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WYD 조직위원장이신 교구장님이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마련해 주신 주제 성구인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라는 말씀을 묵상하시며, WYD를 통해 온 세상 청년들과 함께 성찰하고 나누며 선포하길 바라신 복음에 바탕을 둔 보편적 가치로 진리, 사랑, 평화를 제시해 주셨다.
진리는 청년들이 WYD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만나 오늘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신앙의 태도를 쇄신하기 위한 길잡이가 되는 가치이다.
사랑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해 마련하시고 예수님께서 온 삶을 통해 선포하신 생명, 가정, 생태의 영적 가치를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평화는 오늘날 온갖 종류의 폭력과 불의 속에서 신음하는 젊은이들과 연대하여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인류 공동체의 평화를 뜻한다.
2027 서울 WYD는 ‘세상을 이기는 용기’를 갖고 WYD 준비 과정뿐만 아니라 본대회에서 앞선 세 가지 가치를 청년들과 나누고 선포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이 단순한 종교적 가치를 뛰어넘어 온 세상에 기쁜 소식이며 인류 공동체의 보편적 메시지로 선포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먼저 이전 대회를 살펴보았다.
이 과정에서 2019 파나마, 2023 리스본 세계 청년 대회에서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환경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성찰과 제안을 구현하고자 했던 사목적 방향을 서울에서도 이어 가기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우리의 노력을 “온 세상에 생명의 숨을”(온숨 캠페인)이라는 이름으로 정했다.
실제로 전 세계 청년들이 순례를 위해 모이는 과정에서, 특히 비행기를 이용하며 이산화탄소 배출이 막대하다. 분단 국가인 우리나라는 섬나라와 다름없기에, WYD에 참가하는 청년들은 대부분 비행기를 탈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을 마주한 청년 봉사자들은 WYD 준비 과정에서부터 탄소 중립을 위해 마음을 모았고, 그 첫 번째 방법으로 ‘나무 심기’를 제안하였다. 좋은 아이디어였지만, 나무를 심으려 하니 어디에 심을지, 나무는 어떻게 구해 올지 막막해졌다.
이 과정에서 교구 내 환경사목위원회의 의견을 구했고, 이미 서울대교구와 산림청이 MOU를 맺어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난 2월, 산림청과 서울시, 그리고 환경사목위원회가 한자리에 모여 2027년 WYD까지 이어지는 장기 프로젝트를 함께 만들어 가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준비가 미흡했다. 산림청은 나무를 제공하고, 서울시는 부지를 제공하며 WYD는 홍보와 나무를 심을 봉사자를 모집한다는 생각만으로는 조율할 것이 너무나 많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계절에 따라, 부지에 따라서 어떤 나무가 잘 자라는지, 또 산림청에는 어떤 묘목이 있는지, 서울시 녹지 사업 중 함께 할 곳은 어디인지 등 더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그래도 하나씩 만들어 가면 분명 될 것이라 믿고 청년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가 준비하던 ‘나무 심기’ 캠페인과 비슷한 행사를 주관하던 청년이 나타났고, 멋진 아이디어들이 청년들의 입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2월부터 WYD에 합류한 후배 신부님이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주제에 맞는 행사를 개발하는 것뿐만 아니라, 법인이사회, 국비 보조금 신청 등 법인 사무국장으로 맡겨진 일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후배 신부님과 함께 서울시, 산림청을 따로 만나 가능한 범위를 좁혀 가며 구체적인 나무 심기 계획을 만들어 갔다. 청년들과 월드컵공원 내 하늘공원 부지를 직접 방문하여 시민모임 활동가 선생님의 안내로 나무 심을 공간을 확인하며 구체적으로 무엇을 준비할지 그 방향이 명확해졌다.
4월 26일 토요일. 충분히 준비했다고는 했지만, 현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조금은 부산스럽게 나무 심기가 시작되었다. 지구를 살리고자 하는 청년들의 마음은 이미 열정으로 가득했다. 봉사자를 포함해 50여 명의 청년들이 3시간 동안 한강이 바라보이는 산비탈에 작은 산수유 묘목을 심었다.
삽도 제대로 사용해 보지 못한 청년들도 굵은 땀방울을 흘리면서 기쁘게 나무를 심었다. 나무를 심는 과정에서는 언어의 장벽은 소용이 없었다. 함께한 9명의 외국인 청년들과 마지막까지 나무를 심으며 서로 웃고 응원했다.
우리가 나무를 심은 곳은 인간의 욕심으로 파괴된 ‘난지도’였다. 오른발로 삽을 눌러 땅을 팔 때마다 썩지 않는 쓰레기들, 마구잡이로 버려진 건축 자재들이 우리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묘목의 뿌리가 쓰레기들 사이를 비집고 깊이 뿌리를 내리고자 노력하듯, 청년들도 쓰레기에 굴하지 않고 땅을 파고 또 파나갔다.
누군가는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한 노력이 얼마나 세상을 바꾸겠냐고. 나는 되묻고 싶다. 그런 걱정보다 한 그루 나무를 심을 때 흘리는 땀방울과 지구를 사랑하려는 회심이 더욱 소중하다고.
이제 첫 삽을 떴다. 이번 가을, 내년 봄과 가을에 계속해서 청년들과 나무를 심을 것이다. 비록 WYD 때까지 나무가 나무다움을 뽐내는 것을 보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노력은 하느님을 미소 짓게 할 것이다.

‘온 세상에 생명의 숨을’ 캠페인, 하늘공원에 나무를 심고 있는 청년들.
(촬영 이영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