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일은 한 영혼을 섬기는 일

신학 칼럼

주님의 일은 한 영혼을 섬기는 일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키워야 한다.”

2025. 0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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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에서 만난 영혼들과의 일은 저에게도 주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깊이 체험하게 합니다. 어떤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친구를 아지트에서 처음 만난 건 추운 겨울, 그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습니다. 이 친구의 가정 환경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모친은 조현병 중증이었고, 부친은 친구가 어릴 때 이미 가정을 포기하고 자신의 길을 갔습니다. 친구에게는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오빠가 있었는데 그 역시 모친을 돌보지 못하겠다며 집을 나갔습니다. 이 친구 홀로 남았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은 이 친구가 지닌 모친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어머니와 떨어지기 싫어서 공부를 열심히 해 소위 말하는 인서울 대학을 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야 집에서 통학하면서 어머니를 돌볼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지금 가장 필요한 건 국어, 영어, 수학의 교육 지원이었습니다.

 

슬픈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아직도 이런 가정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도 않았습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못 해 본 것이 두 가지 있는데, 가족 외식과 가족 여행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바다를 직접 본 적이 없다고 했을 때 가장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다 이 친구를 위해서 3가지를 결심했습니다.

 

1. 1년 생활비 지원: 3개월에 1번씩 아지트에서 생활비 주기

2. 아지트에 오면 함께 외식하기

3. 수능 끝나고 함께 동해 바다 보러 가기

 

제가 교구에서 7년간 대학교사목을 했기에, 주님께서 붙여 주신 아주 훌륭한 친구들이 이 친구가 수능을 치를 때까지 국어, 영어, 수학 공부를 도와줄 수 있었습니다. 아마 가정에서 과외를 한다면 수백만 원의 과외비를 내야 할 만큼 고급 인력들이었고, 열성적인 신앙심과 따뜻한 마음을 지닌 친구들이었습니다. 저도 주기적으로 방문해서 여러 가지 식료품과 생필품을 지원했고, 어머니도 만나 뵈려고 했지만 도저히 만나실 수 없는 상태여서 물건들만 가져다주고 왔습니다.

그리고 생활비를 받으러 저희 아지트에 오면 꼭 저녁 식사를 같이했습니다. 사실 생활비는 계좌로 붙여 줘도 되지만, 가족이 되어 함께 식사하려고 일부러 오라고 했지요. 선생님들도 이 친구의 가족이 되어 함께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이때, 메뉴는 이 친구가 정합니다. 따라서 식사비에 대한 예산은 따로 책정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든 먹고 싶은 것을 먹으러 나갔습니다. 그렇게 가족이 되어 주려고 했습니다.

 

시간은 흘러 수능날이 되었고, 또 새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발표를 기다리며 초조해하는 친구와 선생님 모두와 함께 강릉으로 떠났습니다. 실컷 바다를 보고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주며 드라마 주인공으로 만들어 줬습니다.

 

아쉽게도 인서울 대학 입학은 실패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나서 과외 지도를 받았기에 입시지옥인 대한민국에서 2년 정도 과외를 열심히 했다 해도 따라잡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방의 간호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기숙사로 들어가기 전 2월 중순, 따로 만나서 식사하고 기숙사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친구를 기억하셨는지 신기한 일을 겪었습니다. 후원자들을 모집하기 위해 장안동성당으로 주일 미사 강론을 하러 갔는데 정기 후원 신청서에 짤막한 편지글이 같이 있었습니다. 내용인즉 본인이 모 대학 간호학과 교수인데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대학 이름이 제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이 친구가 입학한 대학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곧바로 연락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 아지트 은성제 신부예요. 모 대학 간호학과 교수님이시죠? 오늘 제가 강론 시간에 소개했던 그 친구가 바로 교수님 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교수님은 학생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알려 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알려 드렸습니다.

 

신부님, 제가 학교 측에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며칠 뒤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신부님, 그 친구 정말 우리 학교 학생 맞네요. 저희가 이달 중순에 학교 법인에서 회의가 있는데 제가 법인 이사회 임원입니다. 이 친구에 관해서 장학금이나 기타 지원에 대한 부분을 안건으로 올려 보겠습니다.”

 

그 뒤 학교에서 이 친구에게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 전액을 지원하기로 이사회에서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또 이번 학기부터 교내 근로장학생으로 매월 월급을 준다고 했지요. 간호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실습하면서 성실히 수업을 듣고 성적도 아주 우수하다고 교수님께서 전해 주셨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키워야 한다.’라는 아프리카 격언이 있습니다. 이 친구는 아지트에 오기 전부터 가정 사정을 아는 동네 교회에서 매월 20만 원씩 생활비를 제공해 주었고, 교회 내의 공부방에서 돈 들이지 않고 공부했더군요. 교회는 영혼을 돌보고 섬기고 사랑하는 주님의 현존이 살아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아시나요?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1코린 6,19)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고 그 어떤 값으로 살 수 없음을 알고 주님의 뜻 안에서 기꺼이 돌보아야 합니다. 그런 공동체가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 살아 있는 교회입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무엇을 보시나요? 무엇을 추구하시나요?

 

예수님의 눈은 낮은 곳에, 작고 짓눌려 있으며 도움을 바라는 연약한 이들을 향해 있으니, 그분의 시선을 따르면 사랑을 실천할 일은 많습니다.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이사 1,17)

 

이 세상에는 고통받고 권리 없이 억눌려 사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 대표적 예가 바로 고아와 과부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봤을 때 나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으면 나는 고아요, 신랑이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나는 과부임도 잊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 한 영혼을 아낌없이 사랑함으로써 하느님의 참된 자녀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받는 신부가 됩시다. 아멘.

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가톨릭청소년이동쉼터인 서울아지트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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