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서는 누구의 책인가?

교리와 전례

전례서는 누구의 책인가?

더 풍성한 전례를 위한 권고

2025. 0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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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전통이 켜켜이 쌓인 교회의 보물

전례서는 전례 거행에 사용하는 실제적인 도구이며, 그리스도인들의 묵상과 기도를 돕는 영성 서적으로서 교회가 유구한 역사 안에서 켜켜이 담아 놓고 발전시킨 영적인 보물이기도 합니다. 미사에 사용하는 여러 기도문과 지시문들과 규정들 그리고 성경 독서 목록들은 어느 한 시기, 특정인에 의해 단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흐르는 시간과 함께 하나하나 쌓인 것입니다.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기도문뿐만 아니라, 사용한 지 1,500년이 넘은 기도문들도 현재 우리 전례서에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 이 축적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래된 유적지에 가면 그 시대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끼곤 하는데, 오랜 역사를 지닌 기도문으로 거행하는 전례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4~5세기에 바치던 기도문을 지금 2025년에도 똑같이 바치고 있으니, 마치 그 시절의 그리스도인들과도 교감하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우리는 전례서를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가?

2017년부터 한국 교회는 사도좌의 추인을 받은 미사 전례서인 《로마 미사 경본》을 새로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미사 때마다 《미사통상문》과 《고유 기도문》 그리고 《매일미사》를 사용한 것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몇 배로 두꺼워진 미사 경본과 미사 독서집은 사제와 봉사자들을 난감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신부님들과 수도자들, 본당에서 미사를 준비하는 봉사자분들을 대상으로 여러 특강을 마련하기도 했고, 미사 중에도 전례문을 찾느라 경본의 앞뒤를 뒤적거리며 난처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성인들의 축일 미사에는 가름끈을 어디에다 끼워 넣어야 할지 몰라 애를 먹는 제대회 봉사자분들의 표정은 울상이었고, 악보는 중간중간마다 왜 이렇게도 길게 수록되었는지 한 장만 넘기면 될 것을 두 장, 세 장 넘기려니 집전 중에 손이 바빠 늘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습니다. 7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 교회의 보물인 전례서를 충분히 그리고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묵상하며 준비하는 전례

이 글에 목적이 있다면, 일차적으로는 사제들에게 드리는 권고일 것입니다. 전례를 집전하기 전에 그날의 모든 전례문을 읽어 보고 묵상하는 일은 참으로 고귀한 직무 수행의 하나입니다.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전례문이 제시된다면, 그 전례에 모이는 회중들이 처한 상황, 특별한 전례에 맞는 본문들이 사제들을 그리고 신자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유롭게 선택하되, 더 풍성하고 알맞게 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연중 시기의 고유 기도문을 평일까지 매일매일 정해 두지 않고 연중 주일의 기도문을 어느 것이든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선택과 조정으로 상황에 더욱 알맞게 적응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또한 기원 미사와 신심 미사도 연중 시기 평일에는 의무 기념일이나 축일이 아닌 이상 자유롭게 선택하여 봉헌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에 해당하는 신자들과의 합의나 사전 공지는 필수입니다. 감사기도 또한 그 선택에 있어서 규정과 개방성이 있습니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365항을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아름다운 전례에 귀 기울이기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들에게도 권고해 드릴 것이 있다면 바로 귀 기울이기입니다. 사제가 미리 전례문들을 읽어 보듯이 신자들 또한 그날의 전례문들을 미리 읽어 보시면서 우리가 참여하고 봉헌할 내용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그 전례에 더욱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사제가 기도문을 낭송하거나 노래할 때 귀를 기울여 잘 들어보십시오. 기도하는 사제와 일치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미사의 본기도예물기도그리고 영성체 후 기도문은 도대체 그 미사에서 우리가 무엇을 청하는가에 대한 해답이 있습니다. 또한 사제와 부제가 미사 중에 혼자 속으로 바치는 기도문들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기도이긴 합니다만 그 영역을 넘어 평신도 신자들도 알고 개인적으로 그리고 속으로 함께 바친다면 그보다 더 좋은 개인 기도가 없을 것입니다.

 

유구한 교회의 역사와 전통 안에서 켜켜이 쌓여 고귀한 보물이 된 전례서. 이제 영적 독서를 위한 책으로도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도구에서 보물로. 교회는 바로 전례서에서도 우리의 영적인 목마름을 해결해 줄 마중물을 길어 올리길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Profile
인천교구 사제. 전례학을 전공했고,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로 살아갑니다. 신자들이 바른 전례에 의식적으로 참여하도록 돕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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