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는 못했지만, 사랑은 알아들었습니다

성경 이야기

프랑스어는 못했지만, 사랑은 알아들었습니다

연중 제30주일│수녀님들의 환대에서 배운 ‘내가 먼저’의 사랑

2026.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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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히 묵상해 봅시다.

  •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받은 따뜻한 환대가 있나요?
  •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먼저 마음을 내어 주고 있나요?
  • 오늘 내가 먼저 반갑게 맞아 줄 사람은 누구인가요?

 


 

버스도 못 알아듣고, 빨래도 못 알아듣고

 

저는 10년 전에 프랑스 엑상프로방스라는 곳에서 3년 정도 선교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언어가 너무 서툴러서 수녀님들께서 운영하시는 산부인과의 사제관에 살았어요. 형제들과 매일 북적북적, 시끌시끌 살아가다가 프랑스 남부의 한적한 시골 동네에 있는 커다란 병원 사제관에 툭 떨어져 지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립더군요.

 

그렇게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 매일 학교, 병원 사제관, 학교, 병원 사제관을 왔다 갔다 하다가 가끔 만나는 수녀님들과는 가볍게 목례만 하고 지냈습니다. 왜냐고요? 저는 프랑스어를 못하고 수녀님들께서는 영어를 못했으니까요. 그렇게 한 3개월쯤 지났을까요? 조금 알아듣기 시작한 저는 자신감이 생겨서 수녀님 말씀을 대충 알아듣고서는 “다 알겠어요.”라고 답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버스가 파업했으니,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가야 해요.”라고 말한 수녀님의 말에 “다 알아들었어요.”라고 말하고서는 1시간 넘게 버스를 기다린 적도 있었고, “빨래할 때 속옷은 본인이 해야 해요.”라고 말해 주신 것을 ‘빨래’까지만 알아듣고 제 속옷까지 모두 빨래통에 넣어 맡긴 적도 있었습니다. 아무 말 안 하시고 웃음으로 모든 것을 넘겨 주신 수녀님들을 생각하니 부끄럽지만 미소 짓게 됩니다.

 


 

밤늦게 울린 초인종, 그리고 “오~ 모이세 신부!”

 

그러던 어느 날 프랑스에서 활동하시는 수도자, 성직자들이 모인 프랑스 선교사 모임에 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한국 사람들을 만난다는 설렘에 한걸음에 다녀왔습니다. 신나게 한국 음식도 먹고 즐겁게 지내다가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 버린 거예요. 산부인과는 시골 구석에 있어서 버스가 끊기면 들어오기 힘든 곳이라 막차 시간 전까지는 들어와야 하는데, 다른 신부님들께서 태워 주고 가신다고 하여 예정 시간보다 늦게 들어온 거죠.

 

모임을 가기 전, 제 방 열쇠를 수녀님들께 맡기고 가는 바람에 늦은 시간 열쇠를 찾으러 수녀원에 가야만 했습니다. 보통 수녀님들께서는 끝기도 후에는 수녀원에서 전혀 나오시지도 않고, 그 시간 이후에 누군가가 찾아가는 일도 없었어요. 그래서 늘 조용한 저녁 시간을 보내셨는데 제가 너무 늦은 시간에 초인종을 누르고 말았죠. 저도 제 방에 들어가야 하니까요.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고 있는데 잠시 후 수녀님 한 분이 나오셔서 “오~ 페흐 모이즈!”(오~ 모이세 신부!)라고 하시며 저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어요. 수녀원은 문을 여닫는 일을 맡은 수녀님들이 따로 계시지 않아서 제일 먼저 초인종 소리를 듣는 분이 나와서 문을 열어 주신다고 지난번에 들은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 수녀님께서 나오신 거구나 싶었는데, 잠시 후에 다른 한 분이, 또 다른 한 분이, 한 분 한 분 이렇게 계속 나오는 거예요.

 

그렇게 5분 정도 지나니 수녀원에 살고 있는 모든 수녀님께서 나와 저를 반겨 주셨어요. 본의 아니게 여행 잘 다녀왔느냐는 인사를 그 늦은 시간 현관 앞에서 오래 나눌 수 있게 되었답니다.

 


 

나는 반바지를 선물 받았습니다

 

방에 들어와 조금 전의 장면을 되돌려 보니 참 따뜻한 광경이었어요. 그리고 우리나라 옛이야기 중에 서로 다른 두 집안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어느 날 두 집안의 아버지가 일하러 나가기 전 딸들에게 바지를 좀 줄여 달라 말하고 돌아왔는데, 한 집안에서는 반바지가 되었고 다른 집안에서는 긴 바지가 그대로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 모두 아시죠?

 

서로 내가 줄여야겠다고 생각하여 반바지가 되었고, 알아서 줄일 거라고 생각하여 바지가 그대로 있었다는 이야기요.

 

그날 저는 프랑스 수녀님들께 반바지를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한결같이 따뜻하게 맞아 주시는 것도 고마웠지만 늘 그리스도의 정신대로 살아가시는 수녀님들 앞에서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7)

 

자신을 비추어 보는 건 거울뿐만이 아님을 다시 깨닫게 되더군요.

 


 

‘누군가’ 말고 ‘내가’ 사랑하기

 

저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 하겠지'가 아니라 '내가'…….

'누군가 사랑하겠지'가 아니라 '내가'…….

'누군가 도와주겠지'가 아니라 '내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9)

 

이타심과 자기애는 한 끗 차이라고 하죠. 수녀님께서 환대해 주신 그날은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삶 한가운데서 저와 함께 숨 쉬고 있음을 느낀 날이었어요.

 

오늘 복음 말씀을 가끔 접할 때면 그날의 일이 떠올라 웃음 짓게 된답니다. 이렇게 보니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방법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지요?

오랜만에 수녀님들이 보고 싶네요. 수녀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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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사제. 미디어 사도직 위원회 위원장를 맡고 있습니다. 사진기로 하느님을 담고, 영상으로 하느님을 전하며, 글로 하느님의 마음을 전하는 수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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