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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먼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귀 기울여 들었고, 보던 사람들은 자신의 편견대로 해석하였습니다. 우리는 보고 있다고 믿지만, 늘 진정으로 보고 있지는 않습니다. 사순 시기,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요? 사물을 구분하는 눈이 아니라, 예수님을 알아보는 ‘마음의 눈’을 열어 달라고 하느님께 조용히 청해 봅시다. |
시각은 우리에게 매우 많은 정보를 줍니다. 시각으로 얻는 정보가 80% 이상이라고 말할 만큼 우리는 시각 정보에 많은 의존을 합니다. 그만큼 눈으로 보는 것은 우리에게 정말 중요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우리 눈이 착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착각을 착시효과라고 부르며, 사실과 다르게 사물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런 착시를 이용한 미술 작품이 여럿 있습니다. 그런데 미술 작품뿐만 아니라, 일상 안에서도 생각보다 착시를 일으키는 순간은 많다고 합니다. 우리 눈으로 보고 있는 세상조차 있는 그대로 보기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얼마나 더 올바로 보기 어려울까요?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시각에 대해 성찰하게 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태어나면서부터 눈이 보이지 않던 사람을 만나십니다. 그를 본 제자들은 그의 눈이 먼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지부터 묻습니다. 제자들의 질문은 당시 사람들의 시선을 대변합니다.
그들은 불행이나 장애를 하느님의 벌로 여겼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눈이 보이지 않던 그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큰 죄를 지었고, 그에 대한 벌로 눈이 멀었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눈먼 이가 겪는 고통보다 그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더 크게 다가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선은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의 눈이 먼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요한 9,3)
예수님께서는 그를 죄인으로 보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날 도구로 바라보신 것입니다. 그리고 땅에 침을 뱉고 그것으로 갠 진흙을 그의 눈에 바르신 다음,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요한 9,7)
여기서 흥미로운 대조가 일어납니다. 눈먼 이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명하여 실로암으로 가서 씻고 눈을 떠 앞을 보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멀었던 눈이 떠지는 것을 넘어, 진리에 눈을 뜨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는 처음에는 예수님을 그저 “예수님이라는 분”(요한 9,11 참조)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내 예수님을 “예언자”(요한 9,17 참조)라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예수님께 경배하며 이렇게 고백하는 모습까지 보여 줍니다.
“주님, 저는 믿습니다.”(요한 9,38)
그러나 바리사이들과 주변 사람들은 눈은 뜨고 있지만, 눈이 멀었던 사람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웃들은 그가 과연 본래의 그 눈먼 사람인지 의심합니다. 바리사이들은 눈먼 이가 눈을 떴다는 분명한 사실 앞에서도, 안식일에 기적을 행했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아세웁니다. 그들은 눈을 뜨고 있지만, 마음의 눈은 여전히 완고한 편견과 교만에 가려져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참으로 모순적인 상황입니다. 눈이 멀었던 사람은 점차 진리를 더 분명하게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나 원래부터 앞을 보던 사람들은 정작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외면하고, 없었던 일처럼 여깁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 “실제로 눈이 먼 사람은 누구인가?” 하고 묻습니다.
사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지금, 우리의 시선은 어떠한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고통받는 이웃을 보며 섣불리 판단하고 정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은 바리사이들처럼, 내가 가진 지식과 신념만이 옳다고 믿으며, 내 생각과 다른 하느님의 뜻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참된 시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단순히 사물을 바라보는 눈의 시력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진정으로 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시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예수님을 알아차리는 것을 넘어, 그분께서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깨달을 수 있는 시력입니다.
이런 시력을 지니기 위해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셨던 그분의 자비로운 시선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셨던 그 시선을 기억하며, 우리 또한 예수님의 시선을 닮아 그분께서 바라보시듯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