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의 바다〉는 이해인 수녀님의 종신 서원 준비 피정(1976.1.24.~1976.1.31.) 묵상 노트와 〈민들레의 영토〉 출간 직후 수도 생활의 기록과 기도를 엮은 산문집이다. 갓 수녀가 된, 서른 해 즈음을 살아온 이의 기도를 오늘날 우리가 이토록 생생하게 읽고 묵상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감사하다.
모든 글은 주님께 올리는 기도이다. 때로는 시처럼, 때로는 주님께 전하는 일상의 대화처럼 다가온다. 누군가를 너무나 사모하여 절로 차오르는 마음을 쏟아내야만 하는, 마음속으로 되뇌어 쓰는 연서 같기도 하다. 내면 깊은 곳의 날것 그대로의 감정이 솔직하게 가득 느껴지는 글이기도 하다. 이런 진솔함과 사랑이 가득한 글을 읽고 있으니, 문득 스쳐 지나가는 나의 생각과 감정들도 글로 담아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1976년의 묵상 기록이니 딱 50년 전의 일이다. 젊은 수녀만이 담아낼 수 있는, 우울함 속에서도 깊은 에너지가 느껴지는 글이다.
끊임없이 주님을 부르고 바라며 주님을 닮으려고 애쓰는 모습, 자신의 부족함에 좌절하면서도 또다시 주님을 부르고 찾는 모습은 우리네 삶과 다르지 않아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 깃든 정결함에는 절로 경의를 표하게 된다.
“주님.
바보라는 소리를 들어도 좋으니, 제가 부디 모든 사람에게서 아름다운 점을 찾아내고, 그들이 당신에게서 사랑받는 존재임을 깨달아 그들 앞에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드러내게 하소서.
아무도 미워하는 마음 없이 평화로운 매일을 갖는 게 소원입니다. 사랑은 어렵군요. 그러나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렇게 자신과 싸워야 하나 보죠? (1976. 5. 13.)”
“용서하십시오.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항상 넘어지더라도 또다시 일어서겠습니다. (1976. 6. 9.)”
“오, 주님.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도 당신께 데려갈 수 있습니까? 그것이 궁금해요. 저는 혼자서만 당신을 가지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보잘것없는 저를 도구로 써 주십시오.
많은 물과 불로도 끄지 못하는 사랑에 사로잡힌 당신의 자녀가 되도록 해 주십시오. (1976. 9. 27.)”
“저의 이 검은 수도복이 실은 얼마나 두려운지 모르겠습니다.
벗기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나.
수도복을 입지 않은 이들보다 더 열심히 한 것도 없고, 더 사랑하지도 믿지도 못하면서 ‘수녀’라는 사실 때문에 받는 대우에 익숙해져서 때로는 정말 무엇이나 된 것처럼 착각하는 것 아닙니까.
주님. 언제나 제가 아직 수도복을 받지 못했을 때의 그 배고픔과 갈망과 겸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1976. 11. 5.)”
기도가 어려울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번민과 고뇌에 휩싸여 아무것도 하기 힘들 때, 이 책 《해인의 바다》를 아무 페이지나 한 장 펼쳐 들고 그대로 바쳐도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