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향기로 뒤덮일 때까지

성경 이야기

슬픔이 향기로 뒤덮일 때까지

그가 그분을 만난 뒤로 - 라자로의 누이 마리아(에필로그)

<주님을 만난 이들: 요한 복음 속 이야기> 시리즈의 아티클로, 이 글은 "스승님께서 오셨는데 너를 부르신다."에서 이어집니다. 

 


 

요즘 워낙 그리스어를 쓰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나를 마리아로 부르는 이들이 많아졌지만, 너희도 잘 알다시피 내 이름은 원래 미르얌이란다. 모세가 광야에서 바위를 쳐서 물을 솟게 만든 카데스, 그곳에 묻힌 사람의 이름이지(민수 20,1).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실제로 바위 같은 사람이란다. 동분서주하는 것보다 사색에 잠기고 책 읽는 것을 더 좋아했지.

 

그러고 보니 마르타 언니는 모세 같은 사람이구나. 언니는 활발한 성격으로 사람들을 잘 통솔했어. 언니는 나를 보고 답답해하기도 했지만, 나를 괴롭히는 친구들을 혼쭐내 주기도 하면서 나를 지켜 주었지.

 

언니는 집안일을 잘 돕지 못하는 내게 핀잔을 주기도 했단다. 그런데 나는 불만이 없었어. 내가 일을 돕는다고 나섰다가 접시를 깬 적도 잦아서, 오히려 내 몫까지 언니가 했다는 생각에 고마움과 미안함뿐이었어. 하지만 내가 언니에게 신세만 지고 살지는 않았단다. 평소 상상력이 풍부했던 나는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언니가 생각하지 못한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으니까. 물론 항상 도움이 되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오늘 너희가 인사드리러 가는 라자로 오빠는 성격이 다른 우리 두 자매 사이에서 훌륭한 중개자였단다. 두 자매 사이에서 여간 쉽지 않았을 텐데, 오빠의 몫을 잘 해냈었지.

 

라자로 오빠는 매우 건강한 사람이었어. 이름 모를 병에 걸려서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기 전까지는 말이야. 언니는 바쁘게 의사를 찾아다녔지만, 오빠의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염없이 우는 것밖에 없었단다. 그런데 예수님이라면 오빠를 낫게 해 주실 수 있다는 생각이 번쩍 들더구나. 그래서 나는 언니에게 말했지.

 

언니, 혹시 예수님이라면…… 오빠를 고쳐 주실 수 있지 않을까?”

 

언니는 깜짝 놀랐지만 얼른 나에게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라고 하였지. 그렇게 우리는 우리를 찾아오신 그분 덕분에 이미 죽었던 오빠를 다시 볼 수 있었단다. 아직까지 그때를 생각하면 꿈만 같구나. 붕대에 감겨 걸어 나오는 오빠를 보며 너무 놀라 어안이 벙벙했던 사람들의 표정이 얼마나 생생했던지.

 

며칠이 지나고 오빠를 다시 선물해 주신 그분께서 우리 집에 찾아오신다는 소식이 들렸어. 언니와 함께 나는 잔치를 준비하기 위해 아침 일찍 시장에 나갔어. 언니는 훌륭한 잔치를 위해 오랫동안 고민했고, 최대한 신선한 재료를 사기 위해 시장을 몇 시간 동안 분주히 돌아다녔단다.

 

언니가 장을 볼 동안, 나는 갑자기 그분에게 값비싼 나르드 향유를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일렁였단다. 유다인들이 그분을 찾으러 다닌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걱정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지. 그분과 만나는 일이 더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나는 용기를 내어 언니에게 그분께 값비싼 향유를 선물로 드리고 싶다고 얘기했단다. 평소와 달리 언니는 왠지 그날따라 순순히 허락하더구나. 그래서 나는 가장 값비싼 향유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단다.

 

잔칫날이 되어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나는 그분 발치에 엎드려 그분 발에 향유를 부었고, 정성스럽게 닦아 드렸단다. 나는 더 이상 그분을 볼 수 없다는 강한 생각에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단다. 못마땅해하면서 내게 핀잔을 주려는 제자도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그 사람 앞에서 나를 변호해 주셨단다. 그분은 당신이 항상 우리 곁에 있진 않을 것이니, 이 향유를 당신 장례 날을 위해 간직하라고 말씀하셨단다. 그 말씀에 내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왔단다.

 


 

얘들아, 이게 그 향유란다.”

, 정말요 할머니?”

 

손자와 손녀는 이 향유의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 신기해했다. 사실 신기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날 이후 수십 년이 더 지났지만, 지금까지 향료가 조금도 마르지 않고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나는 그분의 장례를 위해 이 향유를 간직했다. 하지만 그분을 위해 이 향유를 쓸 기회를 찾진 못해 지금까지 이 향료를 간직하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 안장되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언니와 함께 그분의 무덤에 찾아갔지만, 이미 무덤은 비워져 있었고 그분을 더는 뵐 수 없었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부활하신 그분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그 뒤였고, 어떤 최고 의회 의원들이 이미 그분의 시신에 향료를 발라 드렸다는 소문을 들은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 뒤였다. 그리하여 나는 이 향료를 기약 없이 간직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그분께서 살려 주신 오빠가 정말로 하느님 품으로 가게 되었을 때, 나는 이제 때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덧 무덤에 다다랐다. 무덤 바위와 그 앞의 모습을 가만히 보았다. 나와 언니는 늙었고 함께 온 사람들도 많이 변했지만, 무덤만큼은 그때 그분을 뵈었을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언니와 나는 아들과 손녀들이 함께 보는 가운데 무덤 문을 열고 오빠를 그때 그 자리에 눕혔다. 나는 천천히 향유를 꺼내 열었다.

 

향유를 오빠의 발에 바르는 순간 그 향이 무덤 안을 가득 채웠다. 그분은 항상 우리 곁에 있진 않을 것이라 말씀하셨다. 나는 차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악취가 진동했던 그날의 무덤은 이제 향기로 가득 찼다.

 
Profile
인천교구 사제. 현재 로마에서 성경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담긴 메시지를 연구하는 것이 제 주된 일이지만, 그것을 넘어 교회 안에는 세속에서 찾을 수 없는 사랑과 배려가 존재한다는 것을 가능한, 많은 이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다른 분들이 함께 본 콘텐츠

시리즈14개의 아티클

주님을 만난 이들: 요한 복음 속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