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서 하느님을 만나다

신학 칼럼

일에서 하느님을 만나다

신앙인은 어떤 자세로 일을 해야 할까?

2025.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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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본당에서 사목할 때 환자 봉성체를 한 자매를 알게 되었다. 그 자매는 태어나면서부터 뇌성 마비로 고통을 받았고 누가 부축해 주지 않으면 한 걸음도 걸을 수 없었다. 처음에 만났을 때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고 그녀가 하는 말은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녀의 유일한 행복은 한 달에 한 번 성체를 모시는 일이라고 했다. 한번은 나에게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신부님,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렇게 살아왔어요. 가장 괴로운 것은 왜 내가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영세를 받지 않았더라면 이미 삶의 끈을 스스로 놓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세상에서 봉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는데, 나에게는 도대체 어떤 능력을 주셨는지를 말이에요. 그리고 저는 이 고통을 겪어 내는 것 자체가 세상을 위해 봉사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큰 충격을 받았다. 고통받는 것이 세상을 위해 일하고 봉사하는 것이라는 그녀의 생각은 처절한 신앙 고백이었다. 시간이 흘러 휠체어에 의지한 그녀를 다른 본당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 여성 재소자들이 출소한 후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의 신앙 고백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녀의 얼굴에는 그리스도의 미소가 배어 있을 것이다.

 


 

일한다는 것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아마도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일 것이다. 일의 경중을 떠나 열심히 일하는 아름다운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도 흐뭇하게 한다. 우리는 일을 하다 보면 , 하루쯤 쉴 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사람들은 일 때문에 오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지면 문득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나 변화를 원하기도 한다.

 

가끔 자의든 타의든 일을 하지 않고 지내는 때가 있을 수 있다. 일을 하지 않게 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직에서 은퇴한 많은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쉬고 노는 것도 잠시뿐, 일 없는 삶이 지속되면 소외감과 무기력감을 느끼게 되고, 인생의 기쁨을 느끼기 어렵다고 말이다. 인간은 일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할 뿐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일과 직업은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구현하는 수단이자 삶의 중요한 부분이다. 또한 교회에서는 일의 소중함을, 성서에서는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동참하는 거룩한 것임을 가르친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어떠한 자세로 일에 임해야 할 것인가?

 


 

그리스도교에서 노동의 가치

 

많은 이가 일은 피로를 만들어 내고, 인간의 죄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일이 하느님의 계명임을 강조한다. 창세기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아담이 에덴동산을 가꾸게 하셨다(창세 2,15 참조). 즉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창조의 협력자로 만들어 인간에게 땅을 차지하라고 하신 것이다.

 

일을 한다는 것은 인간을 다른 피조물과 구별 짓는 특징이 된다. 즉 일은 인간의 내적 특징을 결정해 주고 인간 본성의 특별한 의미를 나타내 준다. 성경에서 일은 인간을 세상의 주인으로 규정하고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동참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일은 인간다움의 실현이며 세상과 인간의 관계를 맺어 주는 지표가 된다.

 

그리스도교 최초의 사회 교리를 담은 레오 13세 교황의 회칙 <노동 헌장>1891년에 반포되었다. 레오 13세 교황은 착취와 인권 유린이 자행되는 상황, 극심한 빈곤 상황에서 교회가 침묵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선언했고, 해결책으로 국가의 개입과 노동조합의 중요성을 천명했다. 교황은 공동선과 노동자의 권익이 위협받을 때 국가가 법과 제도를 통해 개입할 수 있으며, 그 범위는 필요 이상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아울러 교회가 가난한 이들의 편에 서야 하며,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과 개입이 사목의 본질적 임무임을 분명히 했다.

 

<노동 헌장>은 당시 노동 현장에서 큰 반향을 얻지 못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그 가치와 중요성이 입증되었다. 130여 년 전에 이런 선언을 한 레오 13세 교황의 통찰력과 결단이 참으로 놀랍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은 단순히 생계 수단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실현하는 길이다. 인간의 일은 생산·경제·서비스 활동을 넘어 인격에서 비롯되며, 이를 통해 인간은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며 이웃을 위해 봉사한다. 다시 말해 일은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동참하며 봉사와 사랑을 실천하는 행위, 존재 의미를 세상에 드러내는 매개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일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요한 6,27)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실현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세상의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 마음의 안식을 잃어버리고 온 세상을 차지하느라 하느님의 나라를 상실한다면, 삶은 무가치한 것이 되어 버린다(루카 9,25 참조).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일하고 수고하는 것의 참된 가치를 가르치시며 포도원 일꾼, 씨 뿌리는 농부 등 일하는 사람들을 비유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도직 활동을 일과 수확(마태 9,37 참조) 혹은 그물을 던져 사람을 낚는 일(마태 4,19 참조)로 표현하시며, 일하는 삶의 가치를 드높이셨다. 또한 일을 통해서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고 관계를 맺으며 하나 되는 모습을 보여 주셨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하느님께 봉헌하시면서 자신의 구원 사업을 이루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따르면 일이란 형제들이 공동으로, 또 서로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즉 일은 이웃과 사회, 그리고 국가에 대한 봉사가 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일은 인격적이며, 신성하고 고귀한 것이다.

 


 

신앙인으로서 일에 임하는 자세

 

모든 신앙인의 모범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일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신앙인은 세상의 빛과 소금(마태 5,13-14)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첫째, 신앙인은 늘 기도하는 자세로 일해야 한다.

콜카타의 마더 테레사 수녀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았다. “어떻게 하루 종일 노구(老軀)를 이끌며 지치지 않고 일을 하십니까?” 그러면 수녀님은 늘 제가 지치지 않는 것은 기도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하셨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인격적 대화이다. 신앙인은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과 친교를 맺고 영적인 힘을 얻는다.

 

만일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일하는 데 있어 괴로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기도를 통해서 일의 가치와 의미는 더욱 분명해진다. 수도회에서 일과 기도를 중요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에 임하기 전에 간단히 기도를 해 보면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일을 하는 중에도 그 일을 하느님께 봉헌한다고 생각하면서 기도를 하면, 일의 능률이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일을 마친 후 감사 기도를 하면, 우리는 일의 또 다른 보람과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기도로 힘을 얻는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태도는 우리 신앙인들이 본받아야 할 태도이다. 일과 기도를 함께 생각하고, 하느님의 창조 사업의 의미를 되새기며 일에 임하는 태도는 신앙인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둘째, 신앙인은 봉사하는 자세로 일에 임해야 한다.

그리스도교적 해석에 따르면 일은 곧 사람들이 서로에게 봉사하는 행위이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요한 13,14)라고 하시며 겸손과 섬김의 자세로 일하는 모범을 보여 주셨다.

 

인간은 일을 할 때, 이웃을 섬기는 봉사의 마음으로도 일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공동선을 위해 국가와 사회 안에서 봉사해야 하며, 이런 의미에서 일은 인격적이고 신성하며 고귀한 것이다.

 

셋째로 공동체 의식을 갖고 일에 임해야 한다.

어떤 일이든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기보다 공동체 안에서 함께 실현되는 경우가 많다. 그 과정에서 공동체 구성원 간 의견 차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고방식, 세대, 성격, 교육 수준의 차이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동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지 않고, 다른 이의 주장을 경청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타인의 능력과 재능을 질투하지 않고, 그것을 하느님께서 주신 공동체의 축복으로 여긴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능력은 그 개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공동체 전체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이익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에 임할 때는 공동체 안의 '우리'로서 일한다는 연대감을 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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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1984년 사제품을 받은 후, 다양한 성당에서 사목하며 18년간 서울대교구 대변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현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을 맡고 있으며, 바쁜 사목 활동 속에서도 여러 매체에 꾸준히 글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성경 속 궁금증》, 《성경 속 상징》, 《성경 순례》, 《당신을 만나 봤으면 합니다》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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