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체중계가 아닌 나침판이 필요하다

성경 이야기

믿음은 체중계가 아닌 나침판이 필요하다

연중 제27주일 | 겨자씨 한 알과 같은 작은 믿음

2025. 10. 04
읽음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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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겨자씨와 같은 믿음이 다른 길을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믿음의 크기가 아닌 방향을 묻는 이 묵상이, 당신의 오늘을 새롭게 열어 줄 것입니다. 이한석 신부님과 함께 이번 주일 복음을 묵상해 봅시다.

 


 

저는 서울에서 누구나 아는 높은 빌딩과 가까운 본당에서 사목을 했었습니다. 그 빌딩은 성당에서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너무나 높아서, 늘어진 그림자로 그 긴 거리를 성큼 삼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건물 근처에서 산책할 때면 감탄하며 고개를 젖히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눈으로 높은 건물을 오르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 꼭대기를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건물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주변의 산과 집, 사람들의 시선과 새가 날아가는 높이를 훌쩍 뛰어넘어 혼자만 뻐기며 서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마치 자신을 닮아 더 높아지라고, 더 크게 성장하여 주변을 압도하라고 윽박지르는 듯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 건물 곁을 지나갈 때면, 오히려 고개를 숙여 제 불편한 마음을 숨겼습니다.

 


 

겨자씨를 닮은 믿음

 

오늘 복음을 들을 때면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더 큰 믿음을 가져라!’라고 들리기 때문입니다. 높은 건물 옆에 섰을 때처럼, 저의 작은 믿음이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이라는 말씀은 보잘것없는 저의 믿음을 꾸짖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 작은 크기의 믿음이 바다에 나무를 심는 일을 했다면, 쌀알만 한 믿음은 얼마나 더 대단한 일을 이루겠냐는 생각이 따라옵니다. 그래서 더 큰 믿음을 가지기 위해 미간에 힘을 주고, 큰 목소리로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간절히 믿고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먼지만큼도 안 되는 나의 믿음을 책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문장을 원어 그대로 보자면, 다르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과 같은 믿음이 있으면이라고 직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겨자씨처럼 작은 믿음이 아니라, 겨자씨와 같은 믿음을 의미합니다. 이 겨자씨를 닮은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루카 복음서 13,19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겨자씨와 같은 믿음은 땅에 심겨 자신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기대하지 못한 나무를 일구는 미천한 시작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가지를 펼쳐 낯선 새를 품는 믿음입니다. 다시 말해 희생하는 믿음, 기대하지 못한 일을 희망하는 믿음입니다. 또한 지나가는 새를 품는 넓은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겨자씨 한 알과 같은 믿음은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 믿음의 방향을 의미합니다. 당신의 일을 이루시는 하느님께 의지하는 딱 맞는 태도인 작은 믿음입니다. 오히려 겨자씨처럼 작아야지만 옳게 드러날 믿음입니다.

 

믿음은 크게 키울 수 없습니다. 그렇게 키울 수 있는 믿음은 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것입니다. 잔뜩 사서 모은 복권처럼, 이루고자 하는 나의 일을 뒷받침할 보증 수표일 뿐입니다. 우리가 가질 믿음은 하느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희생하고 희망하며 나를 넘어서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히려 작은 믿음을 청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이 드러나도록 나를 희생하고, 주님의 일을 희망할 겨자씨 한 알과 닮은 작은 믿음을 바라야 합니다.

 


 

🌸 오늘의 묵상 포인트

 

나의 믿음이 초라하게 느껴져 성당을 멀리한 적이 있나요?

우리는 종종 더 큰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자신의 믿음을 작고 초라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크기가 아니라, 겨자씨처럼 심겨져 드러나는믿음입니다.

 


 

 

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로마 교황청립 성서 대학에서 성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루카 6,20)라는 말씀을 사제 생활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사랑으로 실현하고자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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