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님을 유심히 한 번 보면, 미사 중간중간마다 혼자 조용히 뭔가를 중얼거릴 때가 있다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제의 변론 기도(apologiae sacerdotis)’라고 하는 이 기도들은 성찬례를 집전하는 사제가 개인을 위해 혼자서 바치는 기도입니다. 개인적인 기도이기에 큰 목소리가 아니라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submissa voce) 바칩니다.
공적이고 공동체적인 성격을 지닌 성찬례에 사적인 성격을 지닌 변론 기도들은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초기 교회 시절에 봉헌되던 미사에는 변론 기도들이 없었습니다. 즉, 이 기도들은 처음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라, 전례의 역사 안에서 미사 안에 유입된 것입니다. 그 시작은 중세 시대인 9세기, 알프스산맥 넘어 지금의 프랑스와 스위스, 오스트리아가 있는 갈리아 지역이었습니다.
사제는 스스로 부당한 사람으로 여겨야 하기에 이 성찬례를 거행하기에 합당하지 않으나, 거룩한 신비 앞에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그분의 자비를 청해야 한다는 중세 시대 참회에 관한 신학과 사고방식이 변론 기도들을 탄생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이러한 생각들이 발전되고, 그에 따라 미사에 삽입되는 변론 기도들의 수가 증가하기 시작했지요.
10세기에서 11세기까지 그 수가 대폭 늘어, 전례 행위의 시작 그리고 매 순간마다 사제는 길고 많은 기도를 바쳐야 했습니다. 정점에 이르면 그 후엔 내려가는 일만 남습니다. 이후 변론 기도들의 수도 점점 줄어, 현행 전례의 수와 비슷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현행 전례에서 사용되고 있는 변론 기도를 전부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변론 기도가 되기 위한 조건은 사제가 혼자서 조용한 목소리로 바치는 기도여야 하고, 그 기도의 성격은 참회의 성격이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사제가 혼자서 조용히 바치는 기도
먼저 복음을 봉독하기 전에 사제는 이렇게 혼자 속으로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제 마음과 입술을 깨끗하게 하시어 합당하게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게 하소서.”
그리고 복음 봉독을 마치면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이 복음의 말씀으로 저희 죄를 씻어 주소서.”
성찬 전례가 시작되고 나서는 성작에 포도주를 붓고 물을 조금 따르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이 물과 술이 하나 되듯이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저희도 참여하게 하소서.”
성작을 성체포 위에 내려놓으면서는, 허리를 굽히고 속으로 기도합니다.
“주 하느님, 진심으로 뉘우치는 저희를 굽어보시어 오늘 저희가 바치는 이 제사를 너그러이 받아들이소서.”
손을 씻으면서도 기도를 바칩니다.
“주님,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잘못을 깨끗이 없애 주소서.”
평화의 인사를 나눈 뒤, 성체를 쪼갠 다음 작은 조각을 떼어 성작 안에 넣으면서는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여기 하나 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이를 받아 모시는 저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되게 하소서.”
영성체를 하기 전, 그러니까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을 하기 전에 사제는 다음 두 기도문 중에 하나를 조용히 바칩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주님께서는 성부의 뜻에 따라 성령의 힘으로 죽음을 통하여 세상에 생명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이 지극히 거룩한 몸과 피로 모든 죄와 온갖 악에서 저를 구하소서. 그리고 언제나 계명을 지키며 주님을 결코 떠나지 말게 하소서.”
또는 이 기도를 바칠 수도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심이
제게 심판과 책벌이 되지 않게 하시고
제 영혼과 육신을 자비로이 낫게 하시며 지켜 주소서.”
성체와 성혈을 경건히 모시기 직전에는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저를 지켜 주시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피는 저를 지켜 주시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교우들의 영성체가 끝나고 성반과 성작을 닦으면서 사제는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주님, 저희가 모신 성체를 깨끗한 마음으로 받들게 하시고 현세의 이 선물이 영원한 생명의 약이 되게 하소서.”
때로는 공동체와 함께하는 기도
사제가 혼자 속으로 바치는 변론 기도인데, 때에 따라 공동체를 대표해서 바치는 공적인 기도가 될 수도 있는 하이브리드(?) 같은 기도문도 있습니다. 성찬 전례가 시작되면서, 빵이 담긴 성반과 포도주와 물이 담긴 성작을 성체포 위에 조금 들고 바치는 기도입니다. 《미사 통상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지시합니다. 빵에 관한 기도 부분입니다.
사제는 제대에 가서 빵이 담긴 성반을 두 손으로 제대 위에 조금 높이 받쳐 들고 조용히 기도한다.
+ 온 누리의 주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주님의 너그러우신 은혜로
저희가 땅을 일구어 얻은 이 빵을 주님께 바치오니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하소서.
사제는 빵이 담긴 성반을 성체포 위에 내려놓는다.
봉헌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면 사제는 이 기도를 큰 목소리로 바칠 수 있다.
그 끝에 교우들은 환호할 수 있다.
◎ 하느님, 길이 찬미받으소서.
봉헌 성가를 부른다면, 원래의 모습대로 이 기도는 사제 혼자 조용히 바치는 기도입니다. 기도문 아래 예규(rubrica, 붉은 글씨의 지시문)를 보면, 봉헌 성가를 부르지 않을 때에는 큰 목소리로 바치면서 교우들의 환호가 함께하는 공동체적인 기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규가 “큰 목소리로 ‘바칠 수 있다(licet proferre).’”라고 지시하기 때문에, 봉헌 성가를 부르지 않을 때도 사제는 이 기도를 혼자 조용히 바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시 변론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집전자의 인격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성체성사에서 사제는 자신의 부당함, 부족함을 고백합니다(《전례 헌장》 7항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생전에 “저와 우리 모두는 하느님 앞에서 죄인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죄인들의 공동체에 우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체를 모십니다. 사제는 그 미사에서 성체를 모시는 첫 사람입니다. 사제가 성체를 모심으로써 죄를 용서받아 깨끗해지고, 그 깨끗해진 이가 이제 다른 죄인들에게 성체를 모시게 해 줌으로써 그들도 깨끗해집니다. 죄의 용서와 구원은 영성체에서 그 완벽한 실재를 발견합니다. 영성체는 세례받은 죄인의 회개 여정의 정점이기 때문입니다.
부당함과 부족함을 고백하는 변론 기도. 특히 영성체를 하기 전에 바치는 두 기도문은 교우분들도 영성체를 하기 전에 개인적으로 바치면 참 좋은 기도문입니다. 회개의 여정을 마치고 새로 태어난 우리가 부활 시기를 보내는 요즘, 그 정점에 이르는 영성체를 하기 전에 바쳐 보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계명을 지키며 주님을 결코 떠나지 말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