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의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신학 칼럼

교의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삶이 고백이 되는 여정, 초대 신앙인들의 삶을 따라

2025. 08.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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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NTRO

 

<평신도를 위한 교의 신학 길잡이> 시리즈는 독자에게 교의 신학의 중요한 꼭짓점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첫 번째 출발은 그리스도교의 신화(神化, Deificatio) 신학입니다.

 

8월 한 달 동안 네 차례에 걸쳐, 초대교회 교의(삼위일체론, 그리스도론, 성령론, 마리아론)가 어떻게 형성되고 정립되었는지 함께 살펴볼 예정입니다. 이는 곧 성부 하느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 성령, 성모 마리아와 관련하여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관계를 심층적으로 탐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하느님께서 인간 본성을 성화하시기 위해 마련하신 신학적 기반이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이 세례 이후 신앙의 여정을 걸어가며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모상을 회복하고 지켜 나아가는 데 있어, 그 존재론적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아버지교부

 

성경 시대 이후, 교의(dogma)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요? 그 여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초대 교회 교부들의 삶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머무르셨던 시기(기원후 약 1~33년경)가 지나고, 그분의 말씀과 행적은 제자들을 통해 구전되었습니다. 이후 50년부터 100년 사이에 복음서로 기록되기 시작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은 점차 체계화되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한 이들이 바로 우리가 교부’(敎父, Pater Ecclesiae)라고 부르는, 신앙의 초기 길잡이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교부들이 겪었던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을까요?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정립된 교리나 공식 문헌들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마다 성경을 다르게 이해하거나, 때로는 잘못 해석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와 같은 성경 해석의 오류는 교회 전체의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성경 해석을 통해 교회의 신앙을 지켜야 하는 책임을 지닌 교부들은 매우 신중하고 책임감 있게 가르침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Rhetorica》에서 훌륭한 연설의 세 가지 핵심 요소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 바로 로고스(Logos), 파토스(Pathos), 에토스(Ethos)입니다.


첫째, 로고스는 논리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도 철학적이고 이성적으로 타당해야 설득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신론자나 다신론자들 앞에서 설득력을 갖기 어렵습니다.


둘째, 파토스는 감정또는 공감의 요소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논리라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면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셋째, 에토스는 말하는 이의 인격과 삶입니다. 말과 삶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 말은 신뢰를 얻기 어렵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중에서도 에토스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초기 교부들은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를 모두 갖춘 인물들이었습니다. 특히 에토스, 즉 말과 삶의 일치를 보여 주었던 증거자들이었기에, 그들의 가르침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진리로서 사람들의 마음을 깊이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교부들이 교회 학자이면서도 성인으로 선포된 이유는, 단지 교의를 정립한 학자에 머무르지 않고 복음을 자신의 삶으로 증언한 신앙의 증거자였기 때문입니다.

 

2~3세기의 여러 교부들은 백성들 가운데서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그 말씀을 선포한 순교자이자 고백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교의의 토대를 놓았을 뿐 아니라, 삶으로 그 진리를 증명해 보인 분들이었습니다.

 


 

초대 교회의 신학적 의미

 

초대 교회는 오랜 기간 박해 속에서 성장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오르신 이후 약 250년 동안은 간헐적인 박해가 이어졌고, 이후 313년까지는 매우 혹독한 박해가 계속되었습니다. 특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재위 284~305)는 교회를 파괴하고 성경을 불태우며 그리스도인을 감옥에 가두거나 처형하는 등 교회를 심각하게 탄압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지하로 숨어 생활하거나 기꺼이 순교의 길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성인들의 순교를 단순히 영웅적이며 감동적인 사건으로만 미화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초대 그리스도교 역사가 지닌 깊고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놓치게 됩니다. 순교의 시대는 단지 개인의 성덕이나 영웅적인 결단으로 이해될 것이 아니라, 당시 그리스도인의 삶이 세상 안으로 확장되어 갔고, 이를 통해 그리스도교가 공적으로 성장하고 내적으로 성숙해 갔던 신학적 사건으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박해가 끝난 것은 313,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밀라노 칙령을 통해 종교의 자유를 선포하면서부터입니다. 이로써 교회의 외적 상황은 극적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그러나 순교의 시대가 남긴 신학적 의미를 되새기며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어떻게 시민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까?”

무엇이 수많은 이들, 심지어 정치 지도자들까지 개종하게 만들었을까?”

 

이 시기 열정적인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주변 사회와 점점 접촉해 나가며 일정한 인정과 신뢰를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존경의 시선이 서서히 퍼져 나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변화는 단순히 정치적 전략이나 세속 권력에 의한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삶 전체로 복음을 증언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증명하지는 않았지만, 세례를 통해 얻은 새로운 삶을 드러내고, 평화를 전하며,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평등한 공동체를 이루고, 동시대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갔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되었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존재, 살아 있는 호교론이 되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국교 그리스도교

 

서기 380,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테살로니카 칙령을 반포하여 그리스도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기준이자 내면의 질서를 세우는 힘으로 작용하였을 뿐, 세상을 장악하려는 정치 체제나 지배 이념이 되고자 하지는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종교가 국교로 지정되면, 국가는 종교를 보호하고 종교는 국가의 이념적 도구가 되어 사회 정치를 통합시키는 원리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그러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체제화하거나 권력화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교는 로마 제국을 하느님 나라의 실현으로 이해하지 않았으며, 그리스도인들은 어디까지나 하느님의 말씀을 구체적인 삶 안에서 구현하려는 신앙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순교의 시대로부터 공인의 시대로 전환된 것은 단순히 정치적 안정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 전환은 신앙 고백의 정식화, 381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의 제정으로 이어진 신학적 사건이었습니다.

 

이제 신앙은 더 이상 소수의 신자들이 목숨을 걸고 은밀히 간직해야 하는 고백에 머물지 않고, 교회 전체가 공적으로 선포해야 하는 공동체의 신앙 언어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이 전환은 단지 표현 형식의 변화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는 교회가 세상 안에서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를 본질적으로 성찰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그리스도인답게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을 고백하느냐가 보다 중요하게 여겨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삶의 경험에서 교의가 형성되고 신앙 고백으로 나아가는 흐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삶의 경험 → 교의 형성 → 신앙 고백

 


 

삶에서 출발한 신앙 고백

 

신앙은 삶에서 출발합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그분을 믿으며 살아가는 경험이 먼저 있었고, 그 신앙적 체험을 바탕으로 교회는 신앙을 분별하고 정의하였습니다. 그리고 공동체가 함께 나눌 수 있는 신앙의 언어와 형식을 교의(dogma)로 선언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교의는 신앙 고백(Credo)의 형태로 공동체 전체가 함께 선포하는 공적인 신앙 선언으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여정 안에는 성인 교부들의 삶과 가르침, 순교자들의 헌신, 그리고 공동체 전체의 신앙적 수용이 깊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초대 교회가 보여 준 교의 형성의 과정은 단순한 이론적 전개가 아니라, 신앙의 삶에서 출발하여 공동체의 고백으로 이어진 살아 있는 전통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 화에 계속 이어집니다.

 

 

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로마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교의신학을 전공했습니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그리스도론, 은총론, 교회일치 신학을 가르치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여정 속에서 길잡이가 되는 신학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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