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요즘 제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부탁을 하고 다닙니다. 세상천지 의지할 곳은 주님밖에 없는 외로움이 담긴 부탁이고 나 힘든 거 알아달라는 외침입니다. 그러면 다들, 그래도 희망을 가지라 위로하시는데 그 말을 들으면 대뜸 짜증이 나서 대들고 맙니다. ‘희망이 어디 있습니까, 희망 없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하는 희망의 기도》를 펼치니 교황님께서 저와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아! 교황님, 제가 어떤 기도를 해드리길 바라셨나요? 어떤 마음으로 저런 말씀을 하셨나요? 그분은 그 기도의 응답을 통해 힘을 얻으셨다고 말하십니다. 그리고 열 가지의 부탁을 더 남기셨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청하신 부탁들이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하는 희망의 기도》에 담겨있습니다.
차례대로 살펴보면 교회 내 학대의 근절, 공동의 집 지구를 보호할 것, 거짓 뉴스에 맞서는 언론, 공동체에 헌신하는 정치, 전쟁의 근절, 이주민과 난민 문제, 사회 내 여성의 참여 확대, 가난한 나라의 성장, 모든 이가 건강할 권리의 보장, 하느님의 이름으로 전쟁을 조장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심으로 당부하신 것들은 제 예상보다 너무나 무거운 것들이었습니다. 교황으로서, 어른으로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저런 말씀을 하실 때 어떤 마음이셨을지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 부탁들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씀하셨기에 마땅히 엄중함을 느낍니다.
교황님께서는 각 사항에 대해 우리의 마음과 행동의 변화를 촉구하십니다. 그리고 교회가 가진 입장을 전하며 가르침을 주십니다. 사실 이 책에서 소개된 현시대의 문제들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외면했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여겼던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혹은 교회의 입장과 다른 견해를 남몰래 품고 있기도 했습니다. 특히 난민과 이주민 문제입니다. 교황님은 그들이 어디서든 평등한 기회를 얻어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포용적인 공동체가 될 때 풍요로운 사회가 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물론 기본적인 안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프긴 했지만, 자국민을 챙기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혹시 무분별한 수용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하며 꺼렸던 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주민의 형태에 헤로데 임금을 피해 도망치던 예수님께서 계신다는 말씀에, 한 명의 인간인 그들의 얼굴에 굶주리고 헐벗고 감옥에 계시던 예수님의 얼굴이 있다는 사실에 감히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교황님의 부탁을 들어드리기가 차마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살아 있는 동안 해결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는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막막함 앞에 교황님께서 제시하신 방법은 형제애 즉, 공동체입니다. 불의에 맞서는 용기는 다른 이와 함께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아무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는 없다고 하십니다. 서로 손을 잡고 끌어안으며 이 문제들에 맞서나가자고, 반대하며 목소리를 내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고 외치고 계셨습니다.
또한 강조하시는 것은 희망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공평히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힘이 된다고 합니다. 거대한 권력이나 현상 앞에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무력감보다는 더 나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희망이 행동과 마음의 변화를 이끌 것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는 희망을 품고 살기 어려운 지금 같은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희망은 없다며 바락바락 우기던 저에게 그분이 남기고 가신 가르침으로 남습니다.
기도를 청하신 교황님의 부탁에 작은 기도를 보내어 응답합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를 바치는 공동체의 힘을 믿으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더 나은 신앙인의 모습을 다짐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