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Q&A] 전인걸 신부님이 알려드립니다🙆‍♂️ 4편

필진에게 물어보세요

[필진Q&A] 전인걸 신부님이 알려드립니다🙆‍♂️ 4편

운영진

2026. 08. 28
읽음 25

† 찬미 예수님!

웹진 필진에게 직접 묻고 답을 듣는
〈필진에게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네 번째 답변을 소개합니다. 😊

이번 질문은 ‘신학은 왜 필요한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성경을 읽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왜 신학을 알아야 할까요?”
“신학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목표는 무엇일까요?”

‘신학’이라고 하면 어려운 용어나 전문적인 학문을 먼저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전인걸 신부님께서는 신학이란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믿고 살아야 하는지를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돕는 것
이라고 설명합니다.

성경 말씀을 과거의 기록이나 도덕적인 가르침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을 비추는 살아 있는 말씀으로 이해하고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이어 가도록 돕는 것이 바로 신학의 역할입니다.

이번 답변을 통해
조금 어렵게만 느껴졌던 신학이
우리의 믿음과 실제 삶을 어떻게 이어 주는지,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에게 왜 필요한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

 

 

 

Q4. 오늘날 신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신학의 존재 이유, 가치) 그리고 신학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가요? 감사합니다 신부님!  
         - andante님

 

 

✔️ 전인걸 신부님의 답변
 

가톨릭교회에서 신앙을 이해하는 중요한 기준은 성경과 성전(聖傳)입니다. 특히 성경은 우리 신앙의 가장 중요한 토대이지요.
사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그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신앙생활은 훨씬 풍요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신학까지 알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답부터 제시하면 신학은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믿고 살아야 하는지를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우선,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이 쓰인 당시의 역사적·문화적 배경과 저자의 의도, 문학적 표현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유다교 관습이나 당시의 사회적·종교적 상황을 이해하면 복음 말씀을 훨씬 풍성하게 알아들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성경을 이해하는 일이 당시의 역사적 상황이나 문자적인 의미를 밝히는 데서 끝나서는 안됩니다.
여기에 신학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신학은 성경 분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말씀을 통해 하느님께서 무엇을 계시하셨으며,
그것이 교회가 고백해 온 전체 신앙 안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묻습니다.

성경의 개별 말씀을 과거의 기록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창조와 구원,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 그리고 인간의 궁극적인 미래라는
더 큰 구원 역사의 맥락 안에서 바라보도록 도와주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경 말씀을 오늘 우리의 삶을 비추고 변화시키는 살아 있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셔서 세상을 창조하셨고,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직접 인간이 되어 오셨다”는 신앙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믿으면서도, 그것이 실제로 우리 삶에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기 쉽습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부처나 공자와 같은 위대한 스승이나 현자 가운데 한 분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사랑을 실천하고, 병든 사람을 치유하며,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은 예수님을 단순히 훌륭한 삶의 모범이나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분으로만 이해하지 않습니다.
레오 교황님도 교황으로 선출된 다음날 추기경단과 함께한 미사 강론에서 예수님을 단순히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나 슈퍼맨으로 축소시키는 경우가 비신자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신자들 사이에서도 벌어지며,
이들은 사실상 무신론자와 같다고 말씀하셨지요.


우리가 믿는 것은 하느님께서 실제로 인간이 되시어 우리의 역사 안으로 들어오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셨던 그 시간과 공간은 단순히 지나가 버린 과거로만 치부할 수는 없게 됩니다.
그분의 말씀과 행동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현재적인 의미를 지니며, 나아가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 안에서 언젠가 하느님 안에서 완성될 우리의 궁극적인 미래가 이미 앞당겨 모습을 드러냈다고 믿게 됩니다.


이러한 신학적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우리가 매일 듣는 복음 말씀도 달리 다가옵니다.
더 이상 복음을 단지 위대한 인물의 훌륭한 가르침이나 도덕적인 교훈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그 말씀을 지금도 살아 있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지금 이 순간부터 그분의 뜻이 현재 이루어지도록 살아야 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개념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당시 유다교 전통 안에는 마지막 때에 하느님께서 오셔서 세상을 새롭게 하실 것이라는 강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 나라는 우리가 죽은 뒤 세상 마지막에 오게 될 미래의 나라라고 생각해왔던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당신의 말씀과 행동을 통해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의 뜻이 우리의 삶을 다스리기 시작하는 곳에서 하느님 나라도 시작되는 것이지요.

예수님처럼 아픈 사람을 돌보고, 소외된 사람을 다시 공동체 안으로 불러들이며,
세상이 하찮게 여기던 사람의 존엄을 회복시키는 순간, 우리는 마지막 날에 완성될
하느님 나라를 지금 여기에서 미리 맛보고 살아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서로 사랑하여라”, “용서하여라”, “가난한 사람을 돌보아라”라는 복음의 말씀도
단순히 착하게 살라는 도덕적인 권고에 머물지 않게 됩니다.
그 말씀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하느님 나라를 오늘 우리의 삶 안에서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굳이 신앙이 없어도 선하게 살 수 있지 않은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살아가면 충분하지 않은가?”
물론 신앙이 없는 사람도 얼마든지 선을 실천하고 훌륭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더 근본적인 질문이 생깁니다.
무엇이 참으로 선한 것이며, 인간다운 삶의 궁극적인 기준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구체적인 현실로 들어가면 선과 정의에 대한 판단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습니다.
시대와 사회가 옳다고 받아들이는 가치가 때로는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기도 하고,
효율성과 다수의 이익이라는 이름 아래 약한 사람의 권리가 밀려날 수도 있습니다. 정의를 강조하다가 자비와 용서를 잃을 수도 있지요.

그리스도교 신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궁극적인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분의 말씀과 가치는 세상의 여러 위대한 스승이나 현자들의 가르침 가운데 하나로 나란히 놓여 비교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진리이시며, 그분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진리는 추상적인 원리가 아니라 그분의 구체적인 삶 안에서 드러났습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중, 자비와 용서,
가장 작은 사람 하나도 버리지 않으시는 그분의 모습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를 보여주며,
우리가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 됩니다.
신학은 이러한 복음의 진리와 가치를 더 깊이 이해하고, 그것이 오늘의 현실 안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식별하도록 도와줍니다.
저는 바로 여기에 신학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학은 신앙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왜 믿는지, 왜 복음대로 살아야 하는지 그 깊은 이유와 방향을 발견하게 해 줍니다.


그렇다면 신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요?

많은 지식을 쌓거나 어려운 신학 용어를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목표는 아닐 것입니다.
결국 신학의 목적은 하느님을 더 깊이 알고, 그 앎을 통해 하느님을 더 사랑하며, 그 사랑을 우리의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학을 접한 뒤 이전보다 사람을 더 사랑하게 되고, 고통받는 사람을 조금 더 바라보게 되며,
복음의 말씀을 실제로 살아야 할 이유가 더욱 분명해졌다면 신학은 이미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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