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가톨릭 예술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을 묵상하며 삶을 배우는 신앙의 길

2026. 0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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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을 지닌, 아주 오래되고 유명한 격언입니다. 고대 로마 사람들은 이 말을 중요한 지혜의 원천으로 삼았습니다. 특히 스토아 철학자들은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삶을 사는 비결이라고 여겼지요. 세네카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같은 철학자들은 저술 곳곳에서 죽음을 의식할수록 역설적으로 삶에 더 충실해진다고 강조했습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가르침은 성경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 3,19)

 

이 구절은 인간 존재의 유한함을 일깨웁니다. 또한

 

 저희의 날수를 셀 줄 알도록 가르치소서.”(시편 90,12)

 

라는 기도는 유한성을 통해 지혜를 배우게 합니다. 교회의 교부들 역시 이 전통을 이어받았는데, 특히 사막 교부들은 날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묵상하며 살아갔습니다. 그들에게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삶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나침반이었습니다.

 


 

중세 수도자들의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라는 이름의 영적 훈련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중세 수도원에서부터입니다. 당시 수도자들은 해골을 방 한쪽에 두고 기도하거나, 묘지에 머무르며 죽음을 묵상했습니다. 그들의 삶은 죽음을 기억하는 훈련과 함께 흘러갔습니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의 성화에는 책상 위에 해골을 두고 기도하는 성인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는 무언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실제 수도자들이 행했던 기도의 방식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과 관련해서도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육신의 욕정이 너무 강하게 일어날 때, 그 욕정을 잠재우기 위해 차가운 눈밭을 뒹굴거나 가시덤불 속에 몸을 던졌다고 합니다. 공동묘지에 가서 자주 기도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행위는 단순한 극기가 아니라, 죽음을 묵상함으로써 삶의 중심을 온전히 하느님께 두려는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남미 선교사의 메멘토 모리

 

우리 일상에서도 죽음을 접할 기회는 생각보다 많습니다. 친척이나 지인의 부고 소식을 들을 때 죽음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저 역시 사제로 살아가며 죽음을 자주 접합니다. 전문 장례 지도사만큼은 아니지만 보통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자주 죽음을 가까이에서 마주합니다.

 

특히 남미 볼리비아에서 7년간 선교사로 지냈던 시절에는 선교를 하러 간 것인지 장례를 치르러 간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많은 장례를 집전했습니다. 일주일에 적어도 한두 번은 장례가 있었고, 어떤 날은 하루에 두세 번 장례를 치러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인구의 80%가 가톨릭 신자인 나라에서, 10만 명이 사는 도시의 유일한 성당을 맡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평소 성당에 나오지 않던 이들이 장례를 계기로 처음 성당에 오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선교 초창기에는 그런 상황이 솔직히 탐탁지 않았습니다. 스페인어도 아직 서툴고, 현지 문화에도 적응하지 못한 탓에, 모든 것이 불편하게 다가왔던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돌이켜보면 장례 미사 강론 때, “죽어서 하느님을 찾지 말고 살아 있을 때 하느님을 찾으라.”는 다소 교훈적인 이야기를 자주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가짐이 달라졌고, 현지 상황과 문화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때라도 성당을 찾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오히려 좋은 선교의 기회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가족이나 가까운 이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영적으로 가장 예민해집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 쏟아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영혼이 흔들리는 순간에 냉담하던 이들이 고해성사로 신앙을 회복하기도 하고, 신앙이 없던 이들이 새롭게 믿음을 받아들이는 일도 벌어집니다. 망자는 늘 우리에게 같은 메시지를 남깁니다.

 

, 계속 그렇게 살겠니? 결국 이렇게 될 텐데.”

 

제가 겪은 죽음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젊은 어머니가 울며 성당에 와서는 작은 상자를 내밀며 성수를 뿌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물건이길래 그렇게 서럽게 우는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상자를 열어 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 안에는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숨을 거둔 작은 태아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토록 많은 죽음을 곁에서 보았지만, 아마도 제가 평생 다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은 바로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매주 토요일이면 저는 또 다른 부모들의 환한 미소를 보며 새로 태어난 아기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볼리비아에서 보낸 7년은 이렇게 삶과 죽음이 교차하고, 기쁨과 슬픔이 함께 춤추던 시간이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 모든 순간이 제게는 곧 메멘토 모리의 훈련이었습니다.

 


 

수녀님의 메멘토 모리

 

몇 해 전, 음악으로 사도직을 하는 한 수녀님께 연락을 받았습니다. 준비 중인 앨범에 제가 불러 주면 좋을 노래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반주 음원을 들어 보니 노래가 참 좋았고, 저와도 잘 어울린다 싶어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그런데 녹음을 준비하며 수녀님의 다른 노래들을 들어보다가 제 마음을 세차게 울린 노래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메멘토 모리라는 노래였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는 인생의 본질을 깊이 꿰뚫는 물음으로 가득했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애쓰며, 무엇을 위하여 달리는가.

저 태양 아래서 언젠가 사라질 것들을 붙잡는가.

알면 얼마나 알기에, 가지면 얼마나 가졌기에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길에 후회를 남길 텐가.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위로와 기쁨이 강물처럼 오는 날 있으리니

행복한 날에도 불행한 날에도 죽음을 기억하라.

어차피 갈 인생 즐겁게 살다가 그날을 맞이하라.

 

 

이 노래가 저는 문득 가톨릭의 <타타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타타>는 가수 김국환 씨가 불교적 인생관을 노래한 곡입니다. 그런데 이 곡은 그리스도교적 시선으로 삶과 죽음을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구약의 코헬렛처럼 하느님 없이는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성경의 메시지를 한국적인 정서와 언어로 풀어 낸 곡이었습니다.

 

특히 곡의 리듬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왈츠풍으로 된 노래를 듣고 있으면 마치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 성과 속이 서로 손을 맞잡고 춤을 추는 듯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고급스러운 오페라 왈츠 같으면서도 대중적이고 서민적인 정서가 함께 배어 있었습니다. 저는 수녀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수녀님, 메멘토 모리라는 곡이 너무 좋아서 저도 꼭 한 번 불러보고 싶습니다.”

 

수녀님은 무척 기뻐하시며, 사실 이 곡이 본인이 만든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널리 알려지지 않아 아쉬움이 있었는데 제가 그 진가를 알아보니 더욱 반가우셨던 것이겠지요. 이 노래를 듣다 보면 알게 됩니다. 기쁨과 고통, 선과 악, 삶과 죽음 모두 인생의 일부이며, 그것을 하느님 안에서 기쁘게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에 이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음을 말입니다.

 


 

삶과 죽음의 기도

 

예수님께서 겟세마니에서 드리신 기도는 메멘토 모리의 정신을 가장 잘 보여 줍니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마르 14,36)

 

이를테면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보다 재물에 얽매이지 않는 은총을 청하는 것이 낫습니다. 고통을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보다 고통을 견디고 이겨 낼 힘을 구하는 것이 더 지혜롭습니다. 죽음을 피하게 해 달라는 기도 대신 내 삶의 여정을 잘 마무리하여 기쁘게 주님을 뵙게 해 달라고 청하는 것이 더 온전한 기도일 것입니다.

 

결국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함으로써 삶을 더 깊이 있게 살고, 하느님 안에서 자유로워지도록 이끄는 지혜의 길입니다. 그것은 옛 철학자들의 가르침이었고, 수도자들의 훈련이었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필요한 영적 훈련입니다.

 


 

 

🎵 이제 음악에 마음을 맡기며, 잠시 눈을 감아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VqTOk6lGU_c

 

*이 곡의 원곡은 2021년에 나온 김 연희마리아 수녀님의 자작곡 음반 <치유를 위한 노래기도 3>에 수록되어 있고, 제가 부른 이 버전은 수녀님으로부터 원곡 반주 MR을 제공받아 별도로 녹음한 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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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대구대교구 사제. 현재 일심재활원 원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7년간 남미에서 선교 사제로 살았고, 지금은 6년째 사회 복지 사목을 하는 사회 복지 사제입니다. 또한 온라인에서는 5년째 성경 통독을 돕는 영상을 만드는 유튜버 신부로도 활동합니다. 제 뜻대로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지만, 돌이켜보니 모두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 모든 자리가 제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펼쳐질 모든 일에도 감사하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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