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의 바다>_이해인, 사랑합니다라는 그 말을 잊었던거야.

<해인의 바다>_이해인, 사랑합니다라는 그 말을 잊었던거야.

술마시는토토로

2026. 06. 13
읽음 2

게으름이라는 것은 지난 달의 결심에도 불구하고 나를 또 이렇게 최후까지 밀어 붙이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어떻게든 책을 시작하려 강서도서관으로 향했지만, 하필이면 휴관일이었다. 그래서 결국 카페에서 이렇게 책을 펼치게 되었다.

책을 펼치고 얼마 되지 않아, 이 문장이 나의 눈을 스치자, 순간 나는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듯 하다 콧날이 시큼해져왔다. 그리고 잠시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먼 곳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왜 이토록 그리워졌을까? 한 번도 보지 못한 이해인 수녀님과 이미 오래전부터 그 주위만을 맴돌던 주님을.

무엇인가가 내 마음속으로 흘러 들어와 결국엔 나의 마음을 깊고 짠 바다에 잠기게 하였고, 수면 위의 일렁이는 태양을 동경하게 했다. 나는 그렇게 한참을 내가 그리워한 많은 것들을 떠올리며, 지금 느낀 이 그리움 속에서 쉬고 싶었다. 그러나 그리움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어서, 하나하나 그것만의 사연이 있는 것이고, 그 자리까지 빼앗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다시 책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평생 빈 마음으로 흥얼거렸던 기도문과 나의 실체는 세상의 것들에 맡긴 채 멀뚱멀뚱 기계적으로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다 미사에서 돌아오기 십상이었다. 그런 나에게 매일의 반성과 고백의 일기는 부끄러움과 동경의 글이었고, 과연 내가 가장 사랑하는 분이 누구이신지를 마음속 깊이에서부터 고민하며 떠올리게 되는 그런 시간이었다. 이 책은 그런 책이었다.

끊임없이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을 느끼게 하였지만, 거기에서 도망가도록 방치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녀님의 나약함과 순종으로 나를 당신에게로 이끄시려는 의도를 더 또렷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이것이 나의 첫 이해인 수녀라는 것이 참 아쉽다고 느꼈다.

나에게도 퍽 조용했어야 할 주일이었고, 수녀님과 같은 순수한 귀가를 꿈꾸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세상은 오색 색깔로 만들어진 바람개비처럼 쉴 새 없이 돌아가며 나를 현혹시켰고, 나는 그것에 너무나도 쉽게 무너지며 안주했다. 바람개비의 날개 하나하나를, 그 색깔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떼지 않았으니, 조용할 리도 평온할 리도 없었다.

언제나 쉬고 싶다고 푸념하지만, 모든 피로는 세상으로부터 왔을 뿐, 한 번도 주님 때문에 피로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쉬고 싶다는 말, 포기하고 싶다는 말은 오로지 주님께만 늘어놓았다.

나에게는 주일뿐 아니라, 다른 날도 조용해야 했다. 하지만 과거에도, 지금도, 어쩌면 앞으로도 그 고요는 주님만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세상 끝에 설지도 모르겠다.

거기서 마주치는 모든 형제들에게 무한히 정다운 눈길의 사랑을 주되, 조금도 그 사랑에 자신이 구해되지는 말게 하소서.

해인의 바다_이해인

주님의 사랑에는 무심했지만, 사람의 사랑에는 간절함을 놓지 않았던 나의 삶이 떠올랐다. 최근 세상에서, 그리고 사람들에게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자신을 보며, 한편으로는 참 안도도 하게 되는데, 세상이 나간 만큼 내 마음은 다른 것으로 채워질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주님이 되었으면 하고, 이 책을 읽으며 소원했다.

매일매일을 그 갈망의 기도를 적고 있었던 50년 전 수녀님은 아직도 주님을 갈망하고 있으며, 그 갈망의 크기를 나는 이제 따라가기 힘들다고도 느꼈다. 성소라는 것은 이렇듯 사랑 속에서도 사랑을 갈망하는 것인가 보다. 나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테지만, 문득 위로되는 말이 떠올랐다.

세월의 깊이가 관계의 깊이가 아니라는 것. 하지만 그것도 그 간절함이 세월을 뛰어넘었을 때의 일이리라.

그런 사랑의 실천은 주님께 로트만이 아니라 이웃을 위한 사랑으로도 흘러가야 하지만, 나의 마음속에는 미움과 반목이 잡초의 생명력으로 자라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주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세월이 이리도 지난 지금도 전혀 늘지 않는 능력이자 나의 부족함이었다.

그런 나에게 수녀님은 이런 기도를 읊어 주었다.

바보라는 소리를 들어도 좋으니, 제가 부디 모든 사람에게서 아름다운 점을 찾아내고, 그들이 당신에게서 사랑받는 존재임을 깨달아 그들 앞에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드러내게 하소서. 그러나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렇게 자신과 싸워야 하나 보죠?

해인의 바다_이해인

스스로 만든 미움의 숲을 무슨 정원이나 된 듯 가꿔왔던 자신이 떳떳지 못해,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눈을 피하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대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태양을 피할 수는 없는 일이며, 조용히 고개를 숙여 용서의 은총을 빌며, 나의 미움과 싸워야 했다.

그 용서의 기도는 날카로운 칼이 되어 내 속에서 자라나 이제는 거대한 숲이 되어버린 미움과 반목의 숲을 헤치고 나가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그럼에도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며 나의 걸음을 멈추다, 결국 주저앉고 싶어졌을 때, 나의 마음속에는 원망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기도라는 무기는 꺼낼 용기조차 없었다. 언제나 내게 삶은 무한히 외로운 것이며, 혼자만이 짊어진 짐으로만 여겼다. 그것은 죽는 그 순간까지 변하지 않을 믿음 같은 것일 수도 있었다.

주님.

두 팔을 잃은 어느 분은 얼굴에 미소를 가득 지으며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은 생을 좀 더 즐겁게, 뜻깊게 살아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분의 말에 짐짓 고개가 숙여지는 마음입니다.

삶이란 우리 쪽에서 힘껏 살아 주어야 하는 것이겠지요.

해인의 바다_이해인

수녀님의 기도를 읽고, 나는 잠시 읽기를 멈추었다. 그러고는 나의 프로필을 기도의 마지막 구절로 바꾸었다. 가끔 삶의 다른 의미를 보물 찾기의 보물처럼 찾아내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그만 스르르 그 자리에 주저 않게 된다.

 

우리 쪽에서 힘껏 살아 주어야 하는 것... 우리 쪽에서...

결국 삶은 우리의 것이고, 우리의 힘으로 힘껏. 그래야 다른 쪽에서도 무언가를 해 줄 수 있다는 것일까? 이것은 자유의지라는 커다란 선물의 무게이기도 할 터인데, 소박한 책임감이라는 것이 문득문득 나를 괴롭혔던 것은 이러한 이유였던 모양이다.

도와주시지 않으면 어떻게 혼자서 성숙할 수 있습니까? 오늘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외우겠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해인의 바다_이해인

수녀님의 매일의 일기에 언제나 하시려던 말씀은 결국, 주님을 사랑한다는 이 한마디. 도저히 혼자서는 성숙은커녕 서 있을 힘도 모자란다고 생각한 나는, 나를 짓누르는 모든 책임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의 기도처럼 되뇌었다. 그러나, 그 뒤에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그 한 마디를 언제나 잊고 살았다. 그것은 태양이 없는 어둠일 것이다.

신앙의 차이는 인간적인 나약함을 주님에 대한 사랑의 끈으로 꽁꽁 붙들어 메는 것, 바로 그것에서 차이가 나는 것임을 비로소 약간은 깨닫게 되었다. 좌절과 절망의 절규가 아니라, 그럼에도 사랑한다는 고백으로, 마지막 숨이 뱉는 그 말이 사랑이기를...

 

온라인 서점 : yes24  id : empatia
블로그 링크 : https://blog.naver.com/empatia/22431503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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