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라면 한 번쯤 교리 교육을 받아 본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 배웠던 교리를 모두 기억하고 계시나요? 아마 대부분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더구나 우리가 무엇을 신앙하고 있는지 알려 주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너무 두껍습니다. 저 역시도 본당 예비 신자 교리나 특강이 아니라면 읽고 싶지 않은 마음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눈물을 훔쳐 내면서라도 읽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교리’는 그 성격에 따라 ‘교의’와 ‘교리’로 나뉩니다. 교의는 ‘믿을 교리’로, 수정되거나 폐기될 수 없는 신앙의 진리입니다. 이에 반해 교리는 진리가 교회 역사의 흐름 속에서 윤리와 사회, 선교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어 온 교회의 가르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진리, 교의
지금부터 교의에 대해 자세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교의’는 그리스도교 고유의 용어가 아닙니다. 《한국 가톨릭 대사전》에 따르면, ‘교의’를 뜻하는 라틴어 ‘dogma’(도그마)는 그리스어 ‘δόγμα’(도그마)와 동의어입니다. 이 그리스어는 동사 ‘δοκεῖν’(도케인)에서 유래했는데,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는 ‘~라고 믿다’(타동사), ‘바르게 보이다’(자동사), ‘결의하다’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명사 ‘δόγμα’ 또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견해나 교설’을 의미했습니다.
그리스어로 쓰인 신약 성경에서 ‘교의’는 다섯 번 등장합니다. 이 중에서 예루살렘 사도 회의의 결의 사항을 지칭하는 부분을 주목해야 합니다.
“바오로 일행은 여러 고을을 두루 다니며,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이 정한 규정(δόγμα)들을 신자들에게 전해 주며 지키게 하였다.”(사도 16,4)
여기에서 δόγμα, 즉 교의는 ‘신앙과 윤리 문제에 있어 구속력 있는 지침’을 의미합니다. 신약 성경이 저술될 때까지 교의는 ‘그리스도교의 주요 교리’를 의미하지 않고, 오히려 ‘교의의 원초적 형식’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신약 성경에서는 ‘신앙’(fides, πίστις), ‘교리’(doctrina, διδασκαλία), ‘고백’(professio, ὁμολόγησις)과 같은 단어들이 교의와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어지는 교부 시대에도 교의라는 용어가 명확히 정의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복음 선포, 신앙 옹호, 교리 교육을 위해 신자들이 믿어야 할 바를 명제로 확정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필요성에 응답하기 위해 교회는 초대 공의회*를 통해 교회의 신앙 고백을 형성하였습니다. 이 신앙 고백은 오늘날 교의의 원천적 형태가 되었으며, ‘신앙 정식(definitio fidei)’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초대 공의회는 그리스도교 신앙 정식이 마련된 제1차 니케아 공의회, 1~4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에페소 공의회, 칼케돈 공의회 등을 지칭한다.
중세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나 보나벤투라와 같은 위대한 신학자들은 교의라는 용어 대신 신경의 세부 내용을 가리키는 ‘신앙 조문(articulus fidei)’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있어서 신앙 조문은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했습니다.
1) 직접적이고 공식적으로 계시된 진리여야 할 것
2) 신앙과 생활에 기초가 되는 계시 진리여야 할 것
3) 신앙 조문이 되는 진리들은 신경에 속해야 할 것
무엇보다 세 번째 조건은 모든 신자를 하나의 신앙 고백에 결합하는 교회 교도권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는 오늘날 전문 용어로서의 교의 개념이 형성되는 초석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중세 시대가 지나면서 교의 개념의 발전 과정에서는 ‘사도 전승’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사도 전승이란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인 교황으로부터 확인된 공의회와 교리 결정’, ‘교황이 친히 이룬 교리 결정’, ‘모든 신자가 전통으로 고수해 온 것’을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이러한 사도 전승이 ‘신앙의 교의’로 여겨지기 시작하면서, 성경과 더불어 성전(거룩한 전승)은 신앙의 중요한 원천이 되었습니다.
이후 인간 이성의 무제한적인 자율을 중시하는 시대가 찾아옵니다. 교회는 이러한 시대적 조류에 대항하며 교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인 교도권을 다음과 같이 강조합니다.
“교의란, 기록되었거나 전승되어 온 하느님의 말씀 안에 포함된 것, 교회로부터 성대한 결단을 통해서나 통상적이고 일반적 교리 선포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계시하셨다고 믿도록 제시된 모든 것이다.”
교회 안에서 꽃피우는 진리
오늘날 ‘교의’는 성경(구약과 신약의 계시 진리)과 성전에 포함된 진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특히 교회로부터 통상적이고 일반적인 교도권을 통해, 혹은 공의회나 교황의 예외적(이고 무류적인) 결정을 통해 확정 선포되는 계시 진리로 정의됩니다. 내용 면에서는 하나의 계시 진리이고, 형식 면에서는 하나의 교리 명제이며, 객관적 타당성 면에서는 하나의 무류적 신앙 진술이고, 주관적 통용 요청 면에서는 교회 각 신자의 양심에 의무를 부과하는 지침이며, 형성 경위 면에서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교회를 통해 취해진 하나의 확정인 것이지요.
이처럼 교의는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를 선포합니다. 하지만 교의를 표현하는 우리 인간의 언어는 무한한 하느님의 진리를 담아내기에 제약과 제한이 많습니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하느님의 진리를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인간의 언어로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교회 공동체는 역사 속에서 하느님의 진리를 인식하고 체험해 왔습니다. 교회 안에서 교의가 가리키는 신앙 진리가 지켜져 온 것입니다. 이를 가리켜 신학자 발터 카스터 추기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교의는 복음과 교제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교회의 역사적 체험, 성경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취된 체험의 결과이다. 이 체험은 자신을 넘어 교회 안에서 복음을 통해 살아 계신 분으로 현존하시는 주님과의 새로운 만남을 지시한다.”
한편 교황은 교도권이 담긴 문헌을 통해 신앙 진리인 교의를 교회 공동체가 충실히 살아 낼 수 있도록 지도합니다. 교도권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남겨 주신 사제직, 예언직, 왕직 중 진리를 선포하는 임무인 예언직을 수행할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교도권을 올바르게 행사하기 위해서는 먼저 계시 진리를 믿으면서 계속해서 연구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더욱 거룩하게 보존해야 합니다. 또한 진리를 계속하여 새롭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교도권의 형태는 장엄 교도권, 통상 교도권, 통상 보편 교도권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장엄 교도권은 주교들이 공의회를 통하여 가르치거나 교황이 교황의 직위를 발동하여 성좌에서 선언하는 것을 말합니다. 통상 교도권은 일반 주교들의 설교, 교리 해설, 사목 교서, 교구 공의회, 지역 공의회 등을 통해 드러납니다. 마지막으로 교황의 통상 교도권은 주교의 경우와 같은 방법 외에 교황령, 회칙, 교황청 부서의 교령 등의 문서를 통해서 드러날 수 있습니다. 통상 보편 교도권은 주교단 전체의 공통된 가르침으로, 전 세계 주교들이 교황과 일치하여 결정한 신앙과 도덕에 대한 가르침은 오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전인걸 신부] 교의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 [전인걸 신부]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신 것은 인간이 신화(神化)되기 위함이다.”
- [전인걸 신부] 생명을 주시는 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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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에 계속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