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빛으로 오신 밤

가톨릭 예술

세상의 빛으로 오신 밤

구유에서 시작되는 성탄의 신비

2025. 12. 24
읽음 72

5

5

 

성탄절이 다가오면 대부분의 성당에서는 구유를 마련하고, 구유 축성 예식으로 성탄의 시작을 알린다. 신학생 시절, 겨울 방학을 맞이해 본당에 오면, 매년 구유를 만드는 일을 맡았다. 매년 어떤 모양의 구유를 만들어야 할지 항상 고민이었다. 자칫 주임 신부님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바탕 혼이 날 것이 뻔하니 긴장을 늦을 수 없었다. 그래서 속으로 내가 주임 신부가 되면 구유를 없애든지, 그냥 사서 놓게 해야지!’ 하고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한옥 모양의 구유로 해 볼까? 아님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하며 고민하다가 시간을 늦출 수 없어 밤늦게까지 만들었지만 결국 초라한 모습의 구유가 탄생하곤 했다.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생각에 나무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짚을 덮어 초가집을 제작했지만, 돌아오는 말은 올해 또 이거냐?” 하는 신부님의 말씀뿐이었다. 신학생이라면 누구나 겪는 매년 돌아오는 고난의 시기였다. 이때쯤이면 구유를 처음 만드신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사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고자 처음 구유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매년 성탄 때가 되면 아시시에서는 구유 축제가 열리는데, 호기심과 기대에 부풀어 축제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아시시의 뒷산은 정상까지 거대한 크기의 트리로 장식되고,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앞 잔디밭에는 커다란 구유가 전시되어 있었다. 아시시 아랫동네의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대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degli Angeli: 천사들의 모후 대성당)에서는 전 세계에서 기증받은 구유 전시회와 함께 각종 행사가 개최된다.

 

이처럼 성탄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것이 구유다. 구유는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그 순간을 담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예수님의 탄생 장면을 담은 그림을 함께 보고자 한다.

 


 

성탄

헤르트헨, 1490, 목판에 유채, 34×25.3cm, 내셔널 갤러리, 런던, 영국

 

헤르트헨의 작품

 

오늘 살펴볼 그림은 북유럽 네덜란드 최고의 화가 헤르트헨(Geertgen tot Sint Jans, 1465년경~1495년경)이 그린 작품이다. 그의 성 ‘tot Sint Jans’는 수도회 이름에서 유래했으며 성 요한에게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천재적인 화가였던 그는 다른 천재들이 요절한 것처럼 약 28~30세의 젊은 나이에 12~16점의 작품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이 그림은 1490년경 그린 작품으로 <성탄> 혹은 <성탄절 밤>이라는 제목의 유화 그림이다. 참나무에 유채로 그린 패널 그림으로, 네 면이 모두 잘려 있다. 아마도 개인적으로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며, 작은 크기라는 점에서 이 시기 이후의 북유럽 그림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비록 크기는 작지만, 구유 안에서 빛을 발산하는 예수님을 둘러싼 성모님과 천사의 모습은 거룩하고 신비한 느낌을 준다. 이 그림은 마구간으로 보이는 예수님의 탄생 장면에 천사들이 함께하고, 그중 한 천사는 그림 중앙의 뒤로 보이는 언덕에 있는 목자들에게 주님의 탄생을 알려 주고 있다.

 

사실 성경에서 예수님 탄생과 관련해서는 루카 복음 2에 짧게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루카 2,6-7)

 

사실 예수님의 탄생에 관해서는 초기부터 많은 신학적 배경과 서적들이 그림이나 조각품과 같은 작품에 큰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어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성모님은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되면서 예수님 탄생 장면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외경인 야고보 복음서에 따르면 살로메라는 산파도 등장하기도 하며 황금 전설과 같은 많은 전승과 서적들은 예수님께서 베들레헴 근처의 한 동굴에서 태어나셨다고 전한다. 그러나 유목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은 천막을 치고 겉옷을 깔고 잠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여관을 잡지 못한 마리아와 요셉도 이와 같이 근처 동굴과 같은 곳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후 다양한 전승과 요소들이 합쳐져 오늘날의 외양간 안의 구유 모습이 탄생했다.

 


 

세상의 빛, 아기 예수님의 탄생

 

많은 이들은 이 그림이 스웨덴의 비르지타 성녀(1303?~1373)의 환시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추정한다. 비르지타 성녀는 예수님 탄생에 대한 세 가지 환시를 본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고통 없이 탄생하셨고, 아름다운 금발의 처녀 마리아가 구유 앞에서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아 예수님께 경배를 드렸으며, 요셉이 켜둔 촛불이 아기 예수님께서 발산하는 빛에 가려 그 빛을 잃었다는 환시이다.

 

둘째는 구세주의 탄생을 알리기 위해 천사들이 별똥별처럼 나타났고, 천사들을 본 목자들이 눈부셔했다는 환시이다.

 

셋째는 구유에 누워 계신 세상의 빛을 바라보는 황소와 나귀,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 아기 천사들의 경이에 찬 시선을 보았다는 환시이다.

 

이 작품은 환시의 내용을 활용하여 세상의 빛과 예수님의 탄생을 연결한다. 뿐만 아니라 복음서에서도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9)라고 선포한다. 따라서 빛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낮보다 밤이 좋을 것이기에, 헤르트헨을 비롯해 많은 화가가 밤 시간대를 선호했다.

 

동시에 복음서 안에서 가장 비천한 곳이자 목자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탄생이 알려졌기에, 작가는 마구간을 장소로 정하고 정면에는 소와 말을 배치했다. 그리고 저 먼 산 위에서는 불을 피우며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을 표현했다. 자세히 보면 무릎을 꿇고 천사의 아룀을 경청하는 목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빛과 어둠의 극적인 대조를 통해 예수님에게서 발산하는 빛을 강조하고자 했다. 아기 예수님의 몸은 단순히 밝은 모습이 아니라 통상적인 후광 대신 모든 이를 밝게 비추는 빛 그 자체로 표현되었으며, 심지어 몸에서 발산하는 빛을 얇은 선으로 그려 넣었다.

 

천사들은 놀라거나 평안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놀라움에 손을 들기도 하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반면 성모님께서는 그 빛을 모두 흡수할 듯 밝고 평안한 얼굴로 아기 예수님을 바라본다. 또한 그분께서는 손을 삼각형 모양으로 만들어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를 고백하고 있다.

 

성모님께 가려진 오른쪽에 있는 요셉에게는 빛이 닿지 않는다. 이는 성모 신심에 가려진 요셉과도 연결될 수 있다. 소와 말이 구유 가까이 있음에도 빛나지 않는 것과도 비교해 볼 수 있다. 이는 요셉 성인을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아니라, 많은 화가들이 다양한 색의 옷을 통해 성모님께 사랑, 겸손, 영광, 고통과 같은 상징을 부여한 것과는 달리 오히려 여기서는 요셉 성인이 뒤에서 두 손을 모아 자기 자신을 낮춤으로써 성모님께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함임을 알 수 있다.

 


 

성탄, 주님께서 오신 날

 

이 그림에서는 아기 예수님께 실오라기 한 가닥도 입히지 않았는데, 이는 몸 전체에서 발산하는 영광의 빛을 표현하기 위함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옷을 입히고도 가능한 부분이기에 분명히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으신 주님의 모습은 참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신 강생의 신비를 강조하는 동시에 가장 크시고 위대하신 주님께서 작고 낮은 인간으로 오셨다는 것, 그중에서도 가장 약하고 어려운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오셨다는 의미를 드러낸다.

 

이 그림은 계속 볼수록 무언가 새로운 것이 눈에 들어온다. 오랜 시간 동안 찾아보고 바라볼수록 처음과는 다른 어떠한 영감이나 느낌이 선물로 다가옴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성탄은 주님께서 이 세상, 즉 나에게 오신 날이다. 그저 단순한 말이나 행사로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내 주변 혹은 나와 가까운 사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가까운 사람들뿐만 아니라, 나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그중에서도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과 함께할 것을 요청하신다.

 

이 세상은 온갖 힘든 일들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주님의 빛이 그 모든 것을 환하게 비추어 줄 것이다. 이 그림을 통해 많은 선행뿐 아니라 온갖 악함도 드러내 보이실 주님의 뜻을 느껴 보았으면 한다.

 


 

🔗 이 주제가 흥미롭다면, 더 읽어 보기

 

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교황청립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교회문화유산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이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문화예술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교회 문화유산의 보전과 교회 예술의 진흥을 위해 힘쓰며,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한 교회 예술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주력합니다.

다른 분들이 함께 본 콘텐츠

시리즈13개의 아티클

신지철 바오로 신부의 미술을 바라보는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