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 입구에는 거대한 조각상이 양옆에 하나씩 있습니다. 성 베드로 광장에서 대성당을 바라보았을 때, 왼편에는 성 베드로 사도, 오른편에는 성 바오로 사도가 있습니다. 성 베드로 사도와 성 바오로 사도는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대성당 입구에서 수많은 순례자와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해 줍니다. 때로는 성당 안에서 경건하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당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두 사도는 단순히 대성당을 지키는 문지기가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들은 가톨릭 교회를 넘어서 그리스도교를 대표하는 성인들입니다. 교회가 매년 6월 29일에 베드로 성인과 바오로 성인을 함께 기념하고 경축하는 이유는 이 두 성인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 베드로 대성당 앞에 서 있는 두 사도는 오늘 교회가 그들을 함께 기념하고 경축하는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열두 사도 중 ‘첫 번째’ 사도입니다. 첫 번째로 부르심을 받았고(마태 4,18), 모든 제자들을 대표하는 ‘대변인’이었습니다(마태 15,15; 17,4.24-27; 18,21-22; 19,27 참조). 오늘 복음에서는 베드로 사도의 의미와 역할을 잘 보여 줍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한 신앙을 고백합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이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복을 약속하는 동시에 그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부여하십니다. 이 권한은 오직 베드로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다른 제자들에게도 부여됩니다(마태 18,18). 예수님 없이 베드로는 혼자의 힘으로 어떤 권한도 수행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다른 제자들과의 관계 안에서만 존재합니다. 베드로는 ‘유일한 자’이며 ‘첫 번째’이지만 다른 제자들 없이 존재할 수 없으며, 다른 제자들 역시 베드로 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바오로는 처음부터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베냐민 지파 출신의 독실한 유다교 가정에서 고등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그는 스테파노를 죽이는 데 동조하였으며(사도 8,1), 누구보다 앞장서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박해했습니다(1코린 15,8-9; 갈라 1,13-14; 필리 3,5-6; 1티모 1,13 참조). 그러나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뒤, (사도 9,1-21) 그의 삶은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을 위한 일에 투신하게 된 것입니다. 이전에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역설적으로 해롭고 무가치한 것이 되었습니다(필리 3,5-11 참조). 오늘 제2독서에서는 바오로 자신이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선택받았음을 말하고 있습니다(2티모 4,17 참조).
오늘 대축일 미사 감사송은 성 베드로 사도와 성 바오로 사도의 역할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신앙 고백의 모범이 되고, 바오로는 신앙의 내용을 밝히 깨우쳐 주었으며, 베드로는 이스라엘의 남은 후손들로 첫 교회를 세우고 바오로는 이민족들의 스승이 되었나이다. 두 사도는 이렇듯 서로 다른 방법으로 모든 민족들을 그리스도의 한 가족으로 모아 함께 그리스도인의 존경을 받으며 같은 승리의 월계관으로 결합되었나이다.”
이처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는 다양성 안의 일치를 보여 주면서 교회의 탄생과 성장을 위해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들에게 다름은 차별 혹은 배척의 이유가 되지 않고, 오히려 풍요로움을 위한 조건이 되었습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어 나갈 때 하나가 아니라 둘 이상이 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고통스러운 포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포기해야 비로소 수용이 가능해집니다. 이것이 두 성인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