일까요?
시메온이 아기 예수를 만난 순간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축일의 시작은 주님의 축일이었습니다. 동방에서는 이날을 ‘휘파판티(Ὑπαπαντή, Hypapanti)’라 부릅니다. ‘만남’, ‘선보인다’는 뜻을 가진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아기 예수님과 시메온의 만남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복음에 따르면 시메온은 오랫동안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일러 주신 대로 구세주를 두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 구세주는 태어난 지 40일밖에 안 된 신생아의 모습으로 성모님의 품에 안겨 있었지만, 그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늘 그와 함께하셨고, 또 아기 예수님을 보자 성령께서 저 아기가 그리스도라고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눈으로 아기를 보았고, 자신에게 늘 말씀하시던 성령 하느님의 존재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 순간입니다.
생사의 논쟁을 넘어서는 구원의 약속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것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복음에서 성령께서는 시메온에게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루카 2,26)”라고 알려 주셨다고 전합니다. 바꿔 말하면, 이제 그리스도를 두 눈으로 뵈었으니, 죽을 날이 가까워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슬픔과 두려움, 알지 못하는 세계로의 전환, 생명의 끝, 나를 아는 사람들과의 헤어짐. 이것들 모두 우리를 죽음이라는 삶의 순간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만듭니다. 하지만 시메온 예언자는 달랐습니다. 그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루카 2,29-30) 자기 삶에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옛날부터 예언자들을 통해 전해져 내려오는 구원에 대한 희망이 이제 이루어졌다는 것에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구원의 큰 기쁨 앞에서, 이 땅에서 생명과 죽음을 논하는 것은 이미 그 의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초기의 전례 주년 이후 이날은 이제 성모님의 축일로 변화를 맞이합니다. 성모님의 정결례 (Purificatio) 기념을 더 강조하려는 갈리아 지역의 특색이 전례 주년에도 반영이 된 것이고 이를 로마 교회가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약 1,000년 동안 2월 2일은 주님의 축일이 아닌 성모님의 축일로 지내게 된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받은 그리스도인
초기 교회의 전례 정신을 다시 복구하면서 전례를 쇄신하고자 노력했던 1960년대의 전례 개혁은 이날을 바로잡고자 했습니다. 성모님의 축일에서 다시 원래의 모습인 주님의 축일로 지내려는 목적을 가지고, 그리스어 ‘휘파판티’를 라틴어로 번역해서 ‘주님 봉헌(Praesentatio Domini)’으로 변경합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시메온 예언자처럼 주님을 뵙고 구원의 큰 기쁨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이날 교회는 미사 중에 초를 축복하는 예식을 거행합니다. 주님께서 성전에 봉헌되신 것처럼, 우리 자신도 하느님께 봉헌되고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을 태우면서 다른 이들을 환하게 밝혀 주는 초를 축복받으면서 봉헌의 의미를 묵상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일생을 시메온 예언자처럼 성대하게 그리스도께 봉헌한 분들이 있으니, 바로 수도자들입니다. 봉헌 생활의 날로 이날을 지내는 수도자들을 기억하며, 기도 중에 이분들의 영육 건강을 청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