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특집④ 한국 오컬트 영화로 읽는 신앙과 욕망

가톨릭 예술

월간 특집④ 한국 오컬트 영화로 읽는 신앙과 욕망

영화 <검은 사제들>과 <검은 수녀들>, <파묘>를 중심으로 인간 실존 살펴보기

2026. 02.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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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 일상이 된 시대,

우리는 왜 보이지 않는 세계의 이야기에 이렇게 쉽게 마음을 맡기게 될까요?

 

✟ 악과 저주, 의식과 주문은 사실 공포보다 

“그래도 이유는 있다.”는 작은 위안을 건넵니다.

 

모든 것이 설명되길 바라는 마음 앞에서,

신앙은 우리에게 어떤 자리에 서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2015년 개봉한 <검은 사제들>을 필두로 한국 영화계에서 오컬트 장르(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신비적, 초자연적 현상 또는 그러한 현상을 일으키는 기술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장르)’는 일시적 유행을 넘어 하나의 확고한 흐름으로 자리를 잡았다. 관객은 영화에 등장하는 귀신과 악령의 모습을 두려워하면서도, 오컬트 영화가 그리는 세계를 끝까지 따라가는 과정에 기꺼이 동참한다. 무덤을 파헤치고, 악령을 불러내며, 보이지 않는 세계와 맞서는 서사는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 되었다.

 

이는 단순히 공포 영화의 쾌감을 맛보기 위해서라기보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해하고 싶어 하는 욕망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이 지점에서 오컬트 영화 열풍은 타로나 사주, 점술 문화와 맞닿아 있다. 이 글에서는 영화 <검은 사제들><검은 수녀들>, <파묘>를 중심으로, 한국의 오컬트 영화가 어떤 방식으로 악과 구원을 서사화하는지, 또 불확실함 앞에 선 인간 실존의 나약함을 어떻게 그리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신앙은 의식보다는 관계에 더 가깝다: <검은 사제들>

 

장재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 <검은 사제들>은 가톨릭 교회의 구마 의식을 본격적으로 전면에 내세운 한국 영화이다. 영화가 보여 주는 여러 오컬트 장르적 요소들은 영화적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그러나 이 영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구마의 성공 여부가 절차의 완벽함에만 달려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영화는 악령에게 대항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마치 악이 존재하는 세상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방식으로 그린다.

 

영화 안에서 구마 의식을 주관하는 김 신부(김윤석 扮)와 그를 따르는 최 부제(강동원 扮)는 흔들리고 의심하며 두려워한다. 특히 최 부제가 보이는 망설임과 공포는 성직자도 신앙 앞에서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최 부제가 구마 의식 앞에서 흔들리고 두려워하는 이유는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된다. 영화는 어린 시절 자신의 망설임으로 인해 개에게 물려서 목숨을 잃은 여동생에 대한 기억을 보여 준다. 또 영화 <검은 사제들>의 모티브가 되어 준 장재현 감독의 단편 영화 <열두 번째 보조 사제>에서는 보조 사제의 과거를 다룬다. 그가 군 복무 시절 선임들로부터 받은 성적인 학대의 기억은 구마 의식 도중 두려워하고 주저하는 모습과 함께 제시된다. 그렇게 영화는 흔들리고 의심하며 두려워하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악과의 대결은 초인적 능력의 과시가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선택의 연속이 된다. 이는 구마를 하나의 기술처럼 오해하기 쉬운 관객에게, 세상에 만연한 악에 대항해야 하는 신앙이란 결국 하느님과의 관계 맺음의 일환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악의 실재보다 인간의 고통에 초점을 맞추다: <검은 수녀들>

 

지난해 개봉한 권혁재 감독의 영화 <검은 수녀들>은 전작인 <검은 사제들>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시선을 인간 내부로 조금 더 이동시킨다. 이 영화에서 악은 외부에서 침입하는 존재라기보다, 상처 입은 인간의 삶과 얽혀 있는 존재다. 구마의 대상은 단순히 악령 들린 몸이 아니라, 고통을 감당하지 못한 한 인간의 현실이다.

 

이러한 접근은 오컬트 장르의 방향을 바꾼다. 악을 자극적으로 소비하는 것을 넘어서, 왜 사람들이 악의 설명을 필요로 하는지를 묻기 때문이다. 영화는 악은 존재한다.'라고 선언하기보다 인간은 얼마나 취약하고 나약한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더 오래 남긴다.

 

영화 <검은 사제들><검은 수녀들>에는 공통적으로 보통 사람과는 다른 지식과 권한을 가진 인물’, 곧 가톨릭 교회의 성직자와 수도자가 등장한다. 이들은 악을 인식하고, 진단하며, 의식을 통해 그것을 몰아낸다. 관객은 이 인물들에게서 일종의 구원자적인 면모를 보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가톨릭 신앙에서 구원은 특정 기술이나 비밀 지식을 수행한 결과가 아니다. 구원은 하느님의 은총이며, 인간이 조작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영화 속 구마 의식이 자칫 올바른 절차만 따르면 악은 언제든지 제압이 가능하다.는 인상을 줄 때, 신앙은 하나의 기술로 오해될 위험에 놓인다. 실제로 교회는 구마를 매우 신중하게 다룬다. 이는 악의 실재를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의 연약함과 하느님의 주권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영화가 보여 주는 긴박한 의식과 극적인 승리는 서사적 장치이지, 신앙의 본질은 아니다.

 


 

악은 귀신이 아니라 정리되지 않은 과거로부터 온다: <파묘>

 

장재현 감독은 <검은 사제들><사바하>에 이어 2024년에 개봉한 <파묘>를 통해 오컬트 장르 영화의 장인으로 우뚝 서게 된다. 장재현 감독의 이전 작들과 비교했을 때 <파묘>의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공포의 근원을 초자연적 존재 자체에 국한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영화는 무덤을 파헤치는 행위, 곧 파묘를 단순한 금기의 위반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무덤은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역사, 정리되지 않은 죄의 은유로 작동한다. 악은 갑자기 출몰하는 괴물이 아니라, 덮어 두었던 과거가 현재를 잠식하는 방식으로 등장한다.

 

<파묘>에서 무속 의식과 풍수는 만능 해결책이 아니다. 인물들은 계속해서 판단을 그르치고사태의 본질을 뒤늦게 깨닫는다. 이는 오컬트적 세계관을 소비하면서도, 동시에 그 한계를 노출하는 서사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다룬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끝까지 통제하지 못한다. 이 불완전함이 영화의 공포를 지속시키는 핵심이다.

 


 

오컬트 영화가 제공하는 확실성의 유혹

 

<검은 사제들><검은 수녀들>, <파묘> 세 작품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공포를 구성하지만 공통적으로 하나의 약속을 제시한다. 세상에는 설명이 있고, 전문가가 존재하며, 절차를 따르면 결말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의 약속이다. 이는 일상 안에서 타로사주가 주는 안도감과 닮아 있다. 그러나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이 같은 확실성은 언제나 제한적이다. 하느님께서는 공식처럼 호출되는 분이 아니며, 하느님의 은총은 언제나 인간의 계산을 넘어선다. 영화는 서사적 완결을 위해 악을 규칙화하고 규격화하지만, 신앙은 오히려 인간이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사실 위에 서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컬트 영화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의미와 설명을 갈망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문제는 그 갈망이 어디로 향하느냐이다. 신앙인은 영화 속 악과 의식을 보며 공포에 머무르기보다, 그 이면에 드러난 인간의 불안과 통제 욕망을 읽어 낼 필요가 있다.

 

소위 명당이라고 불리는 장소에 세워진 절은, 사실 좋지 않다고 평가를 받아 버려진 땅에 일부러 세워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 땅에 절을 세운 후, 그 장소를 좋은 땅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공을 들였다고 한다. 근래의 오컬트 영화가 그리는 인간의 불안과 통제 욕망에 대한 해법처럼 다가오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미래의 행복은 점을 쳐서 예측하며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며 열어 가는 시간의 일환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컬트 영화의 열풍은 신앙이 다시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를 묻는 하나의 징후일지도 모른다.

 

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현재 영화를 비롯한 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분야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소수자를 포함한 사회의 소수자들을 향한 사목에 힘쓰고자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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