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특집③ ‘불교힙’ 다음은 ‘성당힙’?

신학 칼럼

월간 특집③ ‘불교힙’ 다음은 ‘성당힙’?

가톨릭과 불교가 공유하는 종교적 가치와 주제

2026. 08.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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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불교 박람회는 젊은이들로 북적이고, 뉴욕의 청년들은 피자를 먹고 함께 성당에 갑니다.

 

✨ 오래된 종교가 다시 젊은 세대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 변한 것은 종교일까요, 아니면 종교를 찾는 사람들일까요?

 


 

원조 힙스터, 예수님과 부처님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종교에 (Hip)하다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또한 종교에 대한 편향된 시각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종교야말로 그 어떤 사상이나 조직보다 힙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부처님께서도 그 당시 기존 사회 질서나 사고방식으로 봤을 때 굉장히 힙한 분들이셨습니다. 기존의 질서에 안주하지 않고 사회 개혁에 헌신하셨기 때문입니다.

 


 

오픈런의 성지, 불교 박람회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힙한 종교를 꼽으라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불교를 꼽을 겁니다. 지난 4월 코엑스에서 열린 ‘2026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는 나흘 동안 약 25만 명이 방문했습니다. 이 중 20·30대 비중이 73%, 무종교라고 답한 사람이 48%에 달해 이른바 힙한 불교열풍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 불교신문

 

특히 MZ 세대를 중심으로 불교 굿즈를 구매하기 위한 오픈런 행렬도 이어졌다고 합니다. 지나친 경쟁과 끝도 없는 불안,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질 수 없다는 무력감과 번아웃 속에 놓인 MZ 세대에게 불교가 새로운 위안으로 다가가고 있는 듯합니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불교의 가르침은 빨리빨리문화 속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과를 내야 한다는 시대적 압박 속에서 오히려 신선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불교신문

 


 

피자 먹고, 성당 갑니다

 

또한 미국에서 가장 힙한 종교를 꼽으라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가톨릭을 꼽을 겁니다. 요즘 뉴욕의 MZ 세대는 주말 저녁 술집이나 클럽 대신 피자를 먹으러 성당에 간다고 합니다. 피자를 함께 먹고 성당으로 향하는 이 모임의 이름은 피자 투 퓨즈(Pizza to Pews)’라고 합니다. 처음 100여 명으로 시작했지만, 불과 몇 주 만에 200명을 넘어섰고, 지금은 매주 수백 명이 모이는 정기 모임으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Z세대는 흔히 불안한 세대라고 불립니다. 많은 젊은이가 불안과 불확실성, 방향성을 잃은 느낌과 무력감을 경험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럴 때일수록 삶의 목적과 의미를 더 간절히 찾게 됩니다. 신앙은 그 답을 찾아가는 하나의 방법이 되어 주는 것 같습니다. 이는 인간이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SNS와 스마트폰 속에 갇혀 살아가면서도 결국 서로 연결되기를 갈망하는 존재임을 보여 주는 듯합니다.

 

뉴욕의 상징 센트럴파크에서는 젊은 여성들이 함께 걸으며 묵주 기도를 하는 홀리 걸 워크모임도 열린다고 합니다. 너무 빠른 변화와 디지털 환경에 지친 젊은 층이 오히려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가톨릭의 전통, 그 변하지 않는 가치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AI가 못 하는 것, 종교가 하는 것

 

종교는 사실 수천 년 동안 인간이 불안을 다스리고, 공동체를 유지하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발전시켜 온 하나의 도구입니다. AI가 정보를 다루는 기술이라면, 종교는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기술인 셈입니다. AI가 일상을 바꾸고 있는 시대에 정작 청년들이 찾고 있는 것은 더 뛰어난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 그리고 삶의 의미인 듯합니다.

 


 

낡지 않기 위한 변화

 

물론 종교가 세상의 요구를 모두 수용해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유연한 자세로 세상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노력은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 역시 교회는 나날이 새로워져야 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굿즈를 만들고 디제잉을 하는 불교의 모습. 젊은이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열어 주고, 그들이 원하는 바에 귀 기울이려 노력하는 사제들의 모습. 마치 새로운 변화처럼 보이지만, 이 모습들은 예수님께서도, 부처님께서도 이미 다 하셨던 일입니다. 제도권 종교가 되면서 그 본질이 희석됐을 뿐입니다.

 


 

존재 이유는, 다가가는 것

 

오늘날에 맞는 선교 방식, 나아가 종교의 존재 이유는 먼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전하는가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귀 기울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본질은 바꿀 수 없겠지만, 바꿀 수 있는 부분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불교와 가톨릭은 오랜 전통을 지닌 종교라는 데서 오는 안정감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불교와 가톨릭의 성직자들은 신앙을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일부 개신교 목회자들의 모습과는 다소 다른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상하고 거룩하고 근엄한 모습으로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자아 성찰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함께 울고 웃어 주는 성직자를 필요로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외면하지 않는 성직자를 필요로 합니다. 예수님과 부처님께서 그렇게 하셨듯, 성직자들도 그렇게 해 나가야 합니다.

 


 

결국 사람, 결국 사랑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사람들이 달라진다 해도, 결국 사람이 사람에게 바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AI가 사람보다 앞서나간다고 해도, 결국 AI에게 없는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불교도 가톨릭도 결국 사람을 위한 종교입니다.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이야말로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신 부처님과 예수님의 참모습입니다.

 

혹시라도 그동안 제도권 안에서, 종교 시설 안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기다리기만 했다면, 이제는 제도권 밖으로, 종교 시설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찾아 나서야 하겠습니다. 울타리 안에 있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선 예수님의 모습. 사람들은, 특히 청년들은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간절히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불교 박람회의 굿즈, 성당으로 향하게 하는 피자, 묵주 기도하는 모습을 올리는 SNS 피드. 그 안에 감춰진 사람들의 요구는 결국 너무 힘드니 위로해 달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에게 와라.’, ‘우리가 하라는 대로 해라.’가 아니라 우리가 가겠다.’, ‘하고 싶은 것을 도와주겠다.’라고, 부처님처럼 예수님처럼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가톨릭과 불교에서 가르치는 최고의 가치는 사랑입니다. 부처님과 예수님을 사랑하는 만큼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사랑이 부족한 사회입니다. 종교의 존재 이유는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으로 세상에 따뜻한 위로를 주고, 사랑으로 세상이 살 만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사랑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킨다는 부처님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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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사회사목국 부국장 겸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서품 성구인 “가까이 계실 때에 그분을 불러라.”(이사 55,6)를 마음에 새기며,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시는 하느님을 기억하고 살아가고자 합니다. 평소 야구를 즐겨 보며, 특히 LG 트윈스의 경기를 응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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