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에 풀린 나의 숙제

영성과 신심

희년에 풀린 나의 숙제

저는 또 한 번 당신을 찬미하고 감사의 노래를 읊나이다

2025.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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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만선의 해

 

1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지만,

그 시간 동안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은총을 넘치도록 주셨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행운, 뜻밖에 다가온 사람, 마음을 조용히 다독인 위로 한마디까지.

돌아보면 우리의 1년은 은총으로 가득합니다.

 

2025년의 항해가 막바지에 이른 지금,

당신의 배에는 무엇이 실려 있나요?

한 해를 시작하며 쥐고 있던 그물이 비어 있었든, 이미 무거웠든,

주님께서 함께하신 시간 안에서 우리의 하루하루는 분명히 충만했습니다.

 


 

2025년 여름에는 또 한 번 기록적인 폭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더위보다 더 뜨겁게 타오른 시간이 있었으니, 바로 젊은이의 희년입니다. 2025년은 대희년Jubilee이 선포된 해입니다. 한국 청년 1,500여 명이 젊은이의 희년을 보내기 위해 로마로 향했습니다. 각 교구와 수도회에서 많은 청년들이 순례자로 참여했고, 저도 군종교구 대표로 44리터짜리 배낭 하나만 메고 순례길에 올랐습니다.

 

사실 저는 이번 젊은이의 희년에 국제 희년 봉사자로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의 봉사자로 활동하고 있었기에, 국제 행사 운영 현장을 미리 체험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여러 서류를 준비해 신청서를 제출했고, 비행기표도 미리 예매한 채 회신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출국을 일주일 앞둔 시점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희년 봉사자팀에 직접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지만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현장에서 예기치 못한 일까지 겹치면서 봉사자 지원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로마에서 만난 은총의 시간

 

한동안 마음에 아쉬움이 무겁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수녀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소속으로, 로마에서 유학 중인 한국인 수녀님이셨습니다. 수녀님께서는 처음 만난 저를 점심 식사에 초대해 주시고 여러 가지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후 수녀님을 따라 인플루언서 희년 등록 센터에 동행한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 수사님을 뵙게 되었고, 수도원에도 초대받아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아쉬움이 조금씩 가라앉고 순례가 새로운 의미로 저에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젊은이의 희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저는 4대 성당을 순례하고 여러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개인 순례자로 참여하다 보니, 의지할 공동체가 없는 것이 처음에는 낯설고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통해 저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현지에서 서울 WYD 지역조직위원회와 함께하고 계시던 신부님과 형제자매들을 만났고, 그분들의 배려 덕에 개막 미사에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비질(vigil, 밤샘 기도)과 폐막 미사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번 젊은이의 희년에는 차기 WYD 개최지인 한국팀에게 제대 바로 앞자리가 배정되었는데, 이곳은 티켓 없이는 출입할 수 없는 구역이었습니다. 티켓이 없어 난감했던 제게 신부님들은 당연히 함께해야지!”라며 손을 내밀어 주셨고, 덕분에 저는 뜻밖의 은총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오랜 인연들을 다시 만나는 기쁨도 있었습니다. 10여 년 전, 군종교구 성당에서 군종병 학사님으로 계셨던 신부님을 오랜만에 뵐 수 있었고, 2024년 상징물 전달식에 함께했던 신부님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또 제가 이 웹진에 글을 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신 이인섭 아우구스티누스 신부님도 현장에서 뵐 수 있었습니다.

 


 

마음의 숙제를 마주하다

 

비질(vigil)의 시간은 제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 마음 한편에는 해소되지 못한, 숙제 같은 감정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진로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도구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신학과에 진학한 저는 지금 2학년 2학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한동안은 성미술과 성음악 같은 예술 분야에 관심이 생겨 혼자 공부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기본 지식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저를 늘 따라다녔고, 앞으로의 방향도 불확실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정말 이것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길일까?’라는 질문 앞에 멈춰 서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줄곧 혼란했던 제가, 로마에서 비질의 시간을 마주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교황님을 향한 청년들의 함성, 특히 한국 청년들의 눈빛과 표정이 저를 다시 시작점으로 이끌었습니다. 그 순간 로마에서 맞닥뜨린 모습은 2023년 리스본 WYD에서 수많은 청년이 서로 다른 언어로 하나의 기도를 드리던 장면과 겹쳐 보였습니다. 그 순간, 청년 선교의 꿈을 가지고 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제가 공부하고 탐색해 온 것이 결국 청년 선교라는 하나의 지향으로 자연스럽게 모이고 있었다는 것을. 하느님께서 다시 한번 저에게 선명한 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다른 숙제 하나는 한 친구와의 관계였습니다. 그 친구는 제게 큰 영감을 준 사람이었고, 그 친구와 알고 지낸 시간은 제 삶의 중요한 한 장면으로 남았습니다. 만나지도, 연락하지도 않게 된 후에는 그 친구와 함께했던 시간 속의 저를 잃어버리는 것 같아 두려웠고, 다른 관계를 만드는 것도 망설여졌습니다. 저는 성체조배 중 두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제가 이 친구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뜻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다만 저에게 방법을 보여 주십시오.”

 

거칠고 딱딱한 아스팔트 위였지만, 무릎에서 느껴지는 아픔은 잊고 오래도록 주님 앞에 머물렀습니다. 이후 저는 그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국인 순례자들이 모두 한곳에서 하루를 보내는 일정에서 자연스럽게 마주치게 되었고, 짧고도 길게 느껴지는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고 산책하며 그간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 이 인연이 끝이 아닌 다음 걸음을 내딛는 여정임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를 이끄는 순종의 용기

 

이번 경험을 통해 저는 하느님을 또 한 번 인격적으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냥 스스로 결정하면 될 문제 아니에요?” 혹은 그게 정말 하느님의 뜻이 맞기는 한가요?”라고요. 하지만 저는 이 모든 만남과 시간, 경험과 깨달음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제 삶에 허락하신 은총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하느님은 제 질문에 사람과 말씀을 통해 답해 주셨습니다.

 

이 여정을 지나며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삶이라는 배를 채워 주고 계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은 빈 그물을 들고 허탈하게 돌아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그물을 저쪽으로 던져라.”라고 말씀하실 때에 순종의 용기로 그물을 내리면, 결국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풍성한 열매를 얻게 된다는 것을 또 한 번 믿습니다.

 

제가 경험한 만선은 단순한 성취가 아닙니다. 하느님 품 안에서 살아간다는 확신, 바로 거기에서 오는 충만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충만함은 늘, 주님의 뜻에 자신을 내어 맡기는 그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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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도보 여행을 하다 보면 때로는 예상치 못한 만남을 경험합니다. 길가에 피어난 작은 생명, 끝없이 출렁이는 바다, 광활한 하늘은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게 하고, 저를 주님께로 이끌어 줍니다. 혼자 떠나는 길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바라보는 경이로운 순례입니다. 길 위에서 마주하는 삶의 조각들 속에서 발견하는 은총이 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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