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구원자께서는, 먼지 위에서 일어서시리라.

성경 이야기

나의 구원자께서는, 먼지 위에서 일어서시리라.

2025년 11월 2일 |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2025. 11. 01
읽음 92

5

4

오늘은 위령의 날입니다. 교회는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면서 특별히 연옥에서 고통받는 영혼들이 정화를 거쳐 하느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를 바칠 것을 권고합니다. 모든 성인 대축일인 111일부터 8일 사이에 묘지를 방문하여 세상을 떠난 모든 영혼을 위해 기도하면 전대사(全大赦)의 은총을 받을 수 있으며, 이때 받게 되는 전대사는 연옥 영혼에게 양도할 수 있습니다.

 


 

삶과 가까운 죽음

 

우리나라는 묘지가 주거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묘지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합니다. 그러나 제가 유학했던 독일에서는 성당 마당에 묘지들이 마련되어 있거나 마을 안에 공동묘지가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가족들이 미사 참례 전후로 조상의 묘지 앞에서 함께 기도하던 모습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유학 시절에 독일 현지에서 장례 미사를 주례했던 적이 있습니다. 본당 신부님이 휴가 중이어서 제가 주례를 대신 맡게 되었습니다. 독일어 미사를 주례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지만, 장례 미사를 독일어로 드렸던 적이 없었던 터라 긴장을 많이 했습니다. 장례 미사가 끝나고, 이어서 하관 예절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묘지는 마을 내 공동묘지 구역에 마련되어 있었고, 성당에서 멀지 않았습니다. 십자가를 선두로 가족 및 복사들과 함께 고인을 모시고 묘지로 이동하였고, 그곳에서 하관 예절을 거행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주거 지역 가까이에 공동묘지가 있다는 점이 무척이나 생소했습니다.

 

이처럼 삶과 죽음의 거리는 멀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주 가까이 붙어 있습니다. 우리는 흙으로 빚어진 존재로서 하느님의 영으로 생명을 영위하며 살고 있지만(창세 2,7 참조), 다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삶과 죽음 사이에는 하느님께서 계십니다. 인간 스스로 삶과 죽음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이를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뿐이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매년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에 머리에 재를 받으며 확인합니다.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하느님을 생명의 주관자로 인정하고 고백하는 대표적인 성경 인물은 욥입니다. 우츠 출신의 욥은 흠 없고 올곧으며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이”(1,1)였습니다. 첫째 미사의 제1독서에서 욥은 하느님을 향한 자신의 믿음을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그분께서는 마침내 먼지 위에서 일어서시리라.”(19,25)

 

그러나 의인 욥에게도 시련과 고통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욥을 시험하시고자 그의 소유를 거두셨으며, 심지어는 건강마저도 위태롭게 만드셨습니다. 욥은 절망 속에서 자신이 처한 고통의 상황을 거부하며 하느님께 탄원하기도 했습니다. 욥을 사랑하신 하느님께서는 욥을 변화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욥 스스로가 창조주 앞에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고 욥은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하느님께 고백합니다.

 

저는 알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음을, 당신께는 어떠한 계획도 불가능하지 않음을!”(42,2)

 

하느님을 만물의 창조주시며 생명의 주관자로 고백하는 이들에게는 하늘나라의 행복이 주어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행복 선언을 통해 제자들을 격려하시며 위로와 희망을 주셨습니다(첫째 미사의 복음 참조). 마태오의 행복 선언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제자들이 행복한 이들로 동일시되고 있지는 않지만, 예수님께서는 행복 선언을 통해 제자들이 당신의 뒤를 따라 걸을 때 얻게 될 은총이 무엇인지 알려 주십니다. 제자들을 향한 하늘나라의 약속은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 오늘의 묵상 포인트

누구를 위해 기도하고 싶나요?

 


 

Profile
수원교구 사제.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생 양성’이라는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신학생들과 함께한 지 벌써 6년이 지났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리게 느껴졌던 신학생들이 양성을 마치고, 사제 서품 후 파견되어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충실히 수행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교회와 하느님 백성을 위해 열정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학교 양성자로서 살아가는 보람을 느낍니다.

다른 분들이 함께 본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