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교황은 왜 ‘레오’라는 이름을 선택했을까?

신학 칼럼

새 교황은 왜 ‘레오’라는 이름을 선택했을까?

AI와 불안의 시대, 교회가 다시 꺼낸 오래된 질문

2026. 0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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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민이 있다면 추천해요

| 레오 14세 교황이 왜 레오라는 이름을 선택했는지 궁금한 사람

| AI 시대의 인간 존엄과 노동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

| 교회가 왜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지 알고 싶은 사람

 


 

🔎레오 14세 교황이 왜 레오라는 이름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오늘날 AI·노동·인간 존엄의 문제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살펴봅니다. 산업 혁명 시대의 교회가 그랬듯,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교회가 어떤 시선을 제시하는지 함께 생각해 보세요.

 


 

2025421,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하셨습니다. 세상은 큰 슬픔에 잠겼습니다. 교황님의 지난 행적을 돌아보며, 착한 목자로 우리 곁에 계셨던 그 순간들을 추억했죠.

 

동시에 사람들은 교황님의 빈자리를 누가 채울지 궁금해하며, 시선을 시스티나 경당의 굴뚝으로 돌렸습니다. 여러 후보가 거론되었죠. 아시아에서 나온다느니, 아프리카에서 나온다느니, 갖가지 추측이 난무했습니다.

 

새로 선출될 교황님이 어떤 이름을 택할지도 관심사 중 하나였습니다. 프란치스코 2, 요한 바오로 3, 베네딕토 17세 등 사람들은 그럴듯한 여러 이름을 거론하며 새 교황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202558, 시스티나 경당 굴뚝 위로 흰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새 교황님이 선출되었죠. 주인공은 미국에서 태어난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Robert Francis Prevost)추기경님이었고, 그분은 스스로 레오 14라는 이름을 선택했습니다.

 

환호작약(歡呼雀躍)하며 사람들은 당연한 질문을 던집니다. , ‘레오일까?”

 

사람들의 궁금함을 잘 안다는 듯, 교황님은 당신이 그 이름을 택한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셨습니다.

 

아버지의 자비하신 얼굴은 사람이 되신 아드님 안에서, 곧 진리와 정의, 평화와 형제애를 성실하게 추구하는 모든 이의 궁극적 희망이신 분 안에서 계시되었고 또 계속 계시되고 있습니다. 저는 바로 이 길을 이어가도록 부름받았음을 느끼면서 레오 14세라는 이름을 선택하였습니다.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그 주된 이유는 레오 13세 교황님께서 역사적인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를 통하여 제1차 산업 혁명의 상황에서 사회 문제를 다루셨기 때문입니다.

─ 추기경단에게 하신 연설, 2025510

 


 

레오와 레오, 산업 혁명 시대와 AI 시대를 잇는 두 교황

 

이처럼 레오 14세 교황님은 레오 13세 교황님이 그러하셨듯이 적극적으로 사회 문제를 다루고자 하십니다. 레오 13세 교황님이 살던 시대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가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일까요?

 

레오 13세 교황님은 1878년부터 1903년까지 재임하셨습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산업 혁명이 혁신을 불러옴과 동시에 여러 문제를 야기하던 바로 그 시절입니다. 당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자본과 노동의 갈등이었습니다. 전에 없던 그야말로 새로운 사태였죠.

 

수 세기 동안 이어져 오던 사회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해 가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맞서, 교황님은 교회가 어떻게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고민하십니다. 1891년에 반포한 회칙 〈새로운 사태〉는 바로 그러한 고민에 대한 하나의 결론이었죠.

 

레오 13세 교황님은 이 회칙을 통해 사회악에서 비롯된 오류들을 열거하고, 사회주의를 그 치유책으로 삼기를 거부하십니다. 또한 협력의 원칙, 약한 이들의 권리, 가난한 이들의 존엄성, 부유한 이들의 의무, 사랑을 통한 정의의 완성 및 직업별 결사의 권리 등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현대적인 용어로 명확하게 설명하시죠.

 

그렇게 레오 13세 교황님은 산업 혁명에서 비롯된 혼란의 시기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올바른 지침을 제시하시고자 노력하셨습니다. 이러한 선대 교황의 의지를 현 교황인 레오 14세께서 이어받고자 하십니다. 그때의 사회와 지금의 사회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요?

 


 

교회가 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질까?

 

물론 이른바 ‘4차 산업 혁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은, 130여 년 전과 많이 다릅니다. 자동차가 자율 주행을 하는가 하면, AI가 인간의 창작 활동까지 일부 대체하고 있습니다.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기술이 발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통점도 있습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혼란의 시기를 살아갑니다. 어쩌면 그때보다 더 심할지도 모릅니다. 자본과 노동의 갈등은 그래도 사람과 사람의 문제였는데, 현재는 사람이 자동화된 기술과 일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오늘 배운 기술이 당장 몇 년 후면 쓸모없는 구시대의 유산이 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나의 존재가, 나의 가치가 흔들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21세기의 새로운 사태를 레오 14세 교황님은 결코 묵과하려 하지 않으십니다. 레오 13세 교황님이 그러하셨듯이 혼란 속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진리에 뿌리를 둔 삶의 지침을 주고자 하십니다.

 

이러한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노력은, 하지만 레오라는 이름을 가진 두 교황님만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다른 교황님들 역시 사회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하느님의 정의를 이야기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레오 14세 교황님은 다만 그 의지를 더욱 드러내시고자 가톨릭 사회 교리의 출발점이 된 회칙을 발표하신 레오 13세의 이름을 이어받으신 것이지, 그때와 지금의 교회만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교회의 사명

 

교회는 이미 예전부터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 왔습니다. 사람이 교회의 시야에서 벗어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사람이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느님께서 비교할 수 없고 양도할 수 없는 존엄을 부여하신 모든 사람 안에서 하느님의 생생한 모습을 봅니다. 그들에게 가장 뛰어난 봉사를 하고 그들의 드높은 소명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줌으로써 언제나 그 소명을 명심하고 그 소명에 합당한 사람들이 되도록 노력합니다. 교회는 사실 늘 그래왔습니다.

 

혹자는 이야기합니다. 왜 교회가 정치에 관심을 가집니까?’ ‘신부님, 수녀님들이 기도만 하면 되지 왜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옵니까?’ 이러한 물음에 대해 요한 바오로 2세 성인 교황님은 다음과 같이 답하셨습니다.

 

이 인간이 교회가 따라 걸어야 할 길, 교회의 일상생활과 체험, 교회의 사명과 노고를 기울여야 할 길이기 때문에 오늘의 교회는 늘 새로운 방법으로 인간의 상황을 감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교회가 인간의 가능성들을 감지하여 본연의 취지로 돌이키고 또 이를 천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인간에 대한 위협들, ”인간의 생활을 더욱 인간답게 만들고현세 생활의 모든 요소를 인간의 진정한 존엄성에 맞갖게 만들려는 노력에 상반되어 보이는 모든 것을 감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마디로, 그 과정에 상반된 모든 것을 감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 회칙 〈인간의 구원자(Redemptor hominis),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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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수원교구 사제.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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