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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순은 부활을 향해 삶의 방향을 다시 세우는 시간입니다. 그 여정은 마음을 들여다보고, 붙들 것과 내려놓을 것을 분별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를 흔들던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우리는 감정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마음속에 떠올랐던 감정에 이름 하나를 붙여 보면 어떨까요? 💘 |
나는 작년 1월 15일 저녁부터 지금까지 아침저녁으로 감정 일기를 쓰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떤 감정이 올라오는지 살펴보고 감정에 이름을 붙여 적는다. 왜 이런 감정이 올라오는지 이유를 함께 쓰고, 그에 대해 떠오른 생각과 작게라도 깨닫게 된 것도 쓴다. 밤이 되면 눈을 감기 전에 어떤 감정이 올라오는지 살펴보며 아침과 같은 방법으로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감정을 이리저리 들여다보는 글을 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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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매일 아침저녁으로 감정 일기를 쓰면서 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것은 뿌연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던 내 안의 감정들이 맑은 어항 속 훤히 들여다보이는 물고기처럼 또렷하고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감정 일기’를 써야 하는 이유
감정이란 무엇일까? 감정은 올라오는 것이다. 그럼 내려오는 건 뭘까? 생각이다. 이렇듯 올라오는 게 감정이고, 내려오는 게 생각이라고 여기면 감정과 생각이 조금은 이해하기 쉽게 느껴진다. 올라오는 감정을 내려오는 생각으로 적어보는 작업이 바로 감정 일기다.
감정을 모르면 사는 데 무슨 문제가 생길까? 크고 작은 문제가 끊임없이 생긴다. 《손자병법》에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나와 있는 것처럼, 감정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년을 살아도 위태롭지 않다. 하지만 감정을 모르면 백 년이 위태로울 것이다. 이는 감정이 나를 끌고 다니기 때문이다.
모진 말을 퍼붓고, “화가 나면 무슨 소리를 못하겠어요?”라며 변명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화가 이 사람의 주인인가, 이 사람이 화의 주인인가 의문이 생긴다. 물론 말할 것도 없이 화가 주인이다.
화가 나기 시작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화가 치솟는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화가 나더라도 막말을 하지 않는다. 자신이 화를 관리하는 주인이 되기 때문이다. 화뿐만 아니라 모든 감정이 화와 같아서, 감정에 이름을 스스로 붙일 줄 알게 되면 감정은 우리의 좋은 종이 된다. 스스로가 감정의 주인이 되어 감정을 다루고 관리할 수 있게 된다.
감정의 주인이 되는 방법
이번 생을 마음 편하게 살고,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자신의 안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한 첫걸음은 바로 ‘올라오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감정 일기의 첫 줄에는 감정의 이름을 쓴다.
안다는 것은 ‘겉을 아는 얕은 앎’과 ‘속까지 아는 깊은 앎’이 있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알기는 아는데 겉만 아는 얕은 앎이다. 왜 이런 감정이 생겼는지, 이 감정이 생겨 어떤 행동을 하고 싶은지를 아는 것은 속을 아는 깊은 앎이다. 그래서 스스로 이름 붙인 감정에 다시 설명을 붙이는 글을 감정 일기 아래에 쓰게 된다.
가장 깊은 앎은, 그 감정을 통해 알게 된 자신에 대한 깨달음이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나는 이런 걸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구나.’ 하는 깨달음은 자신의 내면을 이해하는 가장 깊은 깨달음이다. 이를 자기 성찰을 통한 자기 통찰이라 할 수 있다.
감정 일기를 쓰게 되면 좋은 점 하나는 아침저녁만이 아니라 낮에도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감정에 세심히 주의를 기울이며 바로바로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내면에서는 하루에 굉장히 많은 감정이 무지개처럼 퐁퐁 솟아오른다. 이 감정들에게 “어, 이게 뭐지?”라며 관심을 갖고 질문을 던지기만 하면, 감정들이 하나둘씩 자신의 정체를 알려 준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과 마치는 저녁에 감정 일기를 쓸 뿐인데, 낮에도 손이 아닌 마음으로 계속 일기를 쓰고 있으니 하루 종일 감정 일기를 쓰는 셈이다. 그래서 늘 감정의 주인이 되어 평화로운 내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나를 알면 주어지는 감정의 선물
이렇게 자신의 감정에 자유자재로 이름을 붙이고, 그에 대한 설명을 통해 나를 깊이 알게 되면 놀라운 일이 하나 기다리고 있다. 바로 내 주변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2년 넘게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감정 식당’에 일주일에 한 번씩 고정 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인생 고민을 담은 사연이 들어오면 ‘즉문즉답’으로 사연을 보내온 분의 감정을 읽고, 고민을 해결할 ‘꿀팁’을 드리는 방송을 하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연에 담긴 감정이 억울함인지, 아니면 섭섭함인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그 이해를 바탕으로 방송을 하면, 마음을 족집게처럼 알아주어 고맙다는 피드백이 방송국으로 돌아온다.
내가 특별한 재주가 있어서 그런 일이 가능한 게 아니다. 날마다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이름을 붙이고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남의 감정도 내 감정처럼 소중히 다루게 된 것뿐이다. 감정에 이름을 붙일 때나, 설명할 때 앞에 “빠밤”이라는 말을 익살스럽게 넣다 보니 청취자들 사이에서 어느새 나는 “빠밤 교수”로 통하고 있다.
생각하지도 않은 놀라운 일이 또 하나 있다. 내가 하는 방식으로 감정 일기를 쓰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다. 올해는 다섯 사람이 감정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며칠 쓰지 않았는데도 내가 느꼈던 소감을 똑같이 전해 준다.
“제 감정의 주인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젠 더 이상 감정에 휘둘려 살 것 같지 않아요.”
“제가 누구인지 더 잘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기적을 만들어 주신 빠밤 교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속속 도착하는 문자를 보며, 내가 감정 일기를 쓰는 일이 세상에 작고 어여쁜 기여가 되고 있음을 실감한다. 더없이 뿌듯하고 보람찬 일이다.
더 많은 사람이 감정 일기를 쓰기를 희망한다. 나처럼 하루에 꼭 두 번씩 쓸 필요는 없다. 이처럼 바쁜 세상에서는 하루에 한 번 쓰기도 버거울지 모른다. 시간이 없어서 며칠 못 써도 괜찮다. 중요한 건 꾸준히 써 보는 것이다. 감정 일기가 나의 삶을 변화시켰듯이, 다른 사람의 삶도 편안하게 이끌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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