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 김수환

추기경 김수환

효임골룸바

2025. 12. 15
읽음 5

이 책을 택배상자에서 막 꺼냈을 때는 두께감에 참으로 놀랐다.

양장본인데다가 423페이지라는 압박감이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지금은,

이 책을 야금야금 읽었던 시간이 진짜 재미있어 어쩔 줄을 모르겠다.’의 느낌으로 남았다.

 

이 책은 김수환 추기경의 회고록으로

추기경님께서 구술하신 것을 재단법인 가톨릭평화방송엮은 것이다.

2004년에 평화방송 평화신문(현 재단법인 가톨릭평화방송)에서 펴낸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20여 년이 지나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원고가 집필된 시점과 이번 개정판이 출간된 시점에는 상당한 시간의 차이가 있지만,

이번 개정판은 추기경님의 말씀과 시대의 분위기를 온전히 담고자 인물의 직함이나 기관명, 그리고 당시 상황 등을 원래 기록된 표현대로 실었다고 한다.

사진 자료가 많은 편이라 이해도를 높이면서도 흥미롭다.

 

일단, 이 책이 2025년의 내가 읽은 최고의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올해 읽은 책 중 <스토너>가 있었는데, <스토너> 또한 한 인간의 일생을 담담하게 담은 책이다.

특별할 것 없지만 한 사람의 면밀한 삶과 심리 묘사가 뛰어났고,

마지막 순간까지 호흡을 함께 내뱉게 되는 경험을 주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왜 인생책이라고 불리우는지 알겠다만,

<추기경 김수환>은 실제 인물의 이야기인데도 그에게 생긴 많은 일들이

마치 영화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역사서이다.

922, 대구에서 순교자의 후손으로 태어나신 추기경님은 일제강점기의 어려운 환경에서 신학교에 입학하셨다. 2차 세계대전에 일본의 학도병으로 끌려가셨다가 해방과 함께 미군 포로로 지내면서 군 복무를 마치셨고, 한국전쟁 중에 사제 서품을 받으셨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은 이야기가 잊을만 하면 나오고 또 나온다.

 

어느 한순간도 평탄하게 살지 못하셨던 것 같다.

물론 삶은 고난과 우여곡절이 있기 마련이지만,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내가 보기에는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유신 정권, 민주화 운동 등의 시대적 배경에 온몸으로 직격탄을 맞으시는 것 같았다.

 

그중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김수환 추기경님을 알게되고 존경하게 된 일화가 하나 있다.

바로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6.10 민주항쟁이다.

 

1987126일 고 박종철님의 추모 미사 강론에서 추기경님은 정권의 야만성을 신랄하게 비판하셨다. 이후 ‘6.10 규탄 대회를 마친 학생과 시민 수백 명이 경찰에 밀려 명동성당으로 들어왔고, 몇 날 며칠을 경찰과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정부는 학생들을 강제 연행하기로 결정했는데, 그때 김수환 추기경님이 하신 말씀은 민주주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제가 하는 말을 정부 당국에 전해 주십시오.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 시한부 농성 중인 신부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 그 신부들 뒤에는 수녀들이 있습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그 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십시오.”

 

이 영향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추진되었으니, 추기경님은 민주주의의 희망을 주신 셈이다. 그 이후로 억울한 사람들, 생존권을 위협받는 힘없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이 명동성당을 찾아왔고, 명동성당은 민주화의 성역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책을 밤마다 잠자리 독서로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있다.

대림 시기를 맞이하여 루카 복음서를 한 장씩 읽고 이 책을 읽어주는데, 아이들이 매일매일 먼저 청할 정도로 마치 할아버지의 옛날 옛적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서 좋아한다.

그렇게 우리의 추억은 더해간다.

 

어릴 적 어머님의 간절한 바람으로, 또 바로 위 형(김동한 신부)을 따라 소신학교에 가기는 했지만 호시탐탐 나올 생각뿐이었던 어린 소신학생의 눈물겨운 노력과 좌절의 에피소드는 안쓰러우면서도 귀여움에 엄마 미소를 짓게 했고, 성탄 판공성사를 준비하며 세심병을 앓았던 이야기는 인간적으로 이해되고 공감이 되어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한 달 넘게 김수환 추기경님의 삶에 빠져 지냈다.

추기경님의 삶과 영성을 느끼며 죽어도 살아있을 수 있다는 것이 보다 와닿았다.

예수님의 삶 또한 그렇지만, 아마도 직접 뵌 적이 있고 반가운 만남으로 기억되어서 그런지 가깝게 계신 것처럼 느껴졌다.

 

꼭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읽어봄직 하다.

이 책은 가톨릭 교회의 추기경이자 대한민국의 큰 어른으로 깨어 계셨던 한 분의 이야기이자, 곧 우리나라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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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justrun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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