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톨릭대사전》은 대세(代洗, baptismus privatus)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정식 세례성사를 대신하여 비상조치로 베푸는 세례를 ‘비상 세례’라고도 한다. …… 죽을 위험에 처하거나, 전쟁 혹은 박해 등의 청해 올 여유가 없을 경우에 한해서 대세를 받을 수 있다. …… 우리나라에서는 천주교회 창립 이후 사제의 부재 또는 부족 현상과 함께 오래 지속된 박해 기간 동안 평신도들이 대세를 자주 베풀었다. 대세를 받은 자가 살아나서 신앙생활을 계속하려면 세례성사 집행 시 부족했던 예식 부분을 보충하는 ‘보례(補禮, caeremonia supplementi)’를 받아야 한다.”
이 정의는 언뜻 보기에 역사적·사목적 상황을 충실히 반영한 해설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전례적 표현과 교회법적 차원에서 몇 가지 보완이 필요합니다. 위 정의를 기준으로, 세 가지 핵심 쟁점에 대해 교회법적·전례적 관점에서 팩트 체크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1) 대세는 정식 세례가 아니다?
✖️ 사실이 아닙니다.
‘대세(代洗)’라는 용어는 문자 그대로 ‘정식 세례를 대신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이는 “정식이 아니다.”라는 뉘앙스를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례의 유효성과 교회법적 효력 측면에서 ‘정식 세례’와 ‘대세’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이에 대해 현행 《교회법전》 제861조 2항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정규 집전자가 없거나 장애되는 경우에는 교리교사 또는 교구 직권자에 의하여 이 임무에 위탁된 다른 이가, 더구나 부득이한 경우에는 합당한 의향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든지, 적법하게 세례를 줄 수 있다.”
해당 조항은 교회가 모든 이의 보편 구원을 원하시는 하느님의 의지와, 구원을 위한 세례의 필요성을 근거로 비신자도 세례를 집전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1) 그러므로 비상 상황에서 거행된, 이른바 ‘대세’는 교회가 정식으로 허용한 온전하고 유효한 세례이자 교회의 사명 안에서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정상적 집전입니다.
‘대세’는 신학적‧전례적으로 부정확하여 오해가 있는 표현으로 간주될 수 있지만, 이 표현은 한국 천주교 전통 안에서 형성된 문화적 산물입니다. 오늘날 전례와 교회법 문헌에서는 ‘임종 세례’, ‘비상 세례’ 등의 용어가 더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2) 보례는 반드시 받아야 하나?
🔼 의무 사항은 아닙니다.
‘보례’, 보충예식은 시대와 전례적 변화에 따라 형태가 달라졌으며, 현재는 명시적 의무 사항은 아닙니다. 이에 대해 《1917년 교회법전》 제759조 3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합니다.
“다만, 세례 수여에서 생략된 예식은, 어떤 이유로든 …… 가능한 한 빨리 성당에서 보충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사용된 라틴어 “suppleantur”는 ‘보충되다’, ‘채워지다’라는 뜻으로, 생략된 전례의 보완이 필요함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1972년 〈어른 입교 예식서〉가 도입되기 전까지 〈로마 예식서〉 제2권 제5장과 제6장에서, “어린이 세례에서 생략된 부분을 보완하는 예식”, “어른 세례에서 생략된 부분을 보완하는 예식2)은 이름으로 생략된 예식을 보완하는 전례가 안내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헌장〉 제68-69항에서는 다음과 같은 지침을 제시합니다.
“…… 죽을 위험에 있는 사람에게, 사제나 부제가 없을 때에, 신자들이 쓸 수 있는 짧은 세례 예식을 마련하여야 한다. ‘어린이 세례에서 생략된 부분을 보완하는 예식’이라 불리는 예식의 자리에, 간략한 예식으로 세례를 받은 어린이가 이미 교회 안에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더 명백히 더 적절히 드러내는 새로운 예식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에 따라 1972년 〈어른 입교 예식서〉 제3장에서는 “죽을 위험에 있거나 죽음이 임박한 때에 사용하는 짧은 어른 입교 예식”을 마련하였고, 제4장에서는 “유아 세례만 받고 교리 교육을 받지 못한 어른들의 견진과 영성체 준비”를 마련하였습니다.
비상 세례 후 건강이 회복된 이들을 위해 〈어른 입교 예식서〉 제295항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아래의 사목 지침은 …… 특히 죽을 위험에 있거나 죽음이 임박한 때에 세례를 받은 어른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이러한 어른들은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하여 설명을 듣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그들의 신분은 이미 교회에 입문하였고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점에서 예비 신자들의 신분과는 엄연히 구별된다. ……”
현대 전례는 보례를 세례의 보완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와의 통합과 신앙 성숙을 위한 전례적 예식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그래서 현행 《교회법전》에서도 보충 예식이라는 표현은 사라졌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도 변화를 겪었습니다. 1995년판 제55조 제3항에서는 세례 보충 예식을 거행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023년 춘계 주교회의를 통해 해당 문구를 삭제하기로 결정했고, 현재 교황청 인준 절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3) 대세만 받은 이에게 장례 미사가 가능한가?
🔴 가능합니다.
대세는 정식 세례와 동일한 효력을 갖기 때문에 장례 미사가 가능합니다. 대세는 완전하고 유효한 세례이며, 교회는 세례받은 이로 인정합니다.
현행 《교회법전》 제1184조에서는 ‘공공연히 교회를 거부한 이, 이단 또는 분열주의자, 중대 범죄자 중 회개하지 않은 이를 제외하고 모든 신자에게 교회의 장례 예식을 줄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대세만 받은 이’는 제외 대상이 아닌 ‘모든 신자’에 포함되기 때문에 장례 미사를 거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공소회장이나 신심 깊은 평신도가 신부님을 대신하여 세례를 집전하고, 사목 방문을 온 신부님이 ‘보례 예식’을 거행하던 전례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1970년에 발행된 《가톨릭 예식서》에서는 ‘회장 집전의 어린이 성세 예식’, ‘보례 예식’이라는 표현이 명시되어 있습니다.3)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대세’와 ‘보례’라는 개념이 정서적‧사목적으로 뿌리내리게 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보다 정확하고 전례적으로 조율된 언어로, ‘대세’보다는 ‘비상 세례’ 또는 ‘임종 세례’, ‘보례’보다는 ‘공동체 입문의 전례’ 또는 ‘견진과 영성체 준비 예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제안드립니다.
각주
1) 《가톨릭 교회 교리서》, 1256항, 1284항 참조
2) 로마 예식서(Rituale Romanum), https://www.liturgia.it/content/ritrom.pdf 참조.
3)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가톨릭 예식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70년, pp. 99-11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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