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저는 믿습니다.”

성경 이야기

“주님, 저는 믿습니다.”

그가 그분을 만난 뒤로 - 빛을 되찾은 태생 소경 (2)

 

📓<주님을 만난 이들: 요한 복음 속 이야기> 시리즈의 아티클로, 이 글은 나를 따르는 이들은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에서 이어집니다.

 


 

태생 소경은 자신도 모르게 예수님과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이와 달리, 바리사이들은 자신이 체험한 표징을 의심한다.

 

소경 바리사이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 저는 모릅니다.”(25)

우리는 그자가 죄인임을 알고 있소.”(24)

이 한 가지, 제가 눈이 멀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것은 압니다.”(25)

유다인들은 그가 눈이 멀었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18)

그분이 하느님에게서 오지 않으셨으면 아무것도 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33)

그자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우리가 알지 못하오.”(29)*

 * 이 표현도 사실 모순이다. 그들은 752절에서 니코데모에게 예수님이 갈릴래아 출신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지금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말을 바꾸고 있다.

 

같은 상황, 다른 반응. 주님을 향한 깨달음은 단순히 종교적 권위를 쟁취함으로써 얻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일상 안에서도 하느님을 온전히 인식하려 애쓰고,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이 주님의 선물임을 굳게 믿으며 지내는 것에서 시작됨을 보여 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넘쳐흐르는 구약의 예표들

 

소경이 눈을 뜨게 된 이야기는 구약의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예수님께서 그의 눈에 진흙을 발라 주시는 행위는 흙에서 아담을 빚어내신 창조 이야기를 연상케 한다(창세 2,7 참조). 소경은 단순히 눈을 치유받은 이가 아니라, 새로운 삶을 살도록 부름받은 것이다.

 

엘리사 예언자의 말에 순응한 시리아 사람 나아만이 요르단강에서 몸을 씻어 나병을 고치고 하느님을 알아보게 된 것처럼(2열왕 5,10-15), 소경은 자신을 낫게 해 주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보게 된다. 깨달음은 파견과 선포를 수반한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그가 눈을 씻게 하신 실로암은 히브리어로 파견된 이를 뜻한다. 그는 더 이상 고립된 삶을 살지 않는다. 그는 빛이신 주님을 증언하고, 더 많은 사람이 그분을 알아보도록 알리는 파견자의 삶, 즉 그분의 제자로 살아가는 삶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그러자 그들은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말하였다. “당신은 그자의 제자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요.” (요한 9,28)

 

주님의 제자로서 새 삶을 살아갈 소경을 예수님의 제자로 인정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의심하던 바리사이들이었다. 바리사이들은 소경을 향해 분노가 서린 모욕과 위협을 퍼부었다. 그러나 소경은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그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아마도 그는 성전 근처에 오랜 시간 앉아 있으면서 수많은 사람의 성경 봉독과 토론을 들었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악인들을 멀리하시고, 의인들의 기도는 들어주신다.” (잠언 15,29)

주님의 눈은 의인들을 굽어보시고 그분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신다.” (시편 34,16)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소경은 자신이 알고 있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바리사이들을 논리로 압도하고 더 나아가 그들의 반응을 풍자하는 여유도 보인다.

 

그분이 제 눈을 뜨게 해 주셨는데 여러분은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 모르신다니, 그것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죄인들의 말을 들어 주지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누가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면 그 사람의 말은 들어 주십니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이 눈을 누가 뜨게 해 주었다는 말을 일찍이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분이 하느님에게서 오지 않으셨다면 아무것도 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한 9,30-33)

* 실제로 구약에는 어떤 예언자나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었다는 이야기가 없다. 오직 이러한 권능을 행하실 수 있는 분은 주님뿐이시다(이사 35,5; 시편 146,8). 소경이 구약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예수님께서 그를 새로운 삶을 살도록 초대한 그 순간부터, 그는 자신 안에 들어 있던 신앙의 씨앗을 점차 발전시켜 나간다. 이는 예수님을 처음 뵌 후 차츰차츰 그분을 그리스도로 알아간 사마리아 여인과 흡사하다.

 

그들이 그러면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하고 묻자,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예수님이라는 분이 …” (요한 9,10-11)

 

그가 당신 눈을 뜨게 해 주었는데,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

그러자 그가 대답하였다.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 (요한 9,17)

 

주님, 저는 믿습니다.” (요한 9,38)

 

처음에 이웃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예수님이라는 분으로 그분을 묘사하고, 이후 바리사이들에게는 예언자라고 증언한 이 소경은 결국 예수님 앞에서 그분을 주님으로 고백한다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그러하셨듯이(4,25-26), 소경에게도 당신 자신을 직접 드러내신다.

 

그 사람이 선생님, 그분이 누구이십니까? 제가 그분을 믿을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 (요한 9,36-37)

 

태생 소경은 점차 영적 눈을 떠가며 결국 예수님을 알아뵙고, 바리사이들은 반대로 영적으로 눈이 멀어 가는 현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이야기를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이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요한 9,41)

 

사실 소경은 자신이 눈을 떴을 때, 많은 사람의 축하를 받고 이를 통해 모든 사람이 하느님을 찬미하며 자신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예수님을 알아보리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 거리가 멀었다. 부모님조차 두려움에 떨며 그의 믿음을 방어해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그는 홀로 자신의 믿음을 방어하고 견뎠다.

 

이러한 소경의 처지는 오늘날 세상에서 신앙을 고백하는 우리 교회의 외로운 처지를 잘 말해 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 수난하시고 부활하셨으나 오늘날 세상은 어둠 속에서 여전히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멀리 떨어지려 한다. 그분께서는 빛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으나 여전히 어둠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다.

 

슬프게도 이러한 현실은 교회의 울타리 밖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신앙인들 사이에서도 펼쳐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그분을 가슴 시리도록 깊이 체험해야 한다. 그리고 그 체험을 이웃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은총이 필요하다.

 

소경은 단순히 시력을 회복한 것이 아니라 빛을 되찾은 것이다. 그는 어둠과 절망에서 벗어나 예수님을 만나고 빛이신 그분을 향해 나아가는 새 삶을 선물받았다.

 


 

*다음 화에 계속 이어집니다.

 


 

🔗 다시 보기! 주님을 만난 이들

 

 

Profile
인천교구 사제. 현재 로마에서 성경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담긴 메시지를 연구하는 것이 제 주된 일이지만, 그것을 넘어 교회 안에는 세속에서 찾을 수 없는 사랑과 배려가 존재한다는 것을 가능한, 많은 이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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