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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은 부활을 향해 삶의 방향을 다시 세우는 시간입니다. 그 여정은 마음을 들여다보고, 붙들 것과 내려놓을 것을 분별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복음이 전하는 참행복은 십자가를 통과해 비로소 완성됩니다. 그 여정 안에서 우리는 고통을 넘어 사랑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게 돼요. 지금, 우리의 믿음은 그 사랑을 향하고 있을까요? ✟ |
사순 시기는 우리 신앙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그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시기입니다. 사순 시기는 부활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지만, 그 길은 반드시 십자가를 거쳐 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십자가는 늘 우리에게 밝은 희망만을 보여 주지는 않습니다. 때로 자신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의 무게와 고통을 바라볼 때면 내심 두려움과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오늘날 유행을 넘어 일상 깊숙이 자리 잡은 ‘힐링’ 열풍과 맞물려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마음 챙김’, ‘내면 성장’을 위해 종교를 찾습니다. 고통스러운 삶의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찾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가톨릭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에게 단순히 마음의 평화와 행복만을 가르친다면, 이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야말로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걱정 없는 삶이 답일까?
팝송 가사로도 유명한 “돈 워리, 비 해피(Don’t Worry, Be Happy).”라는 말이 있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행복하자.”라는 이 외침은 허겁지겁 쫓기듯 살아가는 일상에서 삶을 낙관하고 인생을 좀 더 여유롭게 즐기라는 의미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걱정 없이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는 삶을 한 번쯤은 꿈꿔 왔을 것이고, 그것이 곧 장수의 비결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에서는 1921년부터 약 90년간 1,500여 명을 추적 관찰한 ‘스탠퍼드 장수 연구’ 프로젝트를 세상에 공개했습니다. 이 연구의 결과는 다소 충격적입니다. 무조건적으로 “걱정하지 말고 행복하게 살자.”는 태도를 가진 사람보다 오히려 어느 정도는 불안과 걱정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장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무엇보다 장수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약속을 잘 지키고 자신이 계획한 일들을 잘 실천하는 성실함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결국 적절한 불안과 걱정은 위험을 빨리 인지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게 만들며, 성실성이 바로 이를 뒷받침하는 힘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역시 거저 얻을 수 있는 행복에 대해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마태오 복음 5장 산상 설교에서 예수님께서는 ‘참행복’이란 마음이 가난하고, 슬퍼하며, 모욕과 박해를 기꺼이 감내하는 가운데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느님 나라’라는 큰 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참행복’의 비결은 바로 우리의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스도 영성 생활의 핵심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한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종교적 믿음을 미신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때로 신앙인들 역시 삶의 시련 앞에서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하곤 합니다. 연약한 우리 인간은 큰 시련과 고통 속에서, 그리고 전쟁과 폭력 앞에서 하늘을 향해 이렇게 외칩니다.
“하느님, 당신께서는 도대체 어디에 계십니까?”
“하느님께서 진짜 계신다면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렇게 우리는 너무나 쉽게 하느님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나약한 인간 본성으로는 하느님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수천 페이지의 책 속에서 단 한 페이지만을 읽고 하느님을 판단하려 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에서 믿음은 하느님 섭리에 겸손하게, 그리고 온전하게 신뢰를 두는 행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지금껏 당신의 선한 창조 활동을 포기한 적이 없으시며, 결코 실패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영성 생활의 핵심은 바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믿음 안에는 우리의 신실함과 성실함이 함께 녹아들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그분의 신실함과 성실함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셨지만, 우리와 똑같은 인간적 고뇌와 고통을 안으신 채 끝까지 순종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뜻을 따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을 온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 십자가는 바로 당신 아드님과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지고지순하신 사랑의 표현이자 사랑의 완성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 우리는 깨닫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고통을 제거해 주시는 분이 아니라, 고통 속으로 함께 들어오시는 분이심을. 그리고 그 고통의 자리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시는 분이심을.
“성실하다 십자 나무 가장 귀한 나무로다
아무 숲도 이런 잎과 이런 꽃을 못 내리니
귀한 나무 귀한 못들 귀한 짐이 달렸도다.”
_ 성무일도 성주간 아침 기도 찬미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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