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긴장을 내려놓다

영성과 신심

영혼의 긴장을 내려놓다

마음의 평화를 위한 신앙의 기술

2025. 07.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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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란 정신적이거나 신체적인 자극을 받았을 때 느끼는 압박감이나 부담감 등의 정신적 반응을 말합니다. 사람은 외부에서 스트레스 요인의 자극을 받으면 자율 신경계의 교감 신경이 활발해져 심박이 증가하고, 신체 말단 혈액 공급이 늘어나며, 긴장·각성·불안·흥분 등의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이러한 작용 기제는 아마도 인류 초기, 사나운 동물이나 급작스러운 위험 요소와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생존성을 높이기 위해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다양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현대인에게는 일상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이 되었습니다.

 

사실 스트레스를 경험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스트레스 요인이 없는 따분한 상태 역시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되기에, 인간이 스트레스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일상생활이 위협받을 정도가 되면 이는 중대한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스트레스 관리는 현대인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소진 증후군이나 만성 피로, 불안 장애 같은 문제를 겪지 않기 위해서 스트레스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지요.

 


 

신앙인의 스트레스 관리

 

많은 이들이 스트레스 해소 방법으로 보상적 행위를 찾곤 합니다. 맵거나 자극적인 음식, 흡연이나 음주 등이 이에 해당하지요.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장기적으로 몸에 부담을 주고 해를 끼치므로 건강한 스트레스 해소법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체 활동이나 취미에 몰두합니다. 눈을 감고 명상을 하거나 목욕, 아로마 요법, 마사지 등으로 근육을 이완시키기도 하지요. 이처럼 건강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입니다. 또한 명상을 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이라고도 불리는 코르티솔의 체내 수치가 낮아질 수 있다는 사실이 이미 많은 연구로 입증되기도 했습니다. 심오하고 대단한 방법 없이, 그저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수치 감소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스트레스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요? 위에서 언급한 건강한 스트레스 관리법도 좋겠지만,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무기가 있습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너무 단순하고 당연한 답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도의 세 가지 효과

 

기도는 세 가지 측면에서 우리를 도와줄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측면은 명상의 효과입니다.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감소한다고 하니, 우리가 드리는 기도 역시 그러하겠지요. 성체 앞에서, 집안의 성모상이나 십자고상 앞에서, 혹은 바쁜 일상 중에도 우리가 호흡을 가다듬고 마음을 모아 하느님을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스트레스 관리에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두 번째 측면은 스트레스 요인으로부터 눈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강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그 원인에 생각이 깊이 머무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음에 압박감을 가져다주는 요인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계속해서 스트레스를 더해 가는 꼴이지요.

 

하지만 기도는 기본적으로 나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하느님께로 향하는 행위입니다. 스트레스 상황 속에서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나 자신과 스트레스 요인으로 향하던 시선을 다시금 하느님께로 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트레스의 굴레에서 벗어나 창조적인 힘과 생명력을 주시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맺도록 초대되는 것입니다. 스트레스의 요인이 아니라 하느님을 바라보며 영혼이 잠시 숨 돌릴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지요.

 

가장 중요한 마지막 세 번째 측면은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샘솟는 기쁨과 신뢰입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를 하느님과의 대화라고 합니다. 실제로 기도는 하느님을 바라보고, 하느님께 말을 건네며, 하느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행위입니다.

 

기도가 스트레스 관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스트레스의 원인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스트레스는 특정한 상황에서 오기도 하지만, 그 상황이 야기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가중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가령 직장에서 중대한 프로젝트를 맡았다고 가정합시다. 그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행위 자체도 부담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과연 내가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부담감을 심화시키고 더 큰 중압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주님의 말씀을 우리가 진정으로 믿을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어떤 일이 우리에게 닥친다고 해도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하신 가장 좋은 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마태 10,29-31)

 

그렇습니다. 기도는 단순히 체내의 스트레스 호르몬을 떨어뜨리고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기술이나 요법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하느님과의 관계 맺음이며, 하느님을 알아가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를 통해 만나는 하느님은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시고, 당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주시는 분이십니다.

 

결국 기도는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즉각적인 치료가 아닌, 하느님을 알아가는 장기적인 여정입니다. 그 여정을 걸어가며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요인에서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가장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신앙인의 스트레스 관리라는 이 글의 제목은 그 자체로 해답을 내포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인은 믿는 사람’, ‘신앙을 가진 사람이고, ‘참다운 신앙그 자체가 스트레스의 치료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다운 신앙의 여정

 

제가 즐겨 묵상하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참되고 완전한 기쁨에 대한 가르침은 이러한 신앙이 어떠한 것인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어느 날 복되신 프란치스코가 천사들의 성 마리아 성당에 머물고 있을 때 레오 형제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고 같은 형제(레오나르도 형제)가 전하였다.

 

레오 형제, 기록하십시오.”

레오 형제가 대답하였다. “, 준비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말했다. “어떤 것이 참된 기쁨인지 기록하십시오. 어느 소식 전달자가 와서 파리의 모든 교수들이 우리 수도회에 들어왔다고 전한다고 합시다. 그러나 그것이 참된 기쁨이 되지 않는다고 기록해 놓으십시오. 마찬가지로 알프스산 너머 모든 고위 성직자들, 대주교들과 주교들이 우리 수도회에 들어오고, 또 프랑스의 왕과 영국의 왕이 우리 수도회에 들어왔다고 전한다 해도, 그런 것들이 참된 기쁨이 되지 않는다고 기록해 놓으십시오. 마찬가지로 나의 형제들이 비신자(非信者)들에게 가서 그들 모두가 신앙을 갖게 하였고, 또한 내가 병든 이들을 고쳐 주고 많은 기적들을 행할 수 있는 큰 은총을 하느님으로부터 받았다고 전한다 해도 나는 형제에게 말합니다. 이 모든 것들 안에는 참된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면 참된 기쁨이란 어떤 것입니까?”

 

내가 페루자에서 돌아오는데 이곳에 밤이 깊어 도착합니다. 때는 겨울이고 진흙길이며 몹시 추워, 나의 수도복 자락에 젖은 찬물이 얼어 고드름이 되고, 그 고드름이 자꾸 다리를 때려, 다리의 상처에서 피가 나옵니다. 그리고 내가 추위에 떨면서 진흙과 얼음에 뒤범벅이 되어 문에 다가가서, 오랫동안 문을 두드리고 부르기를 수차례 한 다음에야, 형제 하나가 나와서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묻습니다. 나는 프란치스코 형제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는 썩 물러가거라. 지금은 돌아다니는 시간이 아니니, 들어올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내가 다시 애걸하자, 그는 썩 물러가거라. 어리석고 무식한 것아, 두 번 다시 우리에게 오지 말아라. 우리는 이제 사람들도 많고 훌륭한 사람들도 많으니, 너는 필요 없어!’라고 대답합니다. 나는 또다시 문 앞에 서서 하느님의 사랑으로 오늘 밤만이라도 저를 받아 주십시오!’ 하고 애걸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럴 수 없어! 십자가 수도회로 가서 부탁해 봐!’라고 대답합니다. 이러한 경우 만약 내가 인내를 가지고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는다면, 바로 여기에 참된 기쁨이 있고 또한 참된 덕도 영혼의 구원도 있다고 나는 형제에게 말합니다.”

(《아씨시 프란치스코와 클라라의 글》, 프란치스코 출판사, 302-303)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바라본 이, 하느님의 사랑 안에 온전히 머무르는 이, 그 사랑에 자신을 온전히 바친 이에게 세상의 어떤 일도 더 이상 어려움이나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을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하느님을 근본적으로 신뢰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삶은 그분을 닮아 참되고 완전한 기쁨으로 가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일어나 함께 기도합시다. 성가를 부르며 찬미 기도를 바쳐도 좋고, 묵주 기도도 좋습니다. 그저 주님!’이라고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단순한 기도도 좋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해도 좋습니다. 성체 앞에 머무르며 기도해도 좋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며 하느님을 찬미해도 좋습니다. 그 기도가 깊어질수록, 그렇게 하느님을 알아갈수록, 그렇게 우리의 기쁨이 커질수록, 우리를 괴롭히던 스트레스가 더 이상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물론 신앙은 긴 여정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지금 당장 내 마음을 짓누르던 스트레스가 달아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가 그 여정을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참되고 완전한 기쁨이 마음을 채우리라고. 그러니 우리 함께, 그 길을 걸어갑시다.

 

지금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갑시다,

하느님의 사랑을 향해서.

 
Profile
대전교구 사제. 독일에서 카리타스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생을 양성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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