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Q&A] 전인걸 신부님이 알려드립니다🙆‍♂️ 마지막 편

필진에게 물어보세요

[필진Q&A] 전인걸 신부님이 알려드립니다🙆‍♂️ 마지막 편

운영진

2026. 08. 29
읽음 20

† 찬미 예수님!

전인걸 신부님과 함께한
〈필진에게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마지막 답변을 소개합니다. 😊

이번 질문은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자유의지는 어떻게 함께 작용하는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변화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의지가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하느님의 은총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신부님의 답변을 통해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이번 답변을 끝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을 위한 신학 Q&A’도 마무리됩니다.

그동안 질문을 남겨 주시고
함께 읽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

 

 

Q5. 인간이 자유의지가 있어 과욕과 자기 위주의 선택함으로 고통에 빠지는데
인간의 나약함으로 자기 변화가 어렵기 때문에 주님과 함께 그 안에서 자기성찰을 해야된다는데...
어찌 보면 결국은 인간의 의지가 없음 안되는거 아닌가요?
하느님은 인간의 의지에 어떤 은총을 주시기에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나요?
- 떼쟁이데레사님

 

✔️ 전인걸 신부님의 답변
 

맞습니다. 결국 인간의 자유의지는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대신 선택하시거나 억지로 선한 사람이 되게 하시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아주 오래된 신학의 질문이 생깁니다. “내가 하느님을 향해 마음을 향하고 선을 선택했다면,
그것은 내 의지로 한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의 은총으로 한 것인가?”하는 질문입니다.

태초에 인간은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며 본래의 거룩함과 의로움 안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의지와 욕망은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선을 향해 조화롭게 질서 지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인간은 하느님에게서 멀어졌고, 우리 안의 조화도 깨지면서, 인간 본성은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세례를 통해 우리는 죄를 용서 받고 다시 은총의 상태에서 살게 되었지만, 죄로 기우는 경향까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욕심이 생기고, 미워하기도 하고, 옳은 것을 알면서도 잘못된 것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끊임없는 회개와 성찰, 그리고 선을 선택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다시 질문하게 됩니다. “그래도 결국 기도하는 것도 나이고, 회개하려고 마음먹는 것도 나이고, 선을 선택하는 것도 내 의지가 아닌가요?”

맞습니다. 우리의 자유로운 응답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여기에서 한 가지를 더 바라보게 합니다.
내가 하느님을 찾기 전에 이미 하느님께서 먼저 나를 찾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신학에서는 이를 선행은총이라고 표현합니다.
내가 하느님께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품기 이전에 이미 하느님의 은총이 내 마음 안에서 먼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은총은 우리의 의지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 주는 것일까요? 은총은 우리의 자유를 없애거나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해 상처 입은 자유를 치유하고, 선을 알아보게 하며, 그것을 선택하고 실제로 살아갈 수 있도록 힘
을 줍니다.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용서하기 어려울 때, 다시 시작하고 싶어도 마음이 따라주지 않을 때,
하느님의 은총은 우리의 마음을 선으로 이끌고 그 선택을 살아낼 힘을 줍니다. 그래서 은총이 언제나 우리의 고통 자체를 없애 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고통 속에서도 자기중심적인 선택에만 머물지 않고, 더 자유롭고 선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힘이 되어 줍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이러한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나는 지나가시는 주님을 두려워합니다.” (Timeo Dominum transeuntem.)
여기에서 지나가신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나를 외면하고 그냥 지나쳐 버리신다는 뜻이라기보다,
이미 나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내가 알아보지 못하고 그 은총의 순간을 놓칠까 두렵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하느님께서 나를 발견하지 못하실까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 다가오신 하느님을 내가알아보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것이지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즐겨 사용하신 스페인어 표현 가운데 ‘primerear’(프리메레아)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단어는 먼저 앞서 나아가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요. 교황님께서는 이 단어를 설명하시면서 편도나무를 비유로 말씀해주셨습니다.
편도나무는 아직 겨울의 찬 기운이 채 가시지 않았을 때, 가장 먼저 꽃을 피워 다가오는 봄을 알립니다.
, 사람들이 아직 봄이 왔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을 때, 이 편도 나무는 꽃을 피워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지요.
이처럼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편도나무가 먼저 꽃을 피워 봄을 알리듯,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을 깨닫기 전에 하느님께서도 이미 우리보다 앞서 움직이며 우리 안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먼저 당신을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분을 찾기 전에 먼저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가 사랑하기 전에 먼저 사랑하시며, 우리가 응답하기 전에 이미 우리 삶 안에서 은총으로 일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말씀하신 ‘primerear’는 바로 이렇게 언제나 인간보다 앞서 다가오시는 하느님의 선행하는 사랑과 은총을
잘 표현해 주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예레 1,11-12 참조).


사실 우리는 지금 내가 서 있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만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생각이나 결심이 생기면 내가 생각했고, 내가 결정했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넓게 바라보면 우리가 가진 생명도,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도, 선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도 모두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것
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스스로 모든 것을 만들어 내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받은 것 안에서 살아가며 그 선물에 자유롭게 응답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 가지를 알아채야 합니다. 먼저 하느님께서 이미 주고 계시는 은총을 알아차리는 것, 그리고 그 은총에 응답하여 ​삶을 실제로 변화시켜 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느 날 기도해야겠다”, “다시 시작해야겠다”, “저 사람을 용서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지금 내 안에서 무언가 좋은 일을 시작하고 계시는구나.” 그리고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손을 내미시지만 그 손을 붙잡는 것은 우리의 자유로운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응답할 때 은총은 우리 삶 안에서 구체적인 열매를 맺게 됩니다. 따라서 은총과 자유의지는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우리가 움직이도록 먼저 힘을 주시고, 우리의 자유는 그 은총에 응답하면서 더욱 참된 자유로 성장합니다.

 

그리하여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말씀을 우리 식으로 이렇게 기도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저에게서 지나가지 마시고, 저에게 먼저 다가오신 당신을 알아보게 하소서. 그리고 당신의 은총에 자유롭게 응답할 수 있는 마음과 용기를 주소서.”
저는 이것이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자유가 함께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바라는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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