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성경 이야기

“오늘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2025년 11월 23일 |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2025. 11. 22
읽음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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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적혀 있는 알파벳 네 글자 INRI를 보신 적이 있나요? 이 네 글자는 예수 나자렛 사람 유다인들의 임금을 뜻하는 라틴어 문구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에서 각 단어의 첫 번째 알파벳을 조합한 것입니다.

 

요한 복음서 1919절에 따르면, 로마 총독이었던 빌라도는 이 문구를 명패에 기록하여 십자가 위에 매달도록 명령했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에 대한 법적 이유를 표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명패는 전통적으로 십자가의 표제”(라틴어: Titulus crucis)라고 불립니다. 그러나 루카 복음서의 저자는 예수님의 머리 위에 붙어 있는 죄 명패의 표현을 요한 복음과 다르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 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루카 23,38)

 

1독서는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추대된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베들레헴의 목동 출신 다윗을 혼란에 빠진 이스라엘을 구할 수 있는 지도자로 선택합니다. 다윗이 훌륭한 인격과 강력한 지도력을 겸비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습니다. 첫 번째 기름부음은 사무엘에게(1사무 16,13), 두 번째는 헤브론에서 유다인들에게(2사무 2,4), 세 번째로는 이스라엘의 원로들에게 받았습니다(2사무 5,3). 이로써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다윗 왕조의 정통성이 열두 지파에 의해 확인되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넘쳐흐르는 사랑

 

예수님께서는 다윗 왕조의 계보를 잇는 후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 왕조의 부활을 갈망하였고, 예수님께서는 메시아적 기다림을 이루어 주신 임금이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분을 메시아로 알아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거부하였고, 십자가 위에 매달았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임금으로서의 존엄을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이스라엘의 임금으로만이 아니라, 온 피조물의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주님의 축일과 신비 감사송 8 참조).

 

그리스도 임금께서는 금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왕관을 쓰신 것이 아니라, 혐오스러운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그분의 참된 왕권은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진 죽음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돌아가셨지만 다시 살아나신 이 임금께, 하느님께서는 신적인 권능을 부여하셨습니다(마태 28,18 참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한 명은 예수님을 모독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적혀 있던 명패를 보고도 예수님을 메시아적 임금으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반대편에 있던 다른 죄수는 예수님을 메시아적 임금으로 고백하며 그분의 나라를 희망했습니다.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42)

 

이에 대해 그리스도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영원한 유산을 약속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오늘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

 

우리는 두 번째 죄수처럼 그리스도의 참된 왕국, 곧 그분의 왕권이 실현되기를 희망하며 기다립니다. 바오로 사도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처음으로 부활하셨으며, 하느님께서는 그를 통해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고, 죄로부터 구원하시어 참된 해방을 선물로 주셨습니다(2독서: 콜로 1,12-20 참조).

 

참된 그리스도의 왕국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을 주시는 메시아이심을 고백하는 믿음 안에서, 그분의 참된 왕권은 지금 여기에서 실현될 것입니다.

 


 

🌸 오늘의 묵상 포인트

 

예수님께서 쓰신 왕관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나요?

 


Profile
수원교구 사제.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생 양성’이라는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신학생들과 함께한 지 벌써 6년이 지났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리게 느껴졌던 신학생들이 양성을 마치고, 사제 서품 후 파견되어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충실히 수행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교회와 하느님 백성을 위해 열정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학교 양성자로서 살아가는 보람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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