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묵주 기도, 순례자의 나침반> 시리즈의 아티클로, '고통의 신비, 사랑을 선포하는 고통'과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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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여정 가이드
성모님과 함께 떠나는 이 순례는 마지막 여정을 남겨 놓았습니다.
하느님께서 가장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예수님의 공생활을 통해서 당신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드러내 보여 주셨으며 수난과 죽음을 통해 당신의 완전한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예수님의 여정은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분께는 영광의 여정이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에 예수님을 통해 하늘에서 보여졌던 ‘하느님의 영광(사도 7,55)’이 우리가 살아가는 땅에서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셨던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그 영광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것은 바로 희망으로, 우리가 함께 걸을 마지막 여정은 ‘희망을 찾는 순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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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오십니다. 예수님의 순례는 고통이 아닌 영광의 길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이는 바로 희망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아간다면, 예수님처럼 사랑을 위해 고통을 인내하고 죽음을 기꺼이 선택한다면 하느님의 그 영광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성모님처럼 예수님을 따라 하느님의 뜻을 간직하고 순종한다면 그분처럼 하느님의 영광을 받을 것이라는 희망입니다.
희망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중에 ‘티그바(תִּקְוָה)’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줄’, ‘밧줄’이라는 어원을 가진 단어입니다. 여호수아는 예리코를 정탐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보냈을 때 창녀 라합이 이들을 자기 집에 숨겨 주고 추격대를 따돌리고 그들을 창문으로 밧줄을 늘어뜨려 구해 줍니다. 이들은 라합의 집에 진홍색 실로 된 줄을 매달아 나중에 도시를 점령한 이스라엘이 그녀를 해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여호 2,18.21 참조).
희망은 끈으로 연결되고 표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성모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려는 끈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는 것, 그래서 언제나 고민하고 번민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희망일 것입니다.
또한 희망은 신뢰와 믿음입니다. 우리의 삶이 고통과 아픔으로 가득하다면 절망만이 남습니다. 하지만 성모님께서는 언제나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을 알고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고통 안에서 하느님의 뜻과 은총이 언제나 존재함을 잊지 않으셨고, 그로 인해 희망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처럼 성모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굳은 믿음과 신뢰, 사랑을 통해 아들의 십자가 죽음에 동행하셨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님을, 죽음 너머 부활이 기다림을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희망은 미래의 어떤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희망은 지금 여기에서 체험하고 살아가는 오늘인 것입니다. 오늘을 바라보기 위해 희망의 순례, 예수님과 성모님의 영광의 여정을 떠나 봅시다.
부활, 희망을 찾아서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십자가 죽음을 뚫고 ‘임마누엘(마태 1,23)’이라는 자신의 이름처럼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겠다는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부활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울면서 무덤을 찾은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 앞에서 예수님을 만나지만(요한 20,11-18 참조), 그녀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정원지기로 착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도 나타나십니다(루카 24,13-35 참조). 하지만 그들도 예수님을 길을 지나가는 나그네로 바라봅니다.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일곱 제자에게도 예수님께서 나타나십니다(요한 21,1-14 참조). 하지만 그들도 물가에 서 있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공생활을 함께 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부활하셨다는 소식도, 함께 있겠다는 약속도 희미해졌습니다. 때로는 두려움 때문에, 가끔은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과 절망감 때문에, 현실에 먹고 살 것을 걱정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불러주시는 예수님의 목소리에, 예수님과 함께 했던 가장 아름다운 만찬의 기억을 떠올릴 때, 자신들이 할 수 없는 일이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섭리와 기적을 느낄 때 그들은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성경의 어디 부분에서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성모님께 발현하셨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어쩌면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죽음의 순간부터 믿고 계셨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그 믿음이 두려움도, 절망과 상실, 슬픔과 그리움을 다 상쇄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모님은 부활하여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바로 알아보셨을 겁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그 앞에 엎드려 기쁨의, 그리고 사랑의 눈물을 흘리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성모님의 모든 삶 속에 예수님께서 계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의 삶 속에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자신 안에 갇혀 있기에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그렇게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여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승천, 하늘을 향하여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떠나십니다. 인간을 사랑해서 지상으로 오셨지만 이제 그 사랑 때문에 다시 하늘로 올라가십니다. 떠나보낼 줄 아는 자만이 떠나갈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몫을 챙겨서 떠나가는 아들을 아버지께서는 아무 말 없이 떠나보냅니다(루카 15,11-32 참조). 아버지께로 떠남과 떠나보냄은 하나로 만납니다.
누군가는 떠났지만 자유롭지 못하고 떠나보내는 마음을 가지지 못합니다. 자신에게 얽매여 자유롭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떠나십니다. 우리도 떠날 수 있게, 우리도 누군가를 떠나보낼 수 있게, 그래서 자신을 내려놓지 못하고 놔주지 못하는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늘로 오르십니다. 하늘은 예수님 순례의 종착지입니다.
하늘은 하느님의 영역입니다. 하느님께서 계신 곳입니다. 우리의 꿈과 동경이 있는 곳입니다. 그곳으로 예수님께서는 오르십니다. 하느님을 체험하게 하는 하늘은 우리로 하여금 더 높고, 더 넓게, 더 멀리 바라보게 합니다. 지금의 우리를, 지금의 삶을 더 고상하고, 더 심오하고, 더 관대하게 바라보게 합니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는 하늘이 아닌 서로를 마주 보는 세상 속에 하늘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성모님도 떠나실 줄 수도, 떠나보내실 수도 있는 분이셨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에서 하느님께 순종하셨고, 사랑하는 아들을 세상으로, 십자가 죽음으로 아들을 떠나보내셨습니다. 그 순종과 믿음을 보고 하느님께서는 성모님을 죽음에 머물게 하지 않으시고 하늘로 불러 올려 주셨습니다. 우리도 성모님과 같은 믿음과 사랑으로 당신께로 오를 수 있게 말입니다.
승천하시는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과 같은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이는 유일한 특권으로, 죽은 이들의 부활 때에 모든 의인을 위하여 마련된 운명을 앞서 누리셨던 것입니다. 영광을 바라보는 이 여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마침내 천사들과 성인들의 모후로서 빛나는 영광의 관을 쓰신 성모님께서는 교회가 종말에 누리게 될 지위를 미리 보여 주시고 성취하십니다.
성령 강림, 다시 태어나는 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떠나시면서 성령을 보내 주십니다. 자신의 떠남이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임을 우리에게 성령을 통해 알려 주십니다. 하늘로 떠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마지막 당부 말씀을 합니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
증인으로 살아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에도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다락방에 숨어서 기도만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령 강림(사도 2,1-13)은 삶을 완전히 바꿉니다. 제자들은 성전에서 설교를 하고, 병자를 고쳐 주고, 유다의 지도자들 앞에서 열정적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증언하고 선포합니다.
이렇듯 성령은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우리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새로 태어나게 합니다. 두려움을 용기로, 무지에서 깨달음으로, 시기와 질투의 삶에서 용서와 희생의 삶으로, 미움이 아닌 사랑으로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바뀝니다. 세상이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세상을 살아가는 나의 태도가 변화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변화합니다. 그러한 성령 강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베드로의 증언에서도(사도 4,8), 공동체가 함께 기도할 때에도(사도 4,30), 스테파노의 죽음에서도(사도 7,55),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될 때에도(사도 8,17.28), 바오로가 선교 여행을 할 때에도(13,2.4.9; 16,6-7) 성령은 언제나 교회의 삶 속에 함께하십니다. 그렇게 우리는 매 순간 성령을 느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언제나 새롭게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순례를 마치며
묵주 기도는 예수님의 삶을 따라 걷는 순례의 기도입니다. 나 혼자만의 순례가 아닌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을 바라보며 걷는 순례입니다.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그리스도를 배우고 그리스도를 닮고 그리스도께 기도하고 마지막으로 그리스도를 선포하기 위한 순례입니다. 묵주 알을 하나씩 돌릴 때마다 우리는 한 발짝씩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그렇게 우리의 삶의 여정을 함께 걸었으면 합니다. 우리의 이 순례를 마치며 ‘성모찬송(Salve Regina)’을 바칩니다.
모후이시며 사랑이 넘친 어머니
우리의 생명, 기쁨, 희망이시여,
당신 우러러 하와의 그 자손들이
눈물을 흘리며 부르짖나이다.
슬픔의 골짜기에서.
우리들의 보호자 성모님,
불쌍한 저희를
인자로운 눈으로 굽어보소서.
귀양살이 끝날 때에
당신의 아들 우리 주 예수님 뵙게 하소서.
너그러우시고, 자애로우시며
오! 아름다우신 동정 마리아님.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기도합시다.
하느님, 외아드님께서 삶과 죽음과 부활로 저희에게 영원한 구원을 마련해 주셨나이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함께 이 신비를 묵상하며
묵주 기도를 바치오니
저희가 그 가르침을 따라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