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공채 발표 소식이 하나둘씩 들려오면서 작년의 내 모습이 생각났다. 반짝이진 않지만 숨겨져 있어서 그것들을 발견하는 재미로 사랑했던 내 전공의 언어법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지금 내 모습이 낯설었다. 사람은 참 쉽게도 잊어버리고 새로운 것에 물들어버린다는 게 이상했다.
정반대의 것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중간에서 갈팡질팡하며 포기 못하는 삶 말고 두개를 완전히 녹여내는 삶 말이다. 그러다 9월을 끝으로 한숨 돌리게 되어서 연휴를 맞아 대규모 방정리를 하면서 내 책상 위의 달력이 3월에 멈춘 채로 넘어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그때쯤 전공과 훨씬 멀어진 채로 그 대척점에 있는 수식들에 익숙해져야 했으니까 그랬나보다 싶지만. 지난 일년간의 시간이 무색하게도 느껴졌다. 그리고 그간의 기간동안, 길지도 않았지만 결코 짧지도 않았던 그 시간들동안 쌓아두었던 마음을 그간 다 써버려서 이제 동나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이대로 냅두면 다시 내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내 모습으로 회귀해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
여튼 이제 솔직하게 써내려가는 것도 약점을 들키는 것 같아 점차 버거워질 때쯤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처럼, 학생 때만큼 하느님과 친밀하다고 느껴지지 않아도, 당신의 말씀이 읽히지 않아도, 다른 소음들로 시끄러운 내 마음에 자꾸만 당신의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 같아도, 매일하는 기도가 점점 줄어들어 이제는 단순 반복으로 느껴지기 시작해도. 영적 어둠이라고 칭하기에는 너무 거창하지만 예전같지 않은 상태. 그래도, 책을 들어서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시작으로 내가 사랑했던 시간들이 다시 내 마음에 작은 불꽃이라도 되어줄 수 있을까 해서.
그간 읽었던 책을 역순으로 소개하면 첫번째 책은 토마스 키팅 신부님의 <열매와 은사>이다.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성령의 선물인 은사에 대해 하나하나씩 자세하게 배울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지식의 은사는 하느님만이 나를 만족시켜 주시고, 인생의 기쁨과 만족은 단지 행복으로 가는 디딤돌일 뿐이라는 사실을 계시한다. 정서 프로그램들은 모두 한계가 있다. 그리고 이런 것에서 절대적인 행복을 얻으려는 추구는 순진한 발상이며 이루어질 수도 없다. 우리는 이제 정서적 행복 프로그램을 떠나보내는 동기를 갖게 됨으로써 거짓 자아는 틈을 보이기 시작하고, 그 갈라진 틈을 통해서 깊은 자기 이해와 무의식의 원동력을 인식하게 된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어떻게 나 자신을, 또 다른 이와의 관계를, 그리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방해했는가를 알게 된다." (지식의 은사, p. 143)
가끔 예전에 선물처럼 주어졌던 일명 '체험들'을 다시 주시면 또 일어날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렇게 감성을 건드리는 경험, 강렬한 경험 끝에는 다시 불타는 것만 같은 삶을 살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것들은 어쩌면 본질은 아닌 셈이다. 본질이 "하느님께로 가까워짐"이라면, 강렬한 이끌림과 같은 것은 부산물일 뿐이니까. 체험도 마찬가지로 그것에만 너무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강렬하고 잊지 못하는 체험을 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절대적이고 영구한 행복을 얻으려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며, 과거의 경험을 기억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에만 매이면 안된다는 의미이다. 오히려 이를 떠나보내면서 그 안에 섞인 나의 거짓 자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니 과거에 이러한 체험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러한 체험이 없어 더이상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없다라는 가정은 잘못된 가정인 셈이다.
"사랑은 자비와 기도에 대한 충실한 행위의 결과로 자라난다." (지혜의 은사, p. 186)
그렇다면 상황이 힘든 쪽으로 바뀌었을 때 항상 같은 정량적인 사랑을 유지하라고 다그치시는 것일까.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양심이라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라면, 양심을 깨끗하게 한다는 것은 내가 얼만큼의 노력을 하였는가에 대해 솔직하게 직면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하는 것이 사랑인 것이고, 여러가지 갈래 중 가장 고르고 싶지 않은 선택지라도 당신의 뜻이라면 의지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사랑인 것이고.
직장이 명동성당과 10분 남짓한 거리에 있는 것은 정말 과분하면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이점이다. 어느날 점심 때 고해성사를 주신 신부님께서 그런 이야기를 해주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 모든 자리에서, 역할에서 신앙인으로 잘 살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니, 그만큼 성모님의 도움을 필요로 해야 한다는 말이. 출퇴근길에 하는 묵주기도, 직장에 도착해서 긋는 성호경, 힘들 때 전구를 청하는 성모송, 그렇게 갑옷으로 똘똘 감싼 것처럼 무장해야겠다. 직장도 성모님께 봉헌하는 자리로 만들 수 있다는 신부님의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묵주기도 성월을 코앞에 두고, 올해가 다 가기까지 100일도 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리저리 사소하지만 괜히 거창하게 이름 붙일 수 있는 다양한 이유들을 내세워서 다시 일어나보려고, 손을 놓지 않으려고 애를 써본다. 그러고보니 지나간 체험들로부터 이제 자유로워질 시간이라고 다짐하는 이때에 바람과 같은 성령에 대한 책을 읽게 되는 건 그마저도 큰 행운이자 당신께로 가는 한 발걸음이겠지. 그리 생각하니 다시 힘이 나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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