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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는 자격이 아니라 결단이며, 신앙은 안락함이 아니라 사랑을 선택하는 용기입니다.”
✟ 사제품이나 세례를 받으면 신앙의 길이 평탄해질 것이라 기대하지만, 현실의 신앙은 오히려 더 깊은 선택과 고통을 요구합니다. 이 글은 사제직과 세례의 의미를 ‘끝이 아닌 시작’으로 다시 바라보며, 예수님의 세례 이후 곧바로 이어진 광야의 시련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이 왜 ‘날마다의 예’와 ‘날마다의 선택’인지를 묵상합니다.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정체성 안에서, 우리는 고통을 피하는 신앙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세상 한복판을 살아가는 신앙으로 초대받고 있습니다. |
신학교 생활을 마치고 사제품을 받으면, 모든 것이 기쁨과 평화로 가득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사제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또 얼마나 깊은 십자가의 길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사제품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사제직의 완성은 수품의 순간이 아니라 사제로 죽는 순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말을 해마다 더 실감합니다. 사제의 길은 한 번의 선택이 아니라 날마다 “예, 주님.”이라는 응답의 연속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세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례를 받을 때의 기쁨은 잠시이지만, 신앙의 길은 순탄하지 않습니다. 믿음을 지켜 간다는 것은 언제나 고통과 시련을 동반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세상의 이익을 좇지 않고, 예수님처럼 손해를 감수하며, 희생을 받아들이겠다는 사랑의 결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례는 구원의 보증서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향한 여정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여정은 한 번의 세례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통해 완성되어 가는 삶의 성사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세례 장면을 마주합니다. 요르단 강가에서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오며, 하늘에서 음성이 울려 퍼집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마태 3,17)
얼마나 장엄하고 영광스러운 순간입니까. 그러나 그 빛나는 장면의 바로 다음에는 곧바로 광야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40일 동안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또한 변모의 찬란한 순간 후에도 예수님께서는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과 함께 산을 내려오시며, 십자가의 길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은 고통을 피하는 길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고통 속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세례를 받은 우리는 세상에서 도피하기 위해 부름받은 이들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세상 한복판을 살아가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신앙의 길입니다.
세례는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성사입니다. 여기에 주어지는, 이 세상 어떤 지위나 명예보다 더 귀한 이름이 바로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나라의 초대장을 내밀며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그러나 우리는 종종 세상의 유혹에 빠져 그 초대에 응답하지 못합니다. 집과 일, 재물과 여가, 명예 등과의 비교 속에서 하느님 나라의 잔치를 외면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럴 때마다 세례받은 우리는 스스로 ‘하느님께 사랑받는 자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기억은 우리가 세상의 즐거움을 내려놓을 수 있게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손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 손해 안에서 사랑의 기쁨을 발견합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2천 년 전 요르단 강가에서만 울려 퍼진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향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힘든 삶으로 앞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이렇게 고백합시다.
“나는 세례받은 하느님의 자녀이다.”
이 고백은 우리의 존재를 붙드는 가장 깊은 진리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세례는 단순한 자격이 아니라 삶의 결단입니다. 세례받은 이로서 하느님의 뜻을 선택하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려는 의지, 그것이 참된 믿음의 길입니다. 주님께서 예수님께 하신 그 음성이 우리 각자에게도 들리기를 바랍니다.
이 음성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질 때, 우리는 더 이상 두렵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랑 안에서 우리 신앙인은 다시 ‘아멘’이라 응답하며,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 오늘의 묵상 포인트
요즘 내 신앙은 ‘머무름’에 가까운가요, ‘다시 걸어 나섬’에 가까운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