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사도의 해석
바오로 사도는 인간이 육肉과 영靈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서간에서 여러 번 밝힌다(1코린 5,5.7,34; 2코린 12,2-3 참조). 인간의 지체를 이루고 만질 수 있는 부분, 생물학적인 부분을 몸(σώμα, 소마)이라 지칭했는데, 이 단어는 전체적이고 통일된 복합체인 한 인간을 가리킨다. 즉 살(λίπος)과 피(αίμα)를 지닌 육(Κρέας)을 가진 이는 영(πνευμα)적인 인간과 대비되고, 몸(σώμα)을 지닌 모든 인간은 죄의 지배에 놓여 있다고 본다. 이에 비해 또 다른 자아인 영(πνευμα)적인 인간은 인식력과 의지력을 지니고 하느님의 영을 모시기에 적합한 존재를 의미한다. 바오로 사도는 영적인 인간(Homo Spiritualis)은 성령을 모시고 성령의 영향 안에 사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사람은 자기 뜻보다는 사랑과 덕행을 행하는 존재이다.
“여러분이 육에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로마 8,13)
반대로 육적인 인간은 하느님의 뜻과는 관계없이 이기적이고 탐욕적이고 교만의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변화된 인간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율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다. 그는 율법보다 새 창조를 강조한다.
“사실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새 창조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갈라 6,15)
여기서 새 창조는 인간 세계 안의 새로운 존재 양식을 의미한다. 이는 율법을 지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수난과 희생, 죽음과 부활을 통해 새롭게 창조되어 구원에 이른 존재를 의미한다. 특히 세례로 그리스도교 실존에 참여하고, 교회와 일치하며, 성찬 예식에서 완결되는데 이들은 그리스도의 영으로 변화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무엇보다 자유로운 생활을 누린다. 그리스도께서 율법, 죄,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이 자유가 다른 이에게 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인다(1코린 8-9 참조). 또한 당연하게 그리스도의 영으로 변화된 이들은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하며, 이는 하느님의 뜻이 신자들의 거룩함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느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1테살 4,3)
즉 하느님을 위해 다른 것에서 분리되어 하느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특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는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힘으로 인간의 내적, 외적 활동에 미덕과 덕행이 풍성하게 발현된다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이 새로운 생활은 인간의 모든 생활 범위를 포함한다. 그는 가정에서 부부의 관계에 대해 서로의 의무와 권리를 자세히 규정했다(에페 5,21-33 참조). 이혼 문제와 독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독신에 대해서는 각자 개인의 특성을 고려하여 결정하도록 하고, 일반적으로는 결혼을 강조했다(1코린 7,9). 직업에 대해서는 유용함과 신성함을 강조하며, 각자가 부르심에 따라 성실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정치, 경제, 문화에 대해서도 모든 창조적인 것, 성스러운 것, 사랑이 중시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오로 사도에 의하면 신앙은 들음에서 시작되어 하느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로마 10,17)
이처럼 신앙은 전하고 전해지는 것이다. 하느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지적인 동의에 그치지 않고, 전 생애를 하느님께 송두리째 투신하는 것이다.
신앙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성령이 인간의 정신력에 직접 작용하여 하느님의 이성과 만나 하느님의 목적과 본성, 의도를 분별할 수 있게 한다. 이 모든 것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바를 하느님께 집중시키기 위해 영혼의 상태를 바르게 이루고, 하느님의 뜻에 자신의 행동을 맞추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영성의 목표는 결국 하느님이지만, 인간 상호적 관계를 무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웃 사랑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함께한다고 본다. 바오로 사도는 특별히 전례 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사 전례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다시 재현되며 실행되는 영적인 활동의 정점에 있다고 본다.
성찬식을 통해 접하게 되는 그리스도의 성체는 실제적인 그리스도의 몸을 의미한다. 우리는 상징적이 아니라 실제적인 그리스도의 몸과 하나가 되는 구원의 현장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성찬식으로 그리스도와 신자뿐 아니라 신자와 신자도 일치된다. 성찬 예식은 그리스도께서 당신 백성의 현존을 구체화시키는 예식적이고 성사적 행위로(1코린 11,27-32 참조),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과 부활에 대한 기념 및 재현, 복음 선포의 집합점이 된다. 또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몸을 교회와 연결시킨다.
영성적인 삶
가톨릭의 영성은 부활의 영성이며, 가톨릭 교회의 역사는 영성의 역사이기도 하다. 바오로 사도의 영성 역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성이며 오늘날의 그리스교 영성을 포괄한다. 특히 그는 성령의 다양한 기능을 언급하며, 교회 공동체가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를 이루는 것을 강조했다(로마 12,3-8 참조), 실제로 그의 활동은 성령의 다채로운 역사를 드러냈다(1코린 12,1-31 참조).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바오로 사도에게 하신 것처럼 성령을 통해 신앙인들이 모두 하나 되기를 소망하며 ‘지금 여기에서’ 인류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신다. 그리스도는 죽음과 부활 사건의 정점에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우리가 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내 생명이 하느님에게 한시적으로 부여받은 것임을 잠시도 잊지 말고 그 한시적 생명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성령의 인도를 받으라고 가르쳐 주신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무엇보다 성령의 은총 속에 자신의 영성을 더욱 굳게 다지고, 삶 안에서 영성의 꽃을 피워야 한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사랑의 법을 잘 받들고 지켜야 한다. 이 사랑의 법은 영적인 인간을 하느님께 인도해 주는 원천이자 길잡이가 되며, 그리스도교 신자의 윤리 행위를 지배하는 본질적인 요소이다. 그리스도인은 죽음까지 자유인으로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 아래서 살아야 한다
(* 김백준, 겨울에 꿈꾸다, 201쪽).
이 모든 것을 잘 보여 주는 사례가 바로 바오로 사도의 삶이다. 그의 삶은 거창하거나 영웅적이지 않지만, 우리의 일상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삶의 태도와 행동, 말에 대한 모범을 보여 준다. 매 순간 우리는 사소한 것부터 인생을 바꾸는 선택의 순간을 맞이한다. 이러한 선택의 기준과 그로 인해 맺는 열매를 깊이 사색하는 것부터 우리의 영성적인 삶은 시작된다. 당연히 선택은 우리의 온전한 자유의지로 이루어져야 하며, 그 결과도 책임을 져야 한다. 바오로 사도의 삶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구원의 문을 활짝 열고 회개하여 돌아오는 죄인을 기다리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사랑의 하느님께서 언제나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는 사실 역시 깨달아야 한다.
<참고 문헌>
1) Joseph. A. Fitzmger.S.J, 정양모 옮김, 《바울로의 신학》, 분도출판사, 1968.
2) A. H. McNeille, 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 1981.
3) E.E. LARKIN, New Catholic Encyclopedia, V.XⅡ, New York, 1966.
4) 마경일, 《바울의 신학사상》, 동아출판사, 1963. (pp. 5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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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귄터 보른캄, 허혁 옮김, 《바울 그의 생애와 사상》, 이대 출판부, 1980.
10) 이덕근, <영성신학 강의록>, 1982.
11) 김백준, 《겨울에 꿈꾸다》, 나남,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